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따뜻한 영화예요, 한마디로 착한 영화죠 ” 영화관계자의 호사스런(?)평을 뒤로 한채 영화를 찍었다는 전주 한옥마을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에 마음이 바빠 영화보는 일은 오후로 미뤘다. 영화 속 장면을 찾아야할 터인데 거꾸로 내 눈으로 찍어 둔 장면을 영화 속에서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한옥 마을이 내려다보인다는 오목대 쉼터에 오르니 그야말로 봄의 향연이다. 선명한 영산홍이며 애기똥풀, 별꽃, 꽃마리, 들꽃들이 한창이다 조선 이씨의 발상지라는 오목대는 전에도 가본 적이 있지만 바로 뒤 동산에 이런 쉼터가 있는 줄 몰랐다. ‘이곳에 아이들과 소풍을 오면 좋겠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드니 발 아래 한옥의 지붕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한옥마을에 가면 나무 한그루 같은 한옥을 보게 되지만 여기서는 한옥 숲이 보인다.

이 길에서 영화 속 주인공 동구(최우혁 분)와 아빠 진규(정진영 분)는 자신들이 사는 집을 찾아본다. “저기 학교에서 이렇게 길을 따라 아이스크림 사먹는 가게가 저기고 저기가 우리집이지”“어디 어디 .아 저기?.”

아이큐 60인 동구를 특수학교에 전학시키라는 교장의 종용에 “ 아이큐는 낮지만 동네에서 제일 착하다”고 항변했지만 진규는 여전히 불안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살고 있는 집까지 팔려 나가야 될 상황. 동구가 오가는 학교에서 집까지의 길이 이들에게는 너무 소중하다.

영화 ‘날아라 허동구’는 학교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지능이 낮은 11살 동구와, 아들 동구가 무사히 초등학교만 졸업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못할게 없는 천하무적 치킨집 사장의 이야기다. 바보라 놀리건 말건 점심시간에 물주전자를 들고 친구들에게 물을 따라 주며 아침햇살같이 행복해하는 동구다. 심장이 약해 운동을 하지 못하는 짝을 위해 운동장 두바퀴를 뛰고 한바퀴는 “짝꺼”라는 말을 뱉는 아이 동구의 천진난만함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함박웃음이 지어진다.

그렇다고 영화는 좀 모자란 동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동구가 좋아하는 건 물주전자와 짝, 그리고 학교. 물주전자를 좋아해 야구부에 들게 되고 짝을 통해 인생이라는 걸 엿본다.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동정을 얻지도 않고 감동을 앞서 요구하는 법도 없다 .덤덤하지만 소소한 일상 속의 코믹과 잔잔한 감동을 버무려 따뜻함이 남게 했다.

진규는 잠 안오는 동구의 깜깜한 새벽 “해는 뜬다 . 닭한마리 울타리로 넘어간다. 닭두마리 ...”를 헤아려준다. 동구의 성낼 줄 모르는 모자람의 미덕도 아빠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여느 부모처럼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재촉하지 않는 아빠와 이 영화는 닮아있다...

이런 덤덤하지만 소소하고 잔잔하고 따뜻함이 전주의 분위기일까? 이 영화의 98%가 전주에서 촬영됐다. “전주에서 폭력 영화는 못찍는다. 앵글을 갔다대면 이내 따뜻한 분위기가 나오니 ”한 모감독의 말처럼 전주의 따뜻함이 곳곳에 스며있다.

아쉽게도 동구와 진규가 빨간 목욕통에서 함께 장난을 치던 교동 집과 치킨집은 미리 예정됐던 은행로 확장 공사에 헐리고 지금은 흉물로 변해 있다.

하지만 치킨 배달을 하며 오가던 한옥마을길과 동구의 등하굣길은 정감어린 전주의 풍경을 그대로 담았다.

기껏 전주에서 찍었다는 영화들도 전주의 풍경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다르다.온전히 전주를 담은 ‘전주 영화’다. 전주 시민이면 누구나 아는 천변길이며 한옥마을의 길을 접하고 ‘ 아 저기 ’하고 감탄사를 내지를 지도 모른다.

. 가슴가득 훈장처럼 ‘ 진북 ’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던 유니폼을 실제 진북초등학교에서는 볼 수 없다, 권코치(권오중분)가 연신오케바리를 외치던 야구연습장은 그대로 볼 수 있다.

새침하던 동구 짝은 이 운동장에서 주전자와 컵을 이용해 동구에게 야구룰을 가르친다. 아웃되지 않아야한다고 1루 2루 3루를 거쳐 집으로 꼭 들어와야 아웃되지 않는 것이라고 .무서우면 무서운대로 야구공에 방망이를 갖다내서 최고의 번트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속삭인다.

그래 그래 맞다. 동구의 씩씩한 “오케바리 --오케바리--”소리가 진북초등학교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듯하다.

<영화 주무대 전주 진북초등학교>

전주에서 98%촬영된‘ 날아라 허동구’의 주배경은 동구가 다니는 초등학교. 전주 진북초등학교 운동장과 교실이 주무대다.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방과후와 휴일을 이용해 영화가 촬영됐다. 3층 체육전담실이 동구의 학급으로 꾸며졌다.

이 학교는 전주에서 유일하게 야구부가 있어 시나리오와 맞아떨어졌다. 운동장도 넓고 천변에 접해 있어 동구가 오가는 통학길 촬영에도 용이한 점이 꼽혔다. 촬영이 결정되자 . 서울에서 직접 내려오는 주연급 아역배우 외에 이 학교 학생들이 오디션을 거쳐 이태희(11)양 등 6명이 동구반아이들로 컨택되기도 했다..

또 실제 이 학교 야구부 선수 3학년부터 6학년까지 14명의 아이들이 선수로 등장했다. 야구부 학생들은 모두 ‘진북’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유니폼을 입었다. 이 학교에서 시나리오상 선수단의 이름을 이왕이면 변경해줄 것을 요구해 결정됐다고 한다.

지난해 영화 촬영기간 내내 옆에서 지켜봤던 이 학교 학생과 학부모 800여명은 영화 개봉을 앞둔 지난 4월24일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석했다. 학생과 학부모는 자신들의 학교와 낯익은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신현규 교감은 “우리 학교를 배경으로 나오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고 일부 출연에서 , 촬영 관람, 영화 감상까지 큰 영화 공부가 됐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 동구 상대편 팀캐처로 출연한 김규식(12)군은 “야구를 하면서 영화에 출연해 야구를 더욱 열심히 할 맘이 든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직접 동작을 지도하기도 했던 야구부 고금종 (41)감독은 “ 영화에 출연하면서 학생들의 의욕이 왕성해져 예년의 저조한 성적을 뒤로 하고 이달 열리는 전국 소년 체전에 전북 선발로 나가게 됐다”며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