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힘있는 한국 영화 한 편이 개봉돼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4일 전국 36개 상영관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이번 주 박스오피스 10위에 이름을 올린 ‘열세살 수아’(김희정 감독, 수필름 제작).

슈렉3, 밀양, 황진희 등 전국적으로 300~4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한 대작들과 비교할 수 없지만, 영화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10대 소녀의 성장통을 탄탄한 스토리로 그렸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열세살 수아는 김희정이 감독이 칸 영화제의 신인감독 육성프로그램인 ‘레지당스 인 파리’에 선정, 프랑스에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트리트먼트를 심사해 총 6명을 선발하는 육성프로그램에 전세계 영화감독 200여명이 신청했다니 이 사실 만으로도 화제를 모으기에는 충분한 영화다.

더욱이 이 영화는 “전라북도와 함께 만든 영화”라는 감독의 설명처럼 전북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프랑스에서 시나리오를 완성한 김 감독은 지난해 전북도가 시행한 ‘HD영화 제작지원사업’에 지원, 총 제작비 7억원 중 5억원을 지원받았다.

열세살 수아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인 ‘오프로드’ 이후 HD영화 제작지원 사업을 통해 탄생한 두 번째 개봉 영화다.

또한 전주영상위원회의 로케이션을 지원받아 전주와 군산, 고창 등 도내에서 70% 이상이 제작됐다.

전주 중앙시장과 팔복동 고물상, 전주소리문화의 전당, 고창 청보리 밭 등 열세살 수아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 보았다.

일, 이, 삼…오십오, 오십육…팔십칠, 팔십팔….

머리를 숙인 채 숫자를 세며 시장 통을 걷는 수아(이세영).

유난히도 무거워 보이는 책가방을 짊어진 소녀의 뒷모습은 한 겨울 찬바람만큼 추워 보인다.

죽은 아빠를 잊지 못하는 소녀는 세상에 혼자 버려진 듯 늘 외롭다.

부쩍 말수가 줄고, 친구를 만나는 것조차 힘이든 소녀에게도 행복을 전해주는 사람은 인기가수 윤설영. 그녀가 출연한 방송을 녹화해 돌려보며 상상 속 대화를 펼치는 소녀는 아빠가 일기장에 남긴 가수 윤설영을 자신의 친엄마라고 믿는다.

영화에서 모·녀간 갈등의 고조와 함께 버스식당을 준비하는 엄마의 희망을 그린 고물상 신은 전주시 팔복동 공단 안에 위치한 거상자원에서 촬영됐다.

김 감독은 “고물상은 왠지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고장 나거나 버려진 것을 재활용 한다는 의미를 담은 공간”이라며 “수아에게는 외롭고 낯선 곳이지만 남편을 잃은 엄마 영주에게는 위로받을 수 있는 친구와 희망이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 감독은 “고물상 입구로 들어서는 철판 담장이 너무 맘에 들었다”고 덧붙였다.

난생 처음가보는 서울.

수아의 상상은 기차 속에서도 계속된다.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며 손짓하는 윤설영. 그러나 상상은 어디까지나 상상으로 끝나는 법.

어렵게 윤설영의 콘서트장에 찾아간 수아는 팬들에 휩싸인 그녀에게 아버지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만 그녀는 태도는 낯설고 냉랭하다.

차가운 봄비는 상상에 빠진 수아로 하여금 현실을 깨닫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

이 신은 전주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촬영됐다. 김 감독은 촬영한 당시에 눈이 내려 바닥에 쌓인 눈을 치우고, 인공비로 인해 얼어붙은 바닥을 토치로 녹여가며 찍었다”고 회상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던 친엄마의 진실은 버스식당 개업식 날 밝혀진다.

빗속에서 한 바탕 소동을 치른 수아 개업식 날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듣게 되고, 한 때 가수를 꿈꿨던 엄마가 일기장 속의 윤설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후 아빠와 함께가던 단골 만두집에 고물장수 아저씨와 함께 간 수아는 그의 존재를 인정한다.

영화는 파릇파릇한 보리밭을 따라 달리는 식당 버스에 몸을 실은 수아가 아빠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끝을 맺는다.

마지막 엔딩 장면은 고창 학원농장에서 촬영됐다.

김희정 감독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딛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청보리 밭이 최적의 공간이었다”며 “영화 개봉 후 청보리 밭이 어디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촬영 뒷이야기>

열세살 수아를 통해 장편영화에 첫 데뷔한 김희정(38) 감독은 이 영화는 모든 게 럭키(행운)였다고 고백했다.

전라북도에서 지원한 HD영화지원사업에 선정된 것부터 배우 캐스팅과 촬영 등 모든 것이 큰 문제없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특히 김 감독은 제작사로 부터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영화를 찍게 되서 기쁘다고 했다.

◇캐스팅

주인공 수아는 아역배우 출신이 이세영이 맡았다.

이 영화를 기획한 민규동 감독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 출연했던 인연으로 캐스팅하게 이세영은 어른 못지않은 집중력으로 열세살 사춘기 소녀 역을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아 엄마 영주역을 맡은 추상미는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고사했었다. 엄마 역할이 낯설었기 때문. 김 감독은 “실제로 추상미 씨를 만나본 후 기존의 센 이미지와 다르게 내성적이고 부드러운 면에 끌려 삼고초려를 통해 캐스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수아가 자신의 친엄마라고 믿는 가수 윤설영 역은 록밴드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가 맡았다.

영화 ‘그때 그 사람’에서 심수봉 역을 맡기도 했었던 김윤아는 시나리오가 맘에 들어 출연을 결심했다. 자우림의 나머지 멤버인 이선규와 김진만은 영화의 음악을 담당했다. 특히, 시나리오를 보고 난 후 만든 곡 ‘프리지아’는 영화의 완성도를 한 층 높여준 노래다.

◇촬영지

영화 열세살 수아는 전주 중앙시장과 팔복동 거상자원, 고창 청보리밭,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이외에도 전주 서곡지구대, 서곡 가정집, 평화동 주민지원센터, 전주 원마트, 군산역, 군산 월명동 전자대리점, 전주 효자공원묘지 등에서 촬영됐다.

지난 1월 3일부터 촬영에 들어간 영화는 약 한 달 동안 전체 24회 중 18회(70%)를 도내에서 소화했다.

당초 제작진은 전주 외에도 춘천 등 중소도시를 돌며 헌팅을 했었지만, 시장통과 고물상 등 주요 공간이 전주만큼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선희 제작PD는 “여러 사람들로 부터 전주의 영화촬영 환경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며 “전주영상위도 활동을 잘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영화를 찍다보면 식생활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김희정 감독은 “전주 음식이 너무 맛있어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좋아했다”고 전했다. 이어 김 감독은 “전주에서 촬영하는 내내 따뜻한 느낌으로 작업을 할 수 있었다”며 “전주영상위와 촬영에 협조해준 시민들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에피소드 “친절한 전주시민”

극중 수아의 중학생 친구인 예린이네 집을 직접 헌팅했던 제작진은 집주인의 친절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예린이는 부잣집 딸이기 때문에 잘 사는 집을 구했던 제작진은 전주 서곡지구에 있는 한 2층 가정집 헌팅에 성공, 아침부터 촬영에 들어가 새벽 1~2시까지 촬영을 했다.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집을 점거(?)하고 하루 종일 촬영을 하는데도 집주인이 너무 이해를 잘 해 줬다는 것.

사실 일부 스태프들은 중간에 집주인의 마음이 바뀌어 촬영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했을 정도였다.

김희정 감독은 “서울 같았으면 헌팅 자체도 힘이 들었을 텐데, 당시 집주인은 과일과 커피까지 대접하면서 격려해주고 도와줬다”며 “앞으로 많은 영화를 찍겠지만, 전주를 잊지 못할 추억 중에 하나”라고 감사해 했다.


/이범수기자 skipio21@s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