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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28>율리시즈의 시선
2008년 04월 17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영화 <율리시즈의 시선>은 1995년 유럽영화상과 유럽영화아카데미 비평상은 물론, 같은 해의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영화로 호메로스의 <오딧세이>를 연상케한다. 그리이스 출신 감독인 테오도르 앙겔풀로스의 이 영화에는 하비 케이텔, 마리아 모건스틴, 올랜드 조셉슨 등이 출연한다. 테오도르 앙겔로풀로스 특유의 극단적인 롱테이크와 한 쇼트 안에서 시제를 넘나드는 미장센은 대하드라마가 갖는 ‘느림의 미학’을 완만한 리듬의 화면으로 ‘거리두기’한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나서는 한 영화감독의 긴 여행은 우리들을 영혼과, 사랑을 찾아서, 기억의 강과 길을 따라 잃어버린 시간 속 여행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순간과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 있는 우리는 인간 사회의 미시적 삶의 전쟁과 광기와 죽음 속에 갇힌 내면의 영혼들을 객관적 ‘거리두기’의 시선 밖으로 끄집어낸다. 여기서 시선은 카메라이며, 카메라는 곧 시선으로, ‘절망을 바라보는 참혹한 시선’이다.

영화는 미국으로 망명한 그리이스 출신의 한 영화감독(하비 케이텔 분)이 3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표면상의 방문 이유는 자신의 화제작 시사회 때문이지만 사실은 영화사 초기에 발칸 반도에서 촬영되었다고 구전되는 한 무성영화의 필름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영화 초창기에 그리이스 출신의 유명한 영화 감독 ‘마나키아’ 형제가 발칸반도 지역의 역사와 관습을 담은, 그리고 전쟁에 휩싸여 미처 현상되지도 못한 세 통의 필름을 찾기 위한 것이다. 실존의 공간과 시간을 거스르는 이 여행은 알바니아에서 마케도니아로, 루마니아에서 보스니아로 이어지는 발칸반도의 영혼 순례로 이어진다. 이것은 내분과 전쟁의 폭염 속에서 상실된 순수의 시간을 찾고자 방황하는 여정이다.

돌아온 고국의 땅에서 택시를 기다리다 그가 첫 번째 만난 여인은 ‘지나간 과거의 연인’으로 이내 사라지는 추억 속의 환상으로 드러난다. 알바니아의 국경을 넘어가는 도중에서 여권 문제로 길을 가지 못하는 노부인을 태워주기도 하며, 눈발 날리는 산기슭에서 자기 모국 그리이스의 지나간 영광과 몰락에 대하여 그는 택시 운전사와 함께 술병을 나누며 애도감을 표한다. 이어지는 여행길에서 만난 마나키아 박물관의 여성 신문기자로부터 그 필름이 부카레스트의 스코피에 있다는 말을 전해 듣지만 그것은 그가 찾는 세 통의 필름만 뺀 그 나머지 필름이다. 마나키아 형제의 형인 야나키스는 죽었고 동생인 밀토스는 필름을 유고 정부에 팔았다는 것만을 확인하고 그는 부카레스트로 떠난다. 기차역에서의 검문이 있게 되고, 그의 의식은 과거로 돌아가 당시 국경을 넘다 수비대에게 체포된 야나키스를 만난다. 야나키스는 무기 은닉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감형 판결을 받는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가운데 그는 야나키스의 눈이 되어 유배지 앞을 흐르는 강물을 응시하는 가하면, 그의 의식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개인사로 깊이 빠져든다.

전란에 휩싸인 거리에는 새로운 세계를 주장하는 붉은 깃발이 행진하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는 1945년 당시, 어린 시절 살던 집으로 들어간다. 한 대의 피아노가 거실에 놓인 그 곳에서 그의 시선은 평화로운 가족들이 체포당하는 순간들에 머문다. 같은 시공간에서 다사다난한 역사적 장면들을 같은 쇼트 안에 설정하는 미장센은 추억으로 가는 잡다한 의식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해낸다. 체포자들은 어느 순간에는 비밀경찰이 되어 들이 닥치는 가하면, 어느 때는 인민위원회의 이름으로 가구를 압류하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서 유년시절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시선을 끄는 시간의 잔재일 뿐이다. 그는 동행했던 신문 기자와 헤어져 철거된 레닌의 동상과 함께 강을 따라 내려온다. 철거되어 배에 실려 나가는, 고집스러움과 자신만만해 보이는 레닌의 두상 앞에 서서, 무표정하게 멀리서 그 배가 시간의 강을 따라 떠내려가는 것을 바라보는 강가의 사람들과 그 주변 풍경을 그는 응시한다. 한 때 레닌은 살아서는 희망이었고 이젠 죽어서 그는 슬픔의 이름이 되어가는 순간인 것이다. 그것은 일찍이 전 세계 피압박 민족과 저주받은 계급에게 희망을 주었던 사회주의의 몰락에 대한 율리시즈의 시선이기도 하다.

베오그라드에서 그는 필름 세 통이 사라예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라예보로 가는 길에서 그는 세 번째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불가리아 태생의 여성으로 그녀의 삶은 온통 대지, 전쟁 그리고 죽음으로 얼룩진 조국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망자가 된 남편의 옷을 그에게 입히고 사랑을 나누는 그녀는 곧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기도 하다. 사라예보에서 그는 마침내 그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이보 레비를 만난다. 이보 레비는 스스로를 ‘사라진 시선의 수집가’라고 부르며 수많은 옛날 영화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그에게 그 시선들(카메라의 시선)을 가둬둘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세 통의 필름에 대한 현상에 착수하는 과정에서 그는 이보레비의 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안개 낀 날은 축제가 벌어지는 날이라고 말해 주면서, 이보 레비는 현상이 끝난 필름이 마르기까지 강가에서 산책을 해보라고 그에게 권유한다. 안개 낀 말은 저격수들의 총구가 사람들을 쓰러뜨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그리고 인종과 국가와 종교가 다른 젊은이들의 오케스트라가 연주된다고, 말해준다. 안개 자욱한 강변에서의 댄스 축제에서 이보 레비의 딸과 그는 춤을 준다. 그러나 이때 나타나는 일단의 군인들은 이들을 무참히 사살하고 “아이들은 안 돼”라는 피살자들의 절규가 울리는 가운데 이보 레비 딸의 시신을 안고 그는 통곡한다. 이보 레비의 집으로 돌아온 그는 현상된 필름이 영사기에서 돌아가는 가운데 깊은 침묵의 슬픔에 잠긴다.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헤맸던 그의 눈에는 마침내 이슬이 맺히고 그가 본 영상은 그 슬픔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한다.

/김성희 객원전문기자 (백제예술대학 방송시나리오극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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