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햇살 머금은 하동
겨울햇살 머금은 하동
  • 윤희중 시민기자
  • 승인 2008.01.2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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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와 전라도 경계에 섬진강이 흐르고 그 끝자락에 하동이 있다. 지리산 남부능선 아래 펼쳐진 그곳의 겨울바람은 매섭지 않았다. 적어도 겨울햇살을 품에 안은 악양 평사리 만큼은 포근했다. 동학혁명이후 근대사를 살아숨쉬게 만든 박경리의 대서사시 <토지>의 무대만큼은 그랬다. 금새라도 영팔이와 판술네가 뛰쳐나와 마을 어귀에 얼어붙은 물레방앗간을 돌릴 듯 보였고 고즈넉한 최참판댁 잘 익은 옥수수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시뮬라크르(simulacre)를 뒤로 한 일행은 불교음악의 발상지 쌍계사를 찾았다. 입담좋은 문화해설사로부터 지리산 눈쌓인 계곡에 칡꽃이 피어있는 곳을 찾아 세웠다는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창건설화를 들으며 진감선사가 귀국하여 어산범패를 만들었다는 팔영루를 거쳐 범종각으로 향했다. 

모든 중생들과 만물을 깨우치기 위해 걸려있는 목어, 운판, 법고, 인경은 아직 숨죽이며 세상을 깨울 시간을 기다리고, 나한전으로 가는 길목엔 천년의 세월을 감당하기에 지친 듯 고목이 이끼 낀 흙담에 기대어 나신을 드러내고 겨울볕을 쬐고 있었다.

다포양식의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보물 제500호 대웅전은 조선시대 불교목조건축 양식으로 세월의 파편을 맞은 앞 뜰 진감국사탑비와 대비되어 서 있었고, 보수공사가 잠시 멈춘 적막한 산사에는 단층 팔작기와 처마 끝자락에 애처롭게 매달려있는 풍경만 연신 맑게 울려댔다.

대웅전 옆 명부전과 설선당 사이에 있는 마애불이 새처럼 재잘대는 순례객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느긋하게 묵상에 잠겨있었다. 부처님보다는 참 순박한 스님같은 인상이어서 화개장터 속세에 들어 앉아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듯 싶다.

쌍계사는 차(茶)와 인연이 깊다. 신라 선덕여왕시절, 당나라에서 처음으로 차나무 씨를 들여와 흥덕왕 3년에 지리산 줄기에 심었는데 진감선사가 이 절집과 화개에 차밭을 만들어  '차시배지(茶始培地)' 의 명성을 얻었다. 요즘 하동에서는 녹차밭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야생차 고장으로서 현대적 감각에 맞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재생산하기 위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 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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