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의 날', 히로시마 원폭현장을 가다
'원폭의 날', 히로시마 원폭현장을 가다
  • 윤희중 객원전문기자
  • 승인 2007.08.2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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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있던 마이바라(米原)에서 히로시마(広島)로 출발하는 날. 이른 아침부터 모든 방송에서는 히로시마 원폭과 관련한 보도를 내보냈다. 전 날까지도 8월 6일이 히로시마 원폭의 날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후 2시경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역앞 교바시가와(京橋川)를 건너 카나야마쵸(銀山 町)에서 전철을 탔다. 기념식이 아침 일찍 시작된 탓인지 거리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붐비지 않았다. 간간이 전쟁을 반대하는 프랑카드를 든 사람들이 조용히 무리지어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원폭돔 앞 전철역에 도착했다. 식장에 참석했던 사람들인지 참배객들인지 모르지만, 횡단보도를 건너는 인파들을 보고 '히로시마 원폭의 날'임을 실감했다.

인파속을 헤집고 들어가다 보니 원폭돔이 보였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에도시대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던 히로시마 나까지마(中島)지구. 이곳에 미 폭격기는 무게 4톤의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재일조선인 2만명을 비롯해 35만의 생명을 잃게 했고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원폭돔 앞에서는 30도를 웃도는 더위속에서 평화에 대한 갈망과 염원이 지속되고 있었다.  "인권없이는 북경올림픽도 없다"는 팜플렛을 나눠주며 중국정부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는 '법륜공박해진상조사연맹(CIPFG)' 회원들의 침묵시위가 있었고, 바로 뒤에서는 히로시마 원폭의 날을 기념하여 일본 초등학생들이 평화의 염원을 담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들은 아직 종결되지 않은 평화에 대한  현실과 이상을 대변해 주었다.

아이오이바시(相生橋)를 건너고 세계유산항로로 등록된 오오타가와(太田川)를 돌아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도착했다. 오전에 있었던 '히로시마시 원폭사망자 위령식' 식장 아아취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다.

본관을 지나자 '원폭사망자 위령비'가 곧바로 보였다. 각료들이 헌화한 조화앞에서 참배객들이 삼삼오오 줄을 지어 묵념하고 눈물 흘리며 되돌아 섰다. 깨끗하게 정렬해 놓은 조화처럼 주변국의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바라 볼 수 있는 일본 정치인들을 우리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위령비 너머 공원의 중앙 쯤에 '평화의 등불'이 놓여져 있었다. 평화기념공원에는 평화와 상생이라는 말이 넘쳐났다. 이제 그 단어의 의미를 실천으로 보여주는 일본정부가 나타나야 될 시점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왼편으로 걷다보니 평화기념공원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있었다. '한국인 원폭희생자위령비'. 이 비는 원래 1970년 '재일본 대한거류민단 히로시마현 본부'에 의해 공원외곽에 세워져 있었는데 1999년 7월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60여년을 넘어선 지금, 강제연행이나 징용에 의해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한국인 희생자들의 원혼은 아직도 편안하게 쉬고 있지 못한 듯해서 씁쓸했다.

잘 다듬어진 나무 숲 속의 조형물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태어난 지 두 해를 지나 피폭되고 10년 후에 생을 마감한 사사키사다코(佐々木さだこ)를 기리기 위해 동급생들이 만들어 놓은 '원폭어린이 동상'. 이 조각상은 사다코가 종이학을 날리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소녀가 천마리의 종이학을 접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탓일까. 지금도 이곳 주변에서는 외국인들과 일본인들이 함께 평화를 염원하며 커다란 종이학에 글을 남기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접은 종이학을 모아 조각상 뒷편 유리실 안에 전시하고 있었다.

평화기념공원을 돌면서 일본이 원폭피해자였다는 사실만을 부각한 듯한 인상이 짙었다. 세상사는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지만, 원폭이 투하되어야 했던 배경을 설명해주는 어떠한 안내판도 볼 수 없었다. 일본 정부의 진실을 담은 메세지가 들릴 날을 기대하며 '평화의 종'으로 향했다. 바이킹족의 아이랜드 침략에 대해 네델란드 정부가 천년을 지나 사죄했다는 소식을 귀국해서 들었다. 세월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으로 부터 우러나는 평화를 향한 아름다운 소리로 들린다. 일본은 언제쯤 이런 평화의 종을 울릴 수 있을까?

외국인들과 일본인이 뒤엉켜 두드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도착한 곳은 평화기념공원 가장 뒷편에 자리잡은 '평화의 시계탑'. 세개의 철주 위로 구체를 감싸고 있는 형상이었다.  높이 20미터의 이 철탑은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날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전 세계에 평화를 호소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시계탑을 지나 다시 아이오이바시(相生橋)에 섰다. 모토야스가와(元安川) 위로 띄워놓은 유람선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원폭돔을 아이오이바시에서 다시 바라보았다. 역사속에 살아있는 폐허가 일상의 공원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화에 대한 소박한 희망이 더 이상 흉물스럽게 서 있는 상징물에 묻혀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서 있는 다리의 이름처럼 서로 기운을 터서 협력하며 살아가려는 일본의 양심적 민간단체 활동에서 그들의 미래를 찾아보면서...

/ 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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