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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29>나라야마 부시코
2008년 04월 24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삶을 넘는 문턱으로서의 나라야마, 그리고 죽음에 대한 사유"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1982년, 일본



<나라야마 부시코>는 삶과 죽음의 근원을 탐구하는 영화이다.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은 일체의 기교를 배제한 리얼리즘 기법으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후가자와 시치로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노인을 버리는 설화를 담은 『기로전설』과 농촌의 성(性)을 묘사한 『동북의 신무여』를 결합하였다. 또한 1958년 기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이 영화로 제작하여 일본 국내 상을 휩쓸기도 했다. 기노시타 감독이 가부키 양식에 맞춰 올 세트 촬영으로 추상적인 영화를 제작했던 것에 반하여, 이마무라는 원작을 철저히 재해석해서 인간의 역동적인 삶을 리얼하게 담아냈다. 1983년 칸느 영화제는 이 작품에 황금 종려상을 안겨주었고, 이후 1997년 <우나기>로 다시 한번 황금종려상을 수상함으로써 이마무라 쇼헤이는 세계적인 작가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죽음을 통하여 삶을 보여주는 영화

영화가 완성되기까지는 3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실제로 감독은 배우들과 함께 폐촌에서 농사를 생업으로 생활하였고, 영화 속에 자신이 경험한 삶을 담아냈다. 굶주림으로 고통스러운 계절인 겨울, 태어난 사내아이는 논바닥에 버려지고, 여자 아이는 소금 한줌에 거래된다. 타인의 식량에 손을 댄 사람은 가족과 함께 생매장된다. 노인은 새로 태어난 생명을 위하여 마을의 높은 산 <나라야마>로 떠나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 다츠헤이의 어머니 오린은 이제 칠십을 앞두고 나라야마로 떠날 준비를 한다. 여름, 아내와 사별한 다츠헤이는 새장가를 간다. 오린은 며느리에게 유용한 삶의 지혜를 나눠주고, 자신이 죽어도 좋을 만큼 쇠약해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절구통에 이를 부딪쳐 깨트린다. 피를 흘리며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에 역설적으로 삶을 긍정하는 미소가 번진다. 가을, 다츠헤이가 오린을 붙잡기엔 식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오린이 말한다. "내일 새벽 나라야마에 갈거다." 다음날 새벽 오린을 지게에 진 다츠헤이는 천근같은 걸음으로 나라야마를 향한다. 나라야마 정상에서 삶을 마감하는 노인에겐 천국이 기다린다는 전설이 있다. 어머니를 정상에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에 눈이 내린다. 뒤돌아보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말없는 미소로 어서 내려가라는 손짓과 함께 눈인사를 건낸다.



자연과 인간의 순환 고리

<나라야마 부시코>는 인간과 자연의 생사의 과정이 씨줄과 날실로 엮여 있다. 모든 생명은 과정에 있고, 탄생은 죽음으로 순환한다. 삶과 죽음이 함께 가듯, 인간과 자연이 함께 빚어내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는 순환을 통해 재생하는 동양적 사고와 만난다. 영화는 겨울의 눈, 봄의 꽃과 여름의 녹음, 가을 단풍이 순차적으로 순환한다. 그 계절에 맞춰 곤충과 동물들의 생태도 변화한다.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고, 개구리는 참외를 먹는 역동의 엔트로피가 영화를 다이나믹하게 이끌어가고, 사랑을 나누는 인간들 곁에서 교미하는 뱀, 곤충, 마을의 관습을 어기고 도둑질을 한 가족이 생매장되자 그 집의 수호신인 뱀이 도망친다. 자연은 그렇게 인간과 함께 공존한다.



이 영화의 미덕은 깨달음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라야마'라는 공간 자체가 깨달음을 주기에 충분하며, 절제된 대사와 행동들이 영화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던져 준다. 영화의 압권은 나라야마에 가기 위해 오린이 이를 부러뜨린 후 피를 줄줄 흘리면서 아들에게 자신은 늙었으니 산에 버릴 것을 말하는 장면과 다츠헤이가 오린을 지게에 지고 산에 올라가서 버리기까지의 약 15분이다. 실제 나이 45세였던 어머니 역의 사카모토 스미코는 영화 촬영 동안 10여 kg의 체중이 감소했고, 치아를 부러뜨리며 열연했다. 배경 음악이나 대사 없이 배우의 동작에 포커스를 맞춘 카메라는 다츠헤이 역을 맡은 오가타 켄의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나라야마 부시코>를 통하여 우리는 동서양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서의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잉마르 베르히만의 <제7인의 봉인>에서 죽음은 삶의 완성을 의미한다. 이때 죽음은 삶의 끝이기 때문에 공포일 수 있다. 그러나 나라야마를 향하는 오린에게 있어서 죽음은 삶과 삶을 이어주는 틈새일 뿐이다. 나의 죽음은 타인의 생명으로 하나를 이루어간다는 깨달음이 오린으로 하여금 죽음을 긍정하게 한다. <나라야마 부시코>는 한권의 철학책을 대신하여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제공할 것이다.<끝>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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