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와사람]장례지도사 장재익씨
[일터와사람]장례지도사 장재익씨
  • 하종진 기자
  • 승인 2008.10.09 2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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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익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장재익씨가 고인의 몸을 삼베로 감싸고 있다.

“장례일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독하게 마음먹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라 사명감도 필요하죠.”

올해로 8년째 장례지도사 일을 해오고 있는 장재익(42·전주시 삼천동)씨는 일반일들에게 다소 생소한 장례지도사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음독과 교통사고, 실족사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을 대하면서 마음을 굳게 먹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장례 예법과 절차에 따라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를 최대한 갖추고 유가족들과 아픔을 같이 하기도 한다.

▲장례지도사 장재익씨가 고인의 본관과 이름을 적어 관에 덮는 '명정'을 만들고 있다.

입관을 하다보면 참 많은 사연이 있는 사람을 대하게 된다. 장씨는 최근 20대 초반의 학생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어 입관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 입관 중 숨진 여성의 부모가 실신을 하기도 해 마음이 아팠다고.

그는 “죽은 사람은 떠나야하고 남아있는 유가족들은 떠나보내야 하는 입장에서 우리들은 이들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며 “가족들이 입관을 지켜보면서 설움에 북받쳐 통곡하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플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입관 순간이 다가오면 유가족들은 이제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동안 못해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섞인 울음을 한꺼번에 토해낸다. 항상 하는 일이지만 죽은 사람을 영영 떠나보내야 하는 가족들의 절박함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면 그 때마다 마음이 쓰라리고 아프다고 장씨는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장씨는 자신의 일에 충실하려고 애쓴다.

그는 “1시간에서 1시간 반이 소요되는 입관을 하다보면 가족들이 손을 부여잡고 ‘고맙다’는 말을 할 때가 많다”며 “예법에 맞춰 입관을 치르고 죽은 사람을 보내주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9일에도 장씨는 ‘염사 옷(입관을 할 때 장래지도사가 입는 흰 옷)’을 입었다. 익산 한 장례식장에서 70대 노인을 떠나보내기 위해서다. 이날 입관에는 유가족 8~9명이 자리를 같이해 마지막 세상을 떠나는 고인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감췄다.

전주에서 장례대행 업체인 삼성라인(주)에서 일하고 있는 장씨는 이 일을 시작하고도 쉽게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했다. 일의 특성상 내세울만한 직업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가족과 부인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돼서다.

이런 이유로 그는 1년이 지나고서야 아내에게 말을 꺼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아내가 알게 됐다. 유통업에 종사하다 불현듯 장례지도사일을 하게 된 그는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특수한 직업인만큼 그만큼 수익도 많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자 생각과는 달리 큰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을 등진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의 중개역할을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장례지도사들의 주 역할은 입관이지만 장례식 전반을 관리하고 이끈다.

장씨는 시신을 수습하면 제일 먼저 시신을 반듯하게 눕힌다. 칠성판이란 오동나무로 된 판에 시신의 몸이 굳기 전에 팔과 다리를 곧게 펴 반듯하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초렴이라고 부른다.

이후 발인 전까지 시신의 수의를 입히고 몸을 닦아 입관하는 과정까지를 대렴이라고 지칭한다. 이 모든 과정이 장례지도사로서 장씨가 하는 일이다.

▲장재익씨가 고인을 입관한 뒤 염지를 덮으려 하고 있다.
장씨는 “가족과 주의 친구들에게 이 일을 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주위의 반대로 한동안 마음고생도 많았다”며 “하지만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이고 무엇보다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어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례지도사 자격증이 있다고 해도 이 일을 곧바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입관을 할 경우 대부분 2명의 장례지도사가 들어가 일을 하게 되는데, 한명은 보조역할을 수행한다. 장씨도 처음에는 보조부터 시작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10여년 전만해도 장의사라는 직업이 성행했다. 죽은 사람에게 예를 갖춰 장례를 치르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기에 그만큼 우대를 받는 직업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조회사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장례지도사들도 많이 배출되면서 예전처럼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게 장씨의 설명이다.

대규모로 운영되는 상조회사들이 장례업무를 도맡아 하면서 장례가 상업적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고인을 떠나보내는 장례 의식과 마음가짐은 여전하다.

장씨는 “간혹 입관을 하다보면 어떤 상주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애써 울음을 참는 모습을 보게 되고 어떤 상주는 호상이라고 해 사실만큼 잘 살고 갔으니 괜찮다고 말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아무리 잘살고 아름답게 떠났어도 기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지금 살아있는 동안 내부모와 내 자식, 내 이웃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종진 기자 wlswjd@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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