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7 목 21:50
> 객원전문기자 > 문화
     
[시네마산책]<37>길버트 그레이프
2008년 07월 10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감독 : 라세 할스트롬, 출연 : 조니 뎁, 줄리엣 루이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피터 헤지의 소설을 영화화한 <길버트 그레이프>는 근대 산업사회의 등장과 함께 재구성된 가족의 이중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족 간의 애증, 갈등의 해소를 그린 감동적인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를 재생산하기 위한 가족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영화이다. 또한 조니 뎁, 줄리엣 루이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지금보다 젊고 진지한 모습과 빛을 발하는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탈주를 꿈꿀 수 없는 청년 길버트 그레이프

청년 길버트 그레이프는 무미건조한 인구 천명의 작은 마을 엔도라에서 “김 빠진 맥주”처럼 단조롭게 살아가고 있다. 7년 전 지하실에서 자살한 아버지, 그 충격으로 폭식증에 걸려 “뭍에 올라온 고래”처럼 되어버린 어머니, 노처녀 누나 에이미, 불만투성이 여동생 앨런, 그리고 정신지체아 남동생 어니. 아버지의 부재에서 출발한 가족은 서로에게 사랑이지만, 치명적인 짐이며 구속이다. 유목을 꿈꾸면서도 가족에 묶여서 떠남에 대한 상상조차 금기당한 길버트는 “파리 날리는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며 새로 생긴 대형할인마트인 ‘푸드 랜드’에도 가보지 못한 채 정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그런 길버트 앞에 캠핑카를 타고 떠도는 베키라는 소녀가 나타난다. 여행은 어린 소녀를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이를 이해하는 지혜를 선물한 모양이다. 그녀는 길버트로 하여금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베키는 길버트에게 자유이며,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 붙박이로 살아가는 자신과는 다른 세계를 탐구하는 신체와 정신을 가진 유목민이다.

“원하는 것이 뭐예요? 뭘하고 싶어요?”

“새것이 필요해. 새 가구, 새 집. 어머니가 에어로빅이라도 하셨으면 좋겠고, 앨런이 빨리 성장했으면 좋겠고, 어니의 뇌도 새 것으로 바꿔주고 싶어.”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요? 당신은요?”

“나? 난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이제 그만하자.”



부재 메우기

자살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족을 떠안은 길버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게감으로 침대를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를 대신하는 큰누나 에이미, 그들에게 부모는 양가적인 의미를 갖는다. 가족을 지키는 기둥과 울타리이면서 동시에 권위를 상실한 허약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결핍과 부재가 끊임없이 채워지면서 가족은 재생산된다. 부모를 대신하는 남매의 ‘자녀 되기’ 역할은 어니가 떠맡는다. 어니는 18세까지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정신지체아이다. 이는 보호와 훈육의 대상으로 새롭게 탄생한 근대 ‘어린이’ 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어니가 18세 무사히 넘기고,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성인으로 진입하는 생일 파티에서 가족의 화해가 이루어지며 어머니는 생을 마감한다. 어머니를 놀림감으로 만들 수 없는 남매들은 집에 불을 지르고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일상적인 삶에 대한 물음표

‘삶의 지속’은 익숙한 일상의 반복이 가지는 힘이다. 개인의 반복되는 신체와 일상은 사회 통합, 체제 통합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 자의든 타의든 - 습관과 규칙, 사고방식, 인간관계를 통하여 성인의 세계로 진입하고 그 자체에 의미부여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성인의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자위만이 가능할 뿐, 익숙함에 안주한다는 것이 삶을 제약하고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고래 같은 엄마와 가스탱크 탑의 높은 곳에 올라가려는 정신 지체아를 가족으로 두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길버트에게서 공명하는 코드를 발견할 것이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특정한 코드로 규격화된 자신을 해체하고 싶은 욕망을 선물해주는 영화이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새전북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새전북신문(http://www.sjb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고충처리인기사제보제휴안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발행소: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 728번지 새전북신문 | 대표전화:063-230-5700 | 구독안내:063-230-5712
제호:SJBnews | 등록번호:전라북도 아00058 | 등록일자:2012년 03월13일 | 발행·편집인:박명규 | 청소년보호책임자:오성태 | 종별:인터넷신문
주식회사 에스제이비미디어는 새전북신문의 자회사입니다.
Copyright 2006 새전북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PSUN@s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