[하재봉의 영화 길라잡이]-<1>오래된 정원
[하재봉의 영화 길라잡이]-<1>오래된 정원
  • 새전북신문
  • 승인 2007.01.0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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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하재봉이 새전북신문 매주 금요일자 주말판 ‘하재봉의 영화 길라잡이’를 통해 주1회 영화 가이드와 평론을 싣는다. 개봉 전 시사회의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하고, 미개봉 작품이나 또는 현재 상영 중인 영화의 소개와 분석, 관객들의 반응을 비롯해 그만의 특유한 필치로 날카로운 평가를 곁들인다. <편집자주>


<1>오래된 정원

전주 은석골에서 영화의 주 무대가 촬영된 황석영 원작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은 80년대에 대한 일종의 후일담 영화다.

80년대를 이야기 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살아남은 우리들은 모두 가슴 속에 죄의식을 갖고 있었다.

무엇이 정의인지 알면서도 두려움으로, 자신의 안락한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시대의 전면에 나설 수 없었던 망월동 영령들 앞에서 모두 죄인이었다.

신군부의 서슬퍼런 억압 속에서도 훗날 장선우 감독이 ‘꽃잎’으로 영화화 한 최윤의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등 광주의 비극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엄청난 집단적 상처를 다룬 후일담 문학이 80년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대자본이 투입되는 영화는 문학보다 뒤늦게 광주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꽃잎’과 2천년이 막 시작할 때 개봉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만들어졌다.

‘박하사탕’은 명령을 받고 도청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었던 계엄군 역시 또 하나의 피해자였다는 시각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올해 개봉 예정인 ‘화려한 휴가’는 광주 영화의 정점이 될 것이다.

‘오래된 정원’은 지나간 우리의 아픈 역사에 바치는 진혼가이다.

80년대를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자신의 지나온 삶과 무관하게 볼 수 없는 영화다.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 치열하게 싸우지는 못했지만 그 상처를 잊고 살지도 못했던 우리들은 광주라는 도시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던 시절을 겪었다.

편안하게 먹고 마시며 즐겁게 살던 것이 죄악이던 시절, 살아남은 자들이 느껴야만 했던 죄의식은 일종의 시대적 부채였다.

‘오래된 정원’은 그 부채의식을 멜로 장르로 녹여서 표현한다. 영화는 머리가 희끗한 40대의 남자가 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상범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6년8개월만에 풀려난 오현우는 사회주의자다. 자신이 감옥에 있는 긴 세월동안 세상은 너무나 변해 있었다.

사회주의자 아들을 둔 어머니는 땅 투기를 해서 거대한 부를 축적했고, 풀려난 아들을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명품으로 치장을 해준다.

그리고 한 선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현우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 한윤희를 떠올리면서 영화는 1980년대 초로 플래시백 된다.

80년 5월, 진압군이 광주로 진입하기 직전, 전남도청에 마련된 시민군 지휘부에서 빠져나가 도피생할을 시작한 현우(지진희 분)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시골 미술교사인 한윤희(염정아 분)의 집에서 은거를 한다. 영화의 중심 부분을 차지하는 갈뫼씬이 전주 은석골에서 촬영되었다.

산을 등지고 호수를 앞에 둔 정감어린 곳을 찾아내라는 감독의 주문을 받고, 스텝들이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찾은 곳이다.

3개월의 리모델링으로 윤희와 현우가 함께 동거하는 집이 만들어졌다.

사상범을 숨겨만 주어도 신상의 불이익은 물론 심각한 처벌을 받던 그 시절, 수배자의 연고지에는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인들의 소개로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집에서 은거를 해야만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외딴 오지 갈뫼에서 두 사람만의 생활을 보내면서 그들은 뜨겁게 사랑한다.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야산 중턱에 있는 낡은 집. 그 곳이 그들의 보금자리였다. 시대가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어도 사랑은 피어나는 법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영원할 수는 없다. 현우는 동지들이 모두 붙잡힌 상황에서 자신만 안락하게 살고 있다는 죄의식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한윤희 곁을 떠나 도시로 잠입한다.

‘숨겨 줘 먹여 줘 재워 줘 몸 줘. 그런데 왜 가니? 이 바보야’

비오는 날 버스를 타고 떠나는 현우를 보면서 윤희 역의 염정아가 던진 이 대사는 염정아의 뛰어난 표현력으로 오랫동안 기억된다.

현우는 갈뫼를 떠나 도시로 들어오자마자 잠복근무하던 형사에 붙잡혀 감옥에 수감되고, 그 이후 한윤희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리고 현우를 은닉한 죄로 수사를 받고 처벌을 받은 사건 연루자라는 이유로 면회도 하지 못한다. 현우가 한윤희의 곁을 떠날 당시 그녀는 임신 상태였다. 물론 현우는 그것을 몰랐다.

17년이 지난 뒤 다시 갈뫼에 와서야 자신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한윤희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우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것은, 현우의 비극적 사랑에 우리 모두 공범으로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치열했던 시절, 우리가 방관하고 있는 사이에 저처럼 크고 많은 수많은 비극들이 만들어졌다.

‘오래된 정원’은 80년대 후일담 영화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아픔이 개인에게 미치는 고통스러운 삶을 드러낸다.

임상수 감독은 10.26 당일의 이야기를 정치하게 묘사해가면서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그린 ‘그때 그 사람들’에 이어 신군부가 지배하던 80년대 초 암울했던 시절을 배경으로 뜨거운 사랑이야기를 만들었다. 과거와 현재가 수시로 교차되면서 17년 뒤 감옥에서 풀려난 현우가 한윤희와 함께 지내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들이 파편적으로 삽입된 편집은 대중적으로 불편한 양식이지만 관객들을 깨어있게 하면서 뛰어난 미학적 성취를 이룩한다.

임상수 감독은 잦은 플래시백으로 의도적으로 관객들의 몰입을 차단하고 그들이 비판적 이성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기를 원한다.

감독의 이러한 의도는 ‘오래된 정원’이 단순한 멜로로 끝나지 않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원작과는 다르게 염정아의 너무나 세련된 도시적 이미지는, 사회주의자 청년을 숨겨주고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불길처럼 사랑하는 한윤희 역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지진희도 너무나 인텔리적이다. 원작 소설을 읽은 사람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윤희의 생기와 도시적 이미지에 쉽게 적응되지 않겠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염정아가 창조한 또 다른 한윤희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현우가 갈뫼를 떠난 뒤 이어지는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이념적 사투와 위장취업 노동운동, 그리고 감독이 애정을 갖고 창조한 인물 영작은 원작과 가장 다른 부분이며 ‘바람난 가족’의 인권변호사 주영작으로 이어진다.

‘오래된 정원’은 삶에 대한 도덕적 의지와 정열을 갖고 어두운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열정적으로 묻어나는 가슴 뜨거운 작품이다.



△영화평론가 하재봉은=1957년 전북 정읍 출생. 영화평론가이기 전에 시인이자 작가이다. 경희대 국문과와 중앙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고,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와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에 당선됐다. 80년대 동인지 문학을 주도한 ‘시운동’동인으로 활동했으며 ‘서정주 시에 나타난 물질적 상상력 연구’와 ‘시의 해방’등의 논문을 썼다.

‘내가 너의 길을 걸어 지평선 위에 몸을 눕힐 때’, ‘까치야 까마귀야 아직도 검은 예복 입고 날 기다리니’등의 시를 무용화해 공연하기도 했다. 또 베케트 시리즈 등 다수의 연극을 기획했다. 1991년 문예중앙 신인상에 중편소설 당선, 시집으로는 ‘안개와 불’, ‘비디오천국’등이 있고, 장편소설로 ‘콜렉트콜’, ‘블루스 하우스’, ‘황금동굴’, ‘영화’가 있다. 영화평론집으로는 ‘하재봉의 비디오천국’, ‘하재봉의 영화읽기’, ‘하재봉의 시네마 클릭’이 있다.

부산 동서대 디지털영상매스컴학부 전임교수로 현재 집필활동과 함께 영화평론가, 방송 MC 등으로 활동 중이다.

/이형렬기자 hrlee@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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