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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32>데어 윌 비 블러드
2008년 05월 29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There Will Be Blood-스크린 속의 ‘마이 룩’-고해성사

업톤 싱클레어의 1927년 소설 <석유(Oil)>를 원작으로,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등의 걸작을 감독했던 폴 토마스 앤더슨이 연출과 각색을 담당한, 한 석유재벌의 파란만장하고 부조리한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출연진으로는, <나의 왼발>로 오스카상을 수상했던 다니엘 데이-루이스가 주인공인 석유재벌 다니엘 플레인뷰 역을 맡아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펼치고 있고, 이번이 데뷔작인 아역배우 딜론 프레지어가 다니엘의 아들 역을 연기했으며, <리틀 미스 선샤인>의 폴 다노(1인2역) 등이 출연한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폴 토머스 앤더슨이 집요하게 묘사했던 미국 자본주의(Pax-America)의 뒷면, 그 복잡한 미로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종교와 자본주의 산업, 가족 이데올로기를 관통하며 피로 얼룩진 미국의 기원을 탐색하는 이 영화에서 폴 토머스 앤더슨은 세속적 부와 영광을 좇는 자아와 절대 불변의 진선미를 추구하는 기독교적 믿음과의 충돌을 객관화함으로써, 기업화하고 권력화한 종교 집단의 온상과 자본주의 논리로 재편되는 사회적 질서의 맥락 속에서 일종의 ‘묵시론’적 예언을 하고 있다.

내 안의 ‘나’와 ‘내부의 적’의 두 가지 모습으로 나는 언제나 함께 갈등한다. 섬뜩하리만치 극단적인 내 안의 ‘내부의 적’이 내리 치닫고 있는 종말, 또 하나의 ‘파멸의 묵시록’을 미리 투시하고 난 느낌이다. 명성, 부, 권력 등으로 이어지는 치열한 생존 게임 법칙과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천상 율법 사이에서 막 고해성사를 치르고 나오며 합리화의 달인답게 회심(?)의 미소를 짓는 냉담자의 모습으로 엔딩 크레딧 화면 앞에서 한동안 망연자실한다.

‘나’를 위한 하나님인가, 하나님을 위한 ‘나’인가, 또 다른 면죄부 없는 고해성사 시간이다. 우린 저마다 자신의 영역과 이념 안에서 타인의 취향이나 관점을 폄하하거나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살인’마저도 주저하지 않는 제2의 플레인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접하면서, 우리들 중 몇몇은 또 다시 ‘미학적 거리’두기로 부터 ‘안전거리’로 물러나 삶의 관조적 명상에 칩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일부 거대서사의 주동자들 그늘 아래 타인의 취향에 대한 사적 ‘살인’일랑 관념 속에 묻혀두고, 슬픈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이름없는 소멸
   
의 길을 간다.

황폐한 자본주의 논리가 극점에 달하게 되고 그에 따른 인간사회의 비인간화는 신앙을 급격하게 소비한다. 하지만 자본과 결탁하는 신앙은 실상 자본의 수하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 우리는 서글픈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남는다.

/김성희 객원전문기자(백제예술대학 교수,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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