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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의 뭉크, 절정으로 이끌다<img src='http://www.sjbnews.com/image/icon_new2.gif' border='0' >

영화'에드바르트 뭉크'를 보고

허우 샤오시엔, 샹탈 애커만, 글라우버 로샤, 소마이 신지 등 세계거장감독들을 소개해 온 전주국제영화제가 이번에는 그 뒤를 이어 피터 왓킨스의 회고전을 마련하여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에 아직 제대로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페이크다큐멘터리의 대부라는 점에서도 그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번에 소개되는 피터 왓킨스의 영화는 초기작인 ‘컬로든 전투’, ‘워 게임’을 비롯하여 ‘글래디에이터’, ‘퍼니시먼트 파크’ 등 9편이다. 그중에서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나게 되는 영화로 선택한 것이 바로 ‘에드바르트 뭉크’였다. 상영시간이 무려 174분이라는 사실에도 선택에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거장의 솜씨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전제되어 있었음이요, 물론 뭉크의 미술작품에 대한 평소의 관심이 한 몫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뭉크의 작품은 한결같이 독특한 그만의 분위기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대부분의 작품 속에는 가슴 저린 음울함이 존재하지만, 그 음울함을 한참 들여다보면 오히려 작품의 어둠에서 극복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그의 그림 ‘절규’는 소설 ‘밤이여, 나뉘어라’중 작가 정미경의 표현대로 “너무 날카로워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고음역의 절규”를 토해내며, 보는 이에게 “나 대신 누군가가, 혹은 나 아닌 누군가도,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고 있구나, 그런 위안”을 받게 하는 힘이 있다.

영화 ‘에드바르트 뭉크’는 평범하지 않은 화가 뭉크의 가족이력과 사랑에서 비롯된 갈등과 작품세계를 담고 있다. 화가에게는 참으로 많은 트라우마가 존재했다. 어머니의 죽음과 청교도적인 유언이 옭아매는 도덕적 기준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느끼는 무게감, 더불어 거듭되는 폐결핵에 의해 가족을 잃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화가 자신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늘 함께 한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여기에 사랑하는 연인 헤이버그부인과의 갈등에서 그려지는 질투가 작품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영화 속 내레이션을 통해 “질병과 광기는 요람에서부터 나를 지켜본 삶의 모든 것”이라고 뭉크는 이야기한다. 또한 헤이버그부인과의 갈등 속에서도 한결같이 집착과도 같은 사랑과 질투를 느끼면서 “질투는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나눔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익숙한 스토리 전개식의 영화를 기대하고 있는 관객에게는 다소 생소한 장르여서인지, 영화의 전반부터 심상치 않은 서먹함을 극복해야 했다. 뭉크의 자전형식의 일기를 차용한 내레이션이 화면과 융합되지 않아 다소 지루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감독은 비전문배우를 캐스팅하였음에도 거듭되는 클로즈업샷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세밀한 배우의 표정연기가 따르지 않음으로 영화와 소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회상과 어릴 적 각혈장면의 두려움을 영화의 장면마다 교차편집 하며, 혼란스러운 뭉크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듯이 긴 시간을 할애한다. 죽음의 경험이 삶에 대한 다른 시작임을 알기 전까지의 그림은 납처럼 무겁다는 표현의 장치라고 이해되지만 다소 산만하다.

인터뷰형식을 빌어 감독의 시선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려함은 독특하다. 정말 시간을 거슬러간 듯 배우가 현실 속 인물이 되어 질문에 답하고 의견을 이야기한다. 그런 이질적인 정서가 영화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작품마다 표현해내는 화가의 내면을 엿볼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후반부의 판화작업에는 상당히 경쾌하기까지 한 속도감을 표현한다. 이제는 화가의 아픔으로 작용했던 요소들이 오히려 원동력이 되는 듯 뭉크의 작품 활동을 그리는 화면전개도 빠르다. 본격적으로 그만의 작품세계가 형성되고 꽃피우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뭉크의 이런 작품 활동은 세상 사람들에게 항상 낯설음이요, 혹평의 대상이 되었었다. 시대의 편견을 넘어서지 못한 천재가 어찌 그뿐이겠는가. 본인의 나라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나중 독일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는 모습에서는 어쩌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가는 피터 왓킨스 감독 본인의 이야기라고 추측한들 나만의 오버이겠는가?

이제 스텝의 이름과 함께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는 엔딩크레딧이 오른다. 이미 대부분의 관객이 자리를 일어나는 시간이다. 그러나 거장은 한 번 더 관객에게 그만의 방식을 선물한다. 노을을 배경으로 서 있는 두 연인의 회상씬으로 영화가 다시 이어지며 추정될 수 없는 뭉크만의 색채를 표현한다. 이는 피터 왓킨스의 끊임없는 실험적 의도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이다. 동시에 감독의 뜬금없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그만의 언어와 진정성으로 다가온다. 남들 떠난 객석을 일어서면서 눈물 한 방울 고였다면, 나 또한 뜬금없는 사람임이 분명한 듯 하다. 그 눈물의 의미는 뭉크를 향한 연민인지, 피터 왓킨스를 향한 찬사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올해로 8회를 맞은 2007 전주국제영화제가 관객의 시선과 마음을 물들이겠다며 “동화(動畫): 시선을 물들이다.”를 구호로 내세웠다. 그 의도와 풍성한 기획만큼 비교적 다양한 영화를 접하게 됨이 반갑다. 이미 전주 영화의 거리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다양한 색깔로 물들어있다. 이제 동화(動畫)가 지구촌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소통의 매체가 되어 정말 서로의 마음까지 물들이길 기대한다.

감독: 피터왓킨스/ 상영시간 : 174분/노르웨이, 스웨덴

/미르기획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