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개봉영화 보기] <9>좋지 아니한가
[하재봉의 개봉영화 보기] <9>좋지 아니한가
  • 이형렬 기자
  • 승인 2007.03.01 14: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독:정윤철

주연:천호진 문희경 박해일 김혜수

장르:코미디, 드라마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이 만든 두번째 작품 ‘좋지 아니한가’는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찾아낸 드문 작품이다.

뭐 이런 가족 코미디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가 핀잔할 수도 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결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부풀고 싶다. 왜냐하면, 적어도 정윤철 감독의 이 영화는 재밌는 척, 감동 있는 척, 웃기는 척, 사기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웃기고 자빠지는 것 같지만, 화면 구석구석까지 섬세하게 손이 닿은 연출의 세심한 손길은, 사소하고 구질구질한 한 가족의 일상을 어느 순간 비범한 모습으로 변화시켜 놓는다.

캐릭터를 구축하는 사실성과 내러티브의 진정성이 토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좋지 아니한가’에 특별한 무엇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남루하고 비천한 우리들의 일상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고등학교의 영어 선생님인 근엄한 아버지 심창수(천호진 분)는 어느 날 원조교제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온 가족을 궁지에 몰아 넣는다.

암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어머니 희경(문희경 분)는 키 크고 멋지게 생긴 청년이 커피를 선물하자 화려한 원피스도 한 벌 사 입고 그 청년을 만난 노래방 앞에서 서성거린다. 딸 용선(황보라 분)은 단편영화를 찍고 있는 영화과 출신의 임시 교사 경호(박해일 분)를 짝사랑해서 그 선생님이 만든 미스터리 동호회에 가입한다.

원조교제 하는 동급생 여고생(정유미 분)을 짝사랑하는 아들 용태(유아인 분)는 그녀를 용서하겠다고 큰 소리 친다.

그 네 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 얹혀사는 아이들의 노처녀 이모 미경(김혜수 분)은 냉월이라는 필명으로 무협소설을 쓰지만 남자친구는 진짜 소설 쓰는 여자와 사귀겠다면서 그녀를 차버린다. 이런 이야기다. 이야기가 눈에 번쩍 띄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행간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새로움이 있다.

우선 가족 구성의 문제다. 아버지 창수를 중심으로 한 이 가족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가족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앉은뱅이 밥상 주변에 몰려 앉아 식사를 하지만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각자가 가슴 속에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각자 따로 논다. 콩가루 집안이다. 더구나 알고 보니까, 아버지는 원조교제하는 것 같고 어머니는 봄바람이 나서 연하의 청년을 넘본다.


더더구나 친아들인줄 알았던 장남 용태는 아버지의 씨가 아니다. 아버지가 원조교제하는 여고생과 모텔 방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는데 그 여고생은 아들이 짝사랑하는 여자다. 소통되지 않는 가족들이 진정한 소통의 통로를 발견하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주려고 한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내용과 형식의 문제는 모든 창작품이 갖고 있는 숙명적 딜렘마다.

‘좋지 아니한가’는 가장 진부한 이야기 속에서 가장 눈부신 새로움을 찾고 있다.

가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을 날카롭게 절단하여 그 속을 꺼내 보여준다.

가족 같지만 가족이 아니다. 가족이 아닌 것 같지만 그들은 가족이다.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 좋지 아니한가(家)로 되어 있다. 얼마나 좋은가라는 의미의 반어법과 좋지 아니한 집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깃들어 있는 제목은 이 영화의 주제와 화법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형식적 측면에서도 ‘좋지 아니한가’는 기존의 서사 전개 방식에서 진일보 한 양식을 차용하고 있다.

의도적 코미디지만 그 것들이 주는 쾌감은 소재를 완벽하게 장악한 연출의 힘 때문이다.

정윤철 감독은 안전한 길을 피하고 어렵고 힘든 길을 선택했다.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은 길은 실패의 위험이 높고 시행착오의 가능성이 많다.

‘좋지 아니한가’는 위태위태하다. 어느 한 순간 발을 잘못 딛으면 쌈마이로 빠질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그런데도 영화는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진행된다. 저 아찔하게 높은 곳에서 가느다란 줄 위에 몸을 싣고 걸어가는 외줄타기 선수를 보는 것 같다.

물론 후반부에 전개되는 물가의 난장판씬은 조금 위험하기도 하다. 온 가족들이 총출동해서 주변 인물들과 거친 육탄전까지 보여주는 이 클라이막스 씬은, 그러나 지금까지 내적으로 응축되면서 절제된 감정이 지나치게 확대 노출되고, 지금까지 경제적 편집으로 속도감 있게 전개되던 내러티브의 긴장감은 오히려 이완된다.

‘좋지 아니한가’는 가족해체 시대의 인간관계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라본다.

정윤철 감독은 낯익은 형식을 버리고 새로운 영화문법을 구축하는 어려운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가고 있다.

러닝타임 117분, 15세이상 관람가, 1일 개봉.

/영화평론가


많이 본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