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와 사람] 역사의 혼을 조각하는 돌장이 이현섭씨
[일터와 사람] 역사의 혼을 조각하는 돌장이 이현섭씨
  • 김성아 기자
  • 승인 2007.04.05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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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거석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익산. 이곳은 미륵사지석탑, 왕궁리 5층 석탑, 연동리 석불입상 등 과거 찬란했던 석재 예술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삶의 수단이자 방패로, 상징적 조형물로 우리네 생활 속에 켜켜이 녹아들었던 돌. ‘아사달’의 전통을 이어 이름 없는 석공(石工)들의 혼이 깃든 석조물은 비바람 속, 천년의 세월 속에서도 끄떡하지 않고 있다.

‘챙챙챙... 쾅쾅쾅.’

쩌렁쩌렁 울리는 굉음 소리를 타고 흩날리는 흰 돌가루, 오늘도 돌의 고장 황등면에는 혼이 깃든 석조물을 만드는 석공들의 망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구슬땀 흘리는 3~4명의 석공들 사이에서 ‘돌장이’ 이현섭씨(42)를 만났다. 아무리 크게 불러도 들리지 않는지 돌만 다듬고 있는 이씨. 그는 지금 남원시 인월면에 세워질 ‘태조 이성계 손’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역사적 인물의 손을 만드는데 소홀히 할 수는 없죠. 많은 사람들이 이 조형물을 보면서 이성계에 대해 생각하고 그 뜻을 새길 테니까요. 그러니까 더 잘 만들어야죠. 세월이 가도 그 뜻이 변하지 않게 말이에요.”

이씨는 지금까지 만든 작품들 중에 이번 작품에 가장 애착이 많다며 여느 작품보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돌을 조각하는 일이 좋아서 무작정 석공의 길에 뛰어 들었다. 금속이나 나무 등을 조각하는 것보다 돌을 조각하는 게 더 힘들지만 천년동안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아 이 일을 업으로 삼게 됐다고.

▲ 이현섭씨가 남원시 인월면에 세워질 조형물, '태조 이성계 손'을 조각하고 있다./김성아기자 tjddk@sjbnews.comⓒ새전북신문(http://www.sjb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이씨는 “돌을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이 일을 시작했는데 벌써 12년이네요. 처음에는 바로 돌을 조각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 3~4년간은 기본기를 배웠어요. 학교 때 조각하던 거와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환경이 좋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은 안했던 것 같아요”라며 옛 추억을 떠올렸다.

12년 동안 묵묵히 돌을 깎아 온 이씨. 그는 석재 예술의 여러 분야 중 조각만큼은 석공들까지도 인정하는 진짜 ‘돌장이’이다. 하지만 그는 “미대출신이라서 특별히 잘하는 건 아니에요. 저보다 뛰어난 석공들이 더 많아요”라며 주변의 칭찬에 손사래를 쳤다. 노하우를 묻자 이씨는 특별한 것이 없다며 “열심히 하면 되요”라고 수줍게 웃었다.

돌만 보고도 조각하기 좋은 돌인지, 어느 지역 돌 인지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베테랑인 그는 “조각하기 좋은 돌은 딱 느낌이 와요. 거창돌도 유명하지만 황등돌에 비해 표면이 거칠어요. 수많은 돌을 깎아 봤지만 황등돌 만큼 좋은 돌은 없어요”라며 황등돌을 자랑했다.

하나의 조형물이 탄생하기까지 겉돌쳐내기, 밑그림, 정다듬, 도드락다듬, 잔다듬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예전에는 망치나, 정 등 연장들을 자신이 직접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까지 하지 않기 때문에 많이 편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위험한 장비와 돌가루 때문에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언뜻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장비지만 이씨는 조각을 하다 다치는 것보다 중국산에 밀려 석공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게 더 힘들고 아쉽단다.

현재 전국 돌 문화 축제 위원회와 보존회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씨는 “석공의 자긍심으로 마한, 백제 시대부터 이어져 온 석재 예술을 지키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 봐줬으면 좋겠어요. 특히 내년에 개최할 국제 돌조각 심포지엄에 정부차원에서 협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했다.


<전국 돌 문화 축제> 석재산업은 백제시대 그 유명한 아사달의 전통을 이어받아 현재 함열, 황등, 여산 등 관내 270여 개 업체가 집단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석재문화의 발상지로서 익산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 매년 돌 문화 축제를 마련하고 있다.

ㆍ시 기 : 매년 10월중

ㆍ장 소 : 익산문화원

ㆍ홈페이지 : http://www.stonekorea.net/fes/

<황등석 왜 유명할까> 대부분 돌의 이름은 그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 황등석 역시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에서 나는 돌로 전국에서 질이 우수하기로 유명하다. 회백색 계열의 화강암인 황등석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강도가 세고 석재결이 곱다. 건축용이나 장례용 기타 석공예용으로 널리 쓰인다.

〈이현섭씨가 조각하고 있는 ‘태조이성계의 손’은〉

남원시 인월면은 고려말 1380년 당시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섬멸한 곳이다.

이 전쟁에서 이성계는 천지신명에게 간절히 축수(祝手)를 해 달을 끌어올려 어둠을 밝힌 뒤 승리했다. 끌 인(引), 달 월(月)자를 쓴 ‘인월’이라는 지명은 여기서 유래했다.

남원시와 인월면은 이성계 장군의 공적을 기리고 잊혀지는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고자 인월대 건립공사를 하고 있다.

이현섭씨가 조각하고 있는 '태조 이성계 손'은 갑옷을 입은채 두손을 모아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했다.

/김성아기자 tjddk@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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