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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의 개봉영화 읽기]<31>푸른 눈의 평양 시민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07.08.16 16:03
감독 : 대니얼 고든

주연 : 제임스 드리스녹, 찰스 로버트 젠킨스

영화장르 : 다큐멘터리



월북한 미군 병사들이 북한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추적한 다니엘 고든 감독의 다큐멘타리 [푸른 눈의 평양시민]은, 1968년 월드컵 8강 신화를 이룩한 북한 축구 이야기 [천리마 축구단](2002년)과 세계 최고 수준의 평양 매스게임에 출연하는 북한 소녀 2명의 이야기 [어떤 나라](2004년)에 이은 북한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앞의 두 작품이 축구나 매스게임 등 비정치적 소재인데 비해서 [푸른 눈의 평양시민]은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담고 있다. 북한 당국의 신임을 얻은 다니엘 고든 감독은, 세계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북한 내의 미군들을 촬영할 수 있었다.

휴전 이후 1960년대 초반, 모두 4명의 미국 병사가 각각 다른 사연을 안고 휴전선 철책을 넘어 북한으로 망명했다.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진 북한의 미군 병사들 이야기는 소재적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들은 왜 철책을 넘어 북한으로 갔을까? 그곳에서는 어떻게 살았을까? 이 근본적인 의문을 풀기 위해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은 정공법으로 소재에 접근한다. 1962년 5월 처음 월북했던 래리 알렌 앱셔와 두 번째로 넘어간 제임스 조셉 드레스녹, 세 번째 제리 웨인 패리쉬, 1965년 M14를 갖고 넘어간 하사관 찰스 로버트 젠킨스 중에서 고든 감독이 2004년 촬영을 시작할 당시, 2명의 미군들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앱셔는 1983년 심장마비로, 패리쉬는 1998년 신장병으로 사망했다.

[푸른 눈의 평양시민]은 현재 유일하게 북한 내에 남아 있는 제임스 조셉 드레스녹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네 명의 미군 병사는 정치적 신념으로 월북한 게 아니었다. 모두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다. 앱셔와 드레스녹은 고아였다. 앱셔는 임무 도중 무기를 분실해서 군사법정에 설 처지였다. 드레스녹은 사창가의 여자를 만나기 위해 외출허가서를 위조했다가 감옥에 갈 위기에 있었다. 알콜 중독이었던 젠킨스와 패리쉬는 높은 보상금과 환대를 꿈꾸며 월북했다.

북한은 [행운아들]이라는 선전물을 발간하는 등 정치적으로 그들을 이용했다. 그들은 나중에 북한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악한 역할의 미군으로 등장하며 배우로 활동했다. 또 북한에서 결혼도 했는데, 젠킨스의 아내 소가는 납치된 일본인이었고, 패리쉬의 아내는 레바논인이다. 앱셔는 태국 여인과 결혼했고 드레스녹은 처음에는 루마니아 여인과, 지금은 평양 토고 대사관 직원과 북한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과 살고 있다.

젠킨스의 아내 소가는, 고이즈미 총리의 북한 방문 후 납치된 것이 알려지면서 외교 문제가 되자 2002년 귀한 허가를 받아 도쿄로 갔다. 이산가족 문제가 국제 뉴스가 되자, 2004년 북한과 일본의 협상으로 제 3국인 인도네시아를 거쳐 일본으로 간 젠킨스는 아내의 고향에서 살고 있다. 이들의 러브 스토리는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젠킨스는 일본에 간 후 북한 체제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또 190센티미터가 넘는 거구의 드레스녹이 자신을 구타했다고 증언하자, 드레스녹은 격렬하게 반발한다. 젠킨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든 감독의 다큐멘타리는 매우 이성적으로 텍스트에 접근한다. 그리고 현명하게 관객들이 판단할 근거자료를 제공하지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고든의 다큐멘타리가 갖는 미덕이다.

드레스녹은 북한으로 망명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북한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아들을 대학교육까지 시킬 수도 없었고 건강하게 낚시와 볼링을 즐기면서 살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평양 시내에서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그는 북한에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 죽을 때도 제대로 배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고든 감독은 마지막 씬에서, 거대한 김일성 동상이 우뚝 서 있는 텅 빈 광장을 걸어가는 드레스녹의 뒷모습을 역광으로 잡는다. 그 모습은 쓸쓸하고 허무하다. [푸른 눈의 평양시민]은 드레스녹의 증언을 중심으로 젠킨스와의 인터뷰 등이 담겨 있지만 일방적으로 그들의 주장만 펼쳐지지는 않는다. 미국에 있는 드레스녹 주변 사람들이나 월북 당시 그와 함께 근무했던 부대원들의 인터뷰가 들어 있어서 사건을 바라보는 균형감각의 미덕을 갖추고 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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