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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35>부운
2008년 06월 26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구로사와아키라, 오즈야스지로, 미조구치겐지와 더불어 기억되는 감독, 나루세미키오의 작품(1955)으로, 유키코의 미소 짓는, 단아한 원피스 차림의 모습과 도미오카의 우수어린 그윽한, 웃는 듯 우는 듯한 눈매가 인상에 남는 영화이다. 먼저 <부운>이란 제목 자체가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라는 어느 불교적인 시의 한 구절을 상기시켜 주면서 삶의 덧없음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이 영화는 흔히 “현대적인 여성 인물을 창조함과 동시에 남녀의 사랑을 통해 전후의 황폐한 시대상을 탁월하게 그려낸 일본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진다. 여기서 ‘현대적 여성’이라함은 유키코의 인생여정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기존 사회 제도와 문화에 갇힌 ‘일상적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난 시선으로 여성 현실을 직시하고 능동적으로 변모해가는 주체적 여성을 의미할 것이다.

태평양 전쟁 중 동남아에서 만난 일본인 남녀가 패전 후에도 귀국하여 구차한 애증의 관계를 지속한다. 과거의 아름답던 단아한 하얀 원피스가 아닌, 이젠 스카프와 ‘몬베’ 바지 차림의 여자가 전후 황량한 도심지를 배경으로 ‘남국 로맨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서는 첫 장면으로부터, 줄곧 ‘길 떠나기’의 남자와 ‘길 찾기’의 여자가 벌이는 이별과 만남의 반복적 인연에 지겨움을 느끼면서도 시종여일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우리는 마침내 답답한 침묵으로 남는다. 남자는 끊임없이 길 떠나고 여자는 끊임없이 그 길을 좇아간다. 그 둘은 미로 속에서 만나고 헤어짐을 거듭한다. 이런 ‘반복적 구도 속에서 생성되는 신파조의 그 묘한 울림’이 긴 여운을 남긴다. 한 순간의 막간극적 사랑을 무대 중심에서 찾는 능동적인 사랑의 주체인 유키코의 그 용기와 순수함에 우린 할 말을 잃고 침묵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랑의 로망은 비현실적 세팅에서 더욱 로맨틱하다. 현실은 이따금 사랑의 미혹과 그 찰나적 속성을 일깨우는 각성제가 되어, 혹자는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떠나는 그 뒷모습일랑) 실눈으로 볼 것’이라고, 혹자는 ‘아, 가슴 아프다, 사랑한다는 그 말, 하고 싶지 않은 그 말(해서는 안 될 그 말)’이라고 귀엣말로 속삭여 주기도 하지만, 그런 현명한(?) 충고엔 아랑곳하지 않고서 우리는 그만 미혹의 강을 건너다가 끝내 실종당하고 만다, 일엽편주, 뜬구름으로.

나루세미키오 감독의 ‘물 흐르는 듯 부드러운 연출’과 ‘무엇보다도 여자의 심리를 따라잡는 섬세하고 세련된’ 숙련미와 여러 씬들에 깃든 일본 여성 문화들이 잔잔하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특히 다다미방의 온기를 지켜주는 히바찌(火爐)를 마주하고 나누는 온정(溫情)은 인상적이다. 나루세미키오 감독의 앵글은 단조롭고 카메라의 동선은 크지 않고, ‘빛의 거장’이라는 찬사에 어울릴 만큼, 카메라 앵글 속 빛과 그림자를 활용해서 놀라운 동적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빗줄기들 사이로 세분되는 듯한 일본 문화적인 ‘선(線)의 미학’과 함께, 남녀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삶의 도식을, 그 숱한 동심원들의 파문 속에서 작은 미립자에게 가해지는 생성과 소멸이라는 힘의 역학관계를, ‘실눈으로’ 반추해본다.


/김성희 객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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