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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20>언더그라운드
2008년 02월 21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감독 :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urica), 러닝타임 : 192분

제작 : 유고슬라비아, 프랑스, 독일, 헝가리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는 <아빠는 출장중>, <집시의 시간>으로 유명한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족적, 종교적으로 불운했던 유고슬라비아의 현대사와 그 속에서 뼛속 깊이 성장통을 앓아야 했던 유고 출신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그는 1981년 24세에 <너희들은 돌리 벨을 기억하니?>로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받는다. 이 영화는 60년대 티토 정권 아래에서 성장한 유고슬라비아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쿠스트리차는 자유와 통제의 어정쩡한 경계선에서 성장하는 젊은이들의 깊은 좌절과 성숙의 이야기로 세계 영화의 중심부로 진입한다. 이후 스탈린 독재가 휩쓴 감시와 공포, 고발과 체포의 시대를 그린 <아빠는 출장 중>으로 칸느의 황금종려상을, 영화예술의 최전선이 미국과 서유럽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집시의 시간>으로 다시 칸느 감독상을 수상한다.

이렇게 화려한 그의 필모그라피에 문제작으로 떠오르며 한때 작품 활동을 중단하게 만든 영화가 바로 <언더그라운드>이다. 평단과 관객 양쪽에서 찬사를 받아오던 그는 <언더그라운드>를 마지막으로 영화계 은퇴를 선언한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영화 <보스나>의 감독이기도 한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이 영화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그의 작품에서 보여 주었던 철학들은 사라지고 쓸데없이 수사학만 남발하는 작품"이라고 혹평하였다. 여기에 반하여 세르비아의 선전물이라고 하는 여론의 비방도 이어졌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현재 쿠스트리차는 새롭게 컴백하여 <검은 고양이 흰고양이>(1998)로 베니스영화제 은사장상을 받으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은유와 위트로 가득한 전쟁의 대서사극

<언더그라운드>는 지금은 사라진 유고슬라비아의 성립과 몰락, 그리고 해체과정을 그린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의 침공, 공산주의 국가의 성립, 그리고 엄청난 피를 불러왔던 유고내전까지의 뼈아픈 역사를 몽환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스타일로 표현한다. 쿠스트리차는 은유와 비유, 풍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인다. 관객은 너무나 기발한 상상력과 위트에 매료되어 웃는 동안에도, 상처받고 어긋난 그들의 역사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등장인물들은 비극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매우 과장스러운 상황과 극중 인물의 엉뚱한 모습은 다소 해학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영화는 자본주의를 조롱하듯 악단의 연주와 주인공이 돈을 뿌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큐와 픽션이 비체계적인 방식으로 배열되면서 전쟁의 참혹함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감독은 실제 2차대전 독일군 폭격장면을 보여주며 동물원을 파괴한다. 폭격 전 동물들의 불안감은 폭격과 함께 거리로 나아가며 전쟁의 징후를 드러낸다. 사자가 길거를 쏘다니고 거위는 호랑이한테 대든다. 코끼리는 구두를 집어가고 원숭이는 엄마를 잃는다. 파괴, 혼란, 질서가 무너진 전쟁자체에 대한 표현이다. "현실을 반영한 우화"라고 분명히 이야기하는 듯하다. 유고인들은 폭격 후 진입한 독일군에게 갖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유고라는 국가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면서 성장하고자 한다.

그들은 저항세력을 형성하고 지하에 터를 잡아서 사회주의의 실험에 몰입한다. 지하세계에서 전쟁을 준비하는 블랙키와 지상에서 대사기극을 펼치는 마르코, 둘은 눈물겨운 우정을 나누면서 역설적이게도 형제를 죽이고 친구를 배신한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유고가 치루어야 했던 전쟁의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돌고 돌면서 계속되어야 할 축제

엄청난 피를 쏟아냈던 유고내전은 단순하게 민족갈등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쿠스트리차는 서로 간의 이윤과 영토를 차지하고자 했던 권력간에 저질러진 만행이라고도 이야기하는 듯하다. 뒤늦게야 그들은 형제와 친구를 죽인 남을 것 하나 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이 파괴와 상처라는 것을 깨달은 이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여 축제를 연다. 배신한 친구와 연인을 용서하는 축제의 중심에 어머니가 있다. 쉽지 않겠지만, 우리의 삶은 연속선을 그리며 축제가 되어야 한다. 이제 그들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으로 나뉘어져 서로의 역사를 다시 열어갈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대사처럼,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않을" 것이다. 불확실하지만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과거로부터 떠나는 그들의 모습에 여린 희망이 맺힌다.

   
쉴틈 없이 개입해 들어오는 즐거운 집시음악, 전쟁 속에서도 계속되는 결혼과 축제,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는 위트는 심각한 거대담론의 역사를 움직이는 힘으로 작동한다. 쿠스트리차는 침략과 전쟁을 경멸하기 위해서 - 그 안을 들락거리는 산책가의 시선으로 - 역사를 차용한다. 그가 세계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자본과 번뜩이는 특수효과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꿈꾸는 정신으로 "과거를 향해 얼굴을 돌린 미래의 전사"이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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