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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34>파리 텍사스
2008년 06월 19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황량한 도시 속의 서정과 애수 -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 1984



독일의 많은 감독들 중에서 한국에 잘 알려진 감독은 아마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빔 벤더스 두 감독일 것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감독 파스빈더와는 달리 최근에도 할리우드와 독일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벤더스는 작년 벤더스 회고전을 계기로 오랜 만에 한국을 공식 방문한 바 있다. 벤더스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영화는 아마도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일 것이다. 참, 최근에는 한국의 음악영화 애호가들에게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도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한 바 있다.

1984년에 나온 <파리, 텍사스>는 특히 그 해 칸 영화제를 빛내며, 벤더스를 세계영화계의 대가로 자리잡게 한 작품이다. 트래비스(해리 딘 스탠튼)는 서부를 방황하다가 쓰러진 후 연락은 받은 동생 월트가 찾아와 데려간다. 하지만 트래비스는 4년 전에 그저 길을 떠났고,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보이고 사람들도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성장해 11살이 된 자신의 아들 헌터를 만나고 서서히 자신과 아들의 관계를 복원하고 자신이 길을 떠난 이유인 자신의 아내 제인(나스타샤 킨스키)에 생각이 미친다. 트래비스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휴스턴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아내를 찾아 길을 떠난다. 아들과의 여정에서 트래비스는 자신의 과거를 아들에게 이야기하며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아내를 다루었는가 그리고 아내가 왜 떠나갔는가를 암시하고, 콜걸로 일하는 아내를 만나 (거울로 기능하는) 유리를 마주하고 트래비스는 아내에게 - 또 자기 스스로에게 - 자신의 이야기를 해 준다.

영화가 라이 쿠더의 멜랑콜리한 선율을 배경삼아 서부를 방황하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에서 벤더스는 <파리, 텍사스>에서도 여전히 길 위에서 자신을 찾는 인물을 그려낸다. 벤더스 세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미국문화와 미국에서 희망을 보았던 감독으로서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대표인 웨스턴의 무대이자, 미국 정신을 대표하는 서부를 배경으로 감독 스스로의 길 찾기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보자면 <파리, 텍사스> 주인공의 이름이 트래비스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벤더스 이전 작품에 비해서 이야기가 훨씬 전면으로 나서며 관객이 보다 편하게 소통하도록 해 준다. 하지만 <파리, 텍사스>는 여전히 벤더스 스타일의 연장에 서있다. 영화는 바로 시네마적인 이야기 전개, 즉 비주얼한 이미지가 서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벤더스가 보여주는 영상은 언젠가 크라카우어와 바쟁 등이 옹호한 사실주의적 영상이 어떤 것인지를 예시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극영화이면서도 마치 연출되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해내도록 하는 미장센은 가히 대가적이랄 수 있다.

장면 하나, 헌터와 트래비스가 일단은 제인을 찾은 후 되돌아와 어느 바에서 대화하는 장면의 미장센은 우리에게 묘한 감정의 울림을 안겨준다. 처음에는 둘이 이야기 하다 아들 헌터가 혼자서 바를 나서 문 앞의 차 위에 올라 앉아 있는 모습과 바에서 여전히 맥주를 마시는 아버지 트래비스의 모습이 딥포커스로 처리된 영상은 벤더스가 보여주는 이미지의 일단을 보여준다. 제인을 발견한 후 이들이 느끼는 묘한 감정이 처음에는 일종의 동질감으로, 하지만 각기 따로 자리한 헌터와 트래비스의 모습을 통해 아내와 엄마를 찾고 느끼는 이 둘의 다른 내면의 울림을 스크린으로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에피소드를 중시하는 벤더스 영화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파편화된 에피소드가 어느 순간 강력한 드라마로 환하는데, 바로 이 신이 그 한 예일 것이다.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가 단지 84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 관객에게는 80년대 청소년들의 디바였던 바로 나스타샤 킨스키의 청순하면서도 매력적인 모습으로 잘 알려진 영화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먼지 쌓인 비디오를 꺼내 들고 다시 한 번 볼만한 고전이리라.

/이주봉 객원전문기자(군산대 전임강사,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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