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나무하면 전남 담양을 떠올린다.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소도시 담양을 먹여 살린다. 그러나, 담양 못지않은 규모와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익산시 금마면이다. 금마면에는 수천 평이 넘는 대나무 군락지가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그 중 미륵산 자락의 구룡마을에는 50,000㎡에 이르는 한강 이남의 최대 대나무 군락지가 있다.

국내 대나무의 주요 수종인 왕대의 북방한계선에 위치하고 마을 한가운데 넓게 자리해 생태와 경관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구룡마을에서 재배된 죽제품은 ‘지나가는 개도 조기를 물고 다녔다’던 강경 오일장을 통해 충청도, 경기도까지 팔려나갔다.

대나무는 줄기는 물론이고, 댓잎부터 댓가지까지 버리는 게 없고, 대나무 한 다발이 논 한 마지기의 금전적 가치를 가졌었다. 아직도 마을 주민들은 대나무숲을 ‘生金밭’이라고 한다.

전북생명의숲은 구룡마을의 이런 대나무숲의 가치에 주목했다. 삶의 질, 여가를 중시하는 도시인의 문화적 변화는 농산어촌에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구룡마을의 대나무숲은 다른 어떤 물리적 자원보다도 그 가치가 뛰어나다고 판단했다.

구룡마을의 마을만들기는 2005년 겨울의 냉해 때문에 고사돼, 폐허 직전에 있던 대나무숲을 살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구룡마을의 마을만들기는 마을 주민에 의해 고안되고 실행된게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제안과 설득으로 출발했다. 마을 주민들은 외부가 제시하는 비전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마을의 새로운 소득자원을 창출하는 것이라는 비전을 주민들의 자발적 발상과 행동으로 만들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마을의 ‘내발적 역량’이 취약한 상황에서 우선 필요한 것은 마을 내 자생단체 임원들과 보조적 지원자다. 이들과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외부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지속적인 만남과 토론을 거치면서 대나무숲을 포함한 마을의 전반적인 상황을 공유하면서 비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한두 사람의 ‘선포’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제안과 동의를 얻어 ‘구룡마을발전위원회(이하 발전위)’를 공식적으로 발족시키기까지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주민들의 자생적인 역량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의 역할이 지나치게 앞서거나 강조될 경우, 마을의 발전은 일시적인 활동에 그치고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발전위 구성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발전위가 처음 시작한 일은 대나무숲 복원이 아니라 의관도, 제기도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는 산제를 ‘산제답게’ 올리는 것이었다. ‘구룡산제’는 새마을운동 직전에 산제당이 간첩의 은신처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철거됐다. 존폐 위기에 있으면서 마을의 ‘토속 공동체’를 유지하는 유일한 행사였다.

산제의 형식을 제대로 갖춰 올려보는 것은 주민들의 숙원이었다. 정월 초사흗날에 지내는 산제를 앞두고, 분실된 자료를 찾아 산제계 계칙(契則)과 축문(祝文)의 기록을 복원했다. 또 마을 주민과 함께 정성스럽게 산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전위와 주민들과의 신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산제를 올린 2007년 2월, 산주의 동의를 받아 산림청 녹색자금관리단에서 추진하는 ‘전통마을숲 복원 공모사업’에 복원 대상지로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고사된 대나무를 제거하는 1차 복원사업 이후에도 경관의 원형 회복을 위해서는 매년 상당한 금액이 필요해 단년도 사업으로 진행되는 마을숲 복원 대상지로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을 주민들의 실망이 컸으나, 복원 사업을 할 때 협력관계를 구축했던 익산시 주민생활지원팀의 협조를 받아 익산시의 ‘아름다운 마을가꾸기 사업’에 선정됐다. 이를 계기로 ‘선진지 견학’, ‘주민자치역량 교육사업’ 등을 1년 동안 진행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마을가꾸기 사업’을 진행하면서 전북생명의숲은 식목일 행사를 ‘대나무숲가꾸기’라는 주제로 전주와 익산 시민, 마을 주민들과 함께 구룡마을에서 진행했다.

이 행사는 구룡마을의 대나무숲을 외부에 홍보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신문, TV 등의 언론매체 보도는 마을주민들이 몰랐던 대나무숲의 새로운 가치를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또 대나무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경남 사천의 비봉내마을과 전남 담양 등으로 견학을 다니면서 반신반의하던 주민들도 서서히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고, '해보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됐다.

올해부터 대나무 숲 복원사업이 본격화됐다. 이 사업은 △고사된 대나무를 제거하는 간벌 △산책로 조성 및 휴게시설 설치 △마을 조사 및 마을해설사 양성 등으로 구성됐다.

간벌작업 과정에서 익산시는 “전문업체를 선정해 진행하라”는 것이었으나 주민들이 반대했다. 주민들은 “우리 만큼 대나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고, 주민들이 직접하면 주민 소득사업이 된다”고 설득해 주민들 스스로 작업반을 구성해 진행했다. 간벌과 산책로 조성사업은 설계 변경 등의 시행착오에 부딪치면서도 마무리했으나, 마을조사와 마을해설사 양성과정은 중도에 포기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대나무숲 경관 복원 사업의 결과, 대나무숲이 빠른 속도로 경관을 회복하고 있으며, 2~3년 동안만 지속적으로 ‘솎아베기’ 등의 관리를 해주면 굵고, 곧은 대나무숲 원래의 경관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한다.

마을만들기는 토목, 건축, 자연 등의 물리적 환경의 정비뿐만이 아니라 시스템, 조직, 주민의식 등의 소프트웨어면도 포함한다. 눈에 보이는 마을만들기는 쉬워도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을만들기는 어렵다. 하드웨어에 치중한 물리적 개선사업은 경계해야 된다. 이래서 마을만들기는 ‘사람만들기’이고, 사업보다는 사람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40세 미만의 농가수가 3.5%에 지나지 않고, 60세 이상의 농가수가 60%을 넘어서는 현실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을 찾는 일, 사람을 만드는 일이 마을만들기의 시작과 끝이다. 그것은 이농심행(以農心行) 무불성사(無不成事)의 마음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박성수 전북생명의숲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