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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31>안경
2008년 05월 22일 (목) 김경미 객원전문기자 sjb8282@sjbnews.com
   
코미디, 드라마 | 106분 | 일본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


맑고 청명한 하늘 빛 그리고 그 하늘과 맞닿은 파란 바다와 하얀 모래만이 펼쳐진 아름다운 섬의 풍광이 시원하게 시선을 적셔준다. 영화의 시작은 기다림이다. 돌아오는 사람에 대한 익숙한 만남 그리고 서먹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만남으로 연결되는 조용한 기다림이다. 지도에서도 찾기 힘든 조용한 섬의 한낮, 기다림은 봄날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조용히 바라보며 “왔다”라는 한마디로 표현된다. 그 짧은 단어는 이 영화에서 결코 많은 언어가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게 한다. 영화 내내 일본어를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막이 없이도 이해될 정도의 쉬운 단어와 짧은 대화로 이어진다. 영상표현은 꼭 스토리를 이어가는 많은 언어가 아니어도 소통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사람들은 빠른 시간의 흐름과 그 안에서 익숙해진 자신의 일상에서 쉼표를 찾으려 여행을 떠난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타에코(고바야시 사토미) 역시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가장 조용한 곳을 찾아 여행을 결행한다. 봄마다 빙수를 선사하기 위해 섬을 찾아오는 사쿠라(모타이 마사코)와 민박집 주인 유지(미츠이시 켄), 그리고 고교 생물교사인 하루나(이치카와 미카코)와 타에코가 이어가는 섬에서의 일상과 소통을 담은 단순한 전개이다.

소통의 도구는 음식과 열린 마음이다. 그래서 감독의 이전작품 ‘카모메식당’과 많이 닮아있다. 핀란드-요론섬, 식당-민박집, 소울 푸드(오니기리-우메보시), 계피롤-가재, ‘커피(코피루왁)-맥주,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 잃어버린 짐-커다란 수트케이스, 합기도 스트레칭-메르시 체조 등이 그것이다. 그런 다소 엉뚱한 전개가 결코 낯설지 않은 편안함을 주는 휴식같은 영화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깊은 대화나 설명이 필요치 않은 이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는 바로 중심인물 '타에코'다. 도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여행을 결행하고도 느슨한 시간의 흐름과 자유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나 자신이다. 자기 체구보다 훨씬 큰 수트케이스를 힘겹게 끌면서도 결코 놓아버릴 수 없는 미련과 속박에 스스로 묶이고 마는 우리 자신인 것이다. 그런 긴장감을 놓아버리지 않는 한 이 영화와 소통할 수 없다. 그러나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을 자연스럽게 무장해제 시키는 놀라운 힘을 감독은 발휘한다. ‘타에코’가 ‘섬에 적응하는 소질’을 가지고 그들과 동화되는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 그 ‘본능적 소질’을 제공한다. “오른쪽 커브길이 나오지 않아 점점 불안해질 즈음부터 몇 미터 앞에서 우회전” 하는 식의 약도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엉뚱함과 여유를 가지는 그 ‘소질’ 말이다.

여행의 본질은 '발견'이다. 전혀 새로운 것 앞에서 변화하는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익숙한 체험들 속에서는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을 탈피한 여행, 그 과정에서 얻는 모든 자극은 우리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뿐 아니라 지적ㆍ정서적 변화를 일으킨다. 사람은 바로 이런 변화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존재인 것이다. - 다치바나 다카시의 《사색기행, 나는 이런 여행을 해왔다》 중에서 -

우리들은 휴식을 가장한 여행에서도 많은 것을 얻으려 한다. 일부러 얻으려 것보다 가진 것을 놓을 수 있는 용기와 여유를 가진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영화는 이야기한다. ‘오기가미 나오코’ 라는 젊은 여성감독의 혜안을 ‘안경’으로 빌려 쓰고서야 새삼 느끼는 자유로움이다. ‘타에코’는 잃
   

어버린 안경이 없어도 세상을 보는 아름다운 시력을 되찾았다.

그 섬은 특별하다. 유지와 사쿠라의 ‘굉장한 관계(?)’처럼 이제 우리 모두는 요론섬을 향한 특별한 동경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성과 감성을 적당히 조율할 수 있는 휴식의 파라다이스, 슬로우 라이프와 안단테의 미학을 떠올리며.......


/김경미 객원전문기자(미르기획 대표,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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