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개봉영화 보기] <5> 그놈 목소리
[하재봉의 개봉영화 보기] <5> 그놈 목소리
  • 새전북신문
  • 승인 2007.02.0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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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박진표

주연:설경구 김남주

장르:드라마·범죄·스릴러

1991년, 유괴된지 44일만에 한강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고 이형호군 유괴사건은 공소시효가 끝났지만 아직도 범인의 윤곽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놈 목소리’는 실화에서 소재를 선택해 다큐멘타리적 기법을 잘 활용한 작품만을 만든 박진표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다.

‘죽어도 좋아’, ‘너는 내 운명’을 통해 현실에 밀착한 소재를 어떻게 가공하면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지를 체득한 박진표 감독은 이번에는 유괴라는 극적인 소재를 선택했다.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살인의 추억’처럼, ‘그놈 목소리’역시 결말은 정해져 있다.

관객들은 범인을 잡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극장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감독은 어떻게 긴장감을 유지할 것인가, 가장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박진표 감독은 정공법으로 간다. 이형호군을 유괴한 범인과 아들을 유괴당한 부모, 그들의 피 말리는 심리전을 피아노선처럼 가늘고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에는 그런 긴장감이 없다. 그것보다는 피폐해진 부모의 내면과 외면이 과도하게 클로즈업된다.

자식의 생사를 모르고 유괴범이 원하는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부모의 심정으로 관객들은 영화를 본다. 그런데 관객과 유괴된 상우 부모와의 동질성 유발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원인은 무엇일까? 배우 때문일까, 연출 때문일까, 아니면 각본이 그렇게 짜여졌기 때문일까?

가슴 저리는 부모의 마음이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놈 목소리’의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다.

혹시 박진표 감독은 관객들이 유괴사건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거리두기 기법을 쓴 것은 아닐까?

DBC 방송의 9시 뉴스 앵커 한경배(설경구 분)와 그의 아내 오지선(김남주 분)는 12시가 되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외아들 상우의 실종을 경찰에 알려야 할 것인가 고민한다.

그 때 걸려온 전화, 상우를 데리고 있다는 유괴범은 현금 1억원을 요구한다. ‘그놈 목소리’는 경찰에 신고도 못하고 유괴범의 요구대로 끌려다니며 두 차례에 걸쳐 1억원씩 모두 2억원을 갈취 당한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집중적으로 노출시킨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미 유괴사건 자체만으로도 부모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관객들의 정서를 새롭게 뒤흔들거나 강력하게 끌고 갈만한 주도적 힘을 찾지 못한 게 ‘그놈 목소리’의 한계다.

TV의 다큐멘타리 PD 출신으로 영화에 입문한 박진표 감독은 지금까지 실화를 소재로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그 것들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소재를 신선하게 가공하는 능력 때문이었다. ‘죽어도 좋아’는 70대에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들을 소재로 노인의 삶과 성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고, ‘너는 내 운명’은 순박한 시골 총각과 AIDS에 걸린 윤락가 출신 여성의 사랑이 진정성을 갖고 관객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런데 ‘그놈 목소리’는 다르다. 진정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유괴 당했고 44일 뒤 그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 동안 부모들은 범인의 요구대로 2차례에 걸쳐 2억원을 전달했지만 경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보이지 않는 범인과의 긴장선이 싱싱하게 가공되지 못한 것이 첫번째 실수다. 유괴사건을 두고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범인과의 신경전 이상의 새로운 발견이 영화에는 없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노출한다고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영화에는 삶의 발견이 있어야 한다. 소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 그 새로운 시각을 통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낯익은 세계 밖의 어떤 것을 보여줄 수 있는가, 박진표 감독은 바로 이 부분에서 계산 착오를 하고 있다.

두번째는 이야기의 흐름과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들을 지치게 만든다.

특히 어머니 오지선역의 김남주는 관습적 연기를 반복함으로써 관객들을 지치게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

내면의 깊은 울림이 아니라 형식적이고 상투화 된 고통은 관객들의 반응을 무덤덤하게 만든다. 내용 자체가 비극적이고 끔찍한 것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빨리 영화가 끝나기를 바란다. 아이가 유괴되었고, 범인을 못잡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극장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2시간동안 관객들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향하게 하는 어떤 새로운 힘이 있어야 한다.

그 새로운 발견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놈 목소리’의 아쉬운 부분이다. 러닝타임 122분, 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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