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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25>거미여인의 키스
2008년 03월 27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1985, 미국, 브라질 제작, 119분, 감독 : 헥터 바벤코



<거미여인의 키스>는 아르헨티나의 망명 작가 마누엘 푸익(Manuel Puig)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정치범과 동성애를 다루었다는 이유로 아르헨티나에서는 출판 금지 당하였으나, 영어로 번역 · 출판되고 1985년 헥터 바벤코에 의하여 영화화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원작자인 푸익은 어려서 헐리웃 영화에 심취했고, 조감독으로 잠시 활동하였으며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문학에서 ‘영상적 글쓰기’라는 시도를 가능하게 했고, <거미여인의 키스>는 지금까지도 연극 무대에서 꾸준히 상연되고 있다.



영화는 동성애자인 몰리나(윌리암 허트 분)와 좌익 혁명가인 발렌틴(라울 줄리아 분)의 육체적 · 정치적 합일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동성애자인 몰리나는 반도덕 범죄자로, 발렌틴은 정치범으로 복역하게 된다. 섬세한 감성의 몰리나가 고문으로 처참한 생활을 하는 발렌티에게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둘 사이에 연민과 우정이 싹튼다. 몰리나는 교도관에게 발렌틴의 조직 정보를 알아내도록 지시받는다. 그러나 온전히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감옥이라는 특수한 공간 속에서 둘의 사랑은 점점 깊어진다. 몰리나가 출감하는 날 발렌틴은 동지이자 연인인 리디아(안나 마리아 브라가 분)에게 메시지를 전해줄 것을 부탁한다. 몰리나는 자신이 미행당할 것을 알면서도 발렌틴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약속 장소로 향한다. 결국 몰리나는 비밀경찰에 의해 사살되고, 발렌틴은 고문의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유토피아적’ 감금 상태

몰리나와 발렌틴은 교도소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교도소는 역설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자유와 인권이 상실된 공간이지만, 사랑하는 연인은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유토피아적 감금상태’라고 할 수 있다. 닫힌 공간은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게 하며 갈등과 이해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사상의 자유와 인권이 말살 당한 군부독재 사회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어떤 주제라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 외부 세계에서 가능할 수 없는 ‘말’이 내부의 닫힌 공간에서 가능한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다. 이처럼 아이러니한 상황은 정치 혁명가와 동성애자의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



사랑의 방식

좌익 혁명가이며 남성우월주의자인 발렌틴은 부르주아의 싸구려 대중문화에 기초한 동성애자인 몰리나의 애정을 경멸한다. 사회 혁명에 불타는 발렌틴에게 사랑과 영화는 부차적인 것들이다. 그는 감옥에서도 자신을 훈육하며 학대한다. 고문을 당하여도 고통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하찮은 동성애자”인 몰리나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몰리나가 영화를 들려주며 이야기한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적어도 일생에 한번은 진정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한다는 의미니까.” 몰리나의 사랑 방식은 지극히 가부장적이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가변적 경계

<거미여인의 키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발렌틴이 정치적 혁명, 남성, 이성, 논리, 문자의 상징이라면 몰리나는 성적 소수, 여성화된 남성, 감성, 직관, 언어를 표상한다. 자기 단련에 철저한 발렌틴이 음식과 외모, 의상에 무관심하다면 몰리나는 풍성한 음식으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한다. 이성 중심의 사회에서 하찮게 취급된 것들의 가치가 몰리나를 통하여 살아난다. 즉 작가와 감독은 혁명가와 동성애자를 통해 당시의 억압적인 사회상을 고발함과 동시에 대중문화와 역사적 주제의 결합을 시도한다. 이때 대중문화는 고급문화와 거대담론이 형성한 경계를 넘나들게 된다.



출감하는 몰리나를 껴안으며 발렌틴은 속삭인다. “누구도 너를 함부로 하게 내버려 두지 마라.” 몰리나는 발렌틴을 통하여 인간이란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발렌틴은 환상적인 영화이야기 속에 은유되는 몰리나의 이타적인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또한 발렌틴과 몰리나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동성애자와 좌익 정치범인 이 둘은 모두 현실 사회에서 주변부적 삶을 살고 있다. 이 경계선에서 이루어지는 삶은 ‘배제를 선택한 주체적인 삶’의 이란성 쌍둥이라는 점에서 능동적인 삶이기도 하다. 브라질 시네마 누보의 계승자인 헥터 바벤코는 성(性) 정체성과 사회혁명을 화두로 브라질의 현실을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여 예술로 승화시켜 보여주었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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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130.XXX.XXX.87)
2013-06-08 13:05:02
감사합니다. 덕분에 드디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된거같습니다.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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