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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18>비정성시
2008년 01월 31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시간의 채근에 덤벙대며 살아가든, 아니면 그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며 투사적으로 살아가든 시간의 주인공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내는 시간의 연속성을 이르는 또 다른 이름이 바로 역사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그 시대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사람, 즉 일반민중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여기 역사 속에 부대끼며 제 몫을 다해 살아내려 했던 한 가족의 삶을 담백하게 그려낸 영화가 있습니다. 물론 역사의 격동과 시대적 이데올로기의 흐름 속에서, 자의와 상관없이 그 삶이 파괴되거나 사라진 가족 구성원들의 상황은 암울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허우샤오시엔 그의 영화는 암울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기 보다는 무척이나 과묵한 표현을 선택합니다. 카메라의 시선이 지극히 객관적이길 소망하는 듯 관조적인 롱샷과 다소 길다싶은 롱테이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는 장면은 우리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희망의 오프닝이 분명하였습니다. 일본의 패전을 시인하는 성명과 동시에 아기의 탄생 그리고 꺼져있던 전등이 밝혀지는 상황은 분명 새로운 희망을 예측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설정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거기까지만 친절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불친절한 영화라는 속단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단지 ‘비정성시’ 이 영화는 결코 시대적 사건을 세세하게 설명하거나 사람들의 삶을 처절하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정치적 배경의 영화들이 그 내용을 이해시키려하거나 주인공들의 삶을 되도록 처절하게 표현하여, 그 아픔을 배가시키려는 의도적 계몽이 깔려있었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그 대표적인 표현방식이 문청의 필담 대목이 아닐까요? 까만 배경에 기교나 군더더기 없이 써지는 한자(漢字)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면서, 문청과 관객의 일체감을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문청을 선택함이 이 영화의 가장 성공요소라고 단언해도 모자람이 없겠지요. 또한 관미의 일기형태를 갖추고 표현하는 결코 윤기 흐르지 않는 건조한 내레이션은 감독의 지극히 절제된 표현방식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장치입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모든 언어의 해석을 관객에게 양도하는 그의 의도를 의무감처럼 떠안게 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45년부터 1949년까지의 격변의 시대적 상황입니다. 영화가 제작된 1989년. 계엄령이 해제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시대적 상황이 그로 하여금 더욱 절제된 표현을 선택하도록 했으리라는 개인적 동조를 보태봅니다. 거장은 섣부르게 결론지으려 하지도, 서두르지도 않습니다. 단지 관객 스스로 울림이 있으면 그 울음을 울 수 있는 자명종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 울음을 울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가슴이 답답하게 메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는 그동안 회자될 수 없었던 시대적 사건에 대한 대화의 동기를 부여하는 그 사명으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일방적으로 한편에서 주도하려는 역사의 해석은 반드시 그 후유증이 남게 마련인 것을 우리는 지난 시간에서 보아왔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똑같은 우를 계속 범하면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人間事이기도 人間史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生離祖國, 死歸祖國, 死生天命, 無想無念

영화 중간에 전해주던 한 가장이자 역사의 흐름에 당당하고 싶어 하던 한 사람의 유언이 장렬하게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걸 보니, 저도 애국의 소양은 갖추고 있는 모양입니다. 감히 흉낼 수 없는 작은 사람이 그저 짜르르 하니 가슴에 와 닿은 바 있어 한번 적어보았습니다.


/김경미 객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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