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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52>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입
2008년 11월 20일 (목) 김혜영 객원전문기자 sjb8282@sjbnews.com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는 1989년 선댄스 영화제 최우수관객상, 제 4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남우주연상과 국제비평가협회 특별상을 받은 수작이다. 당시 26세의 스티븐 소더버그는 8일 만에 탈고한 시나리오를 직접 감독, 녹음, 편집까지 맡아 이 영화를 완성하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은 현대인의 병든 내면과 소통 불능의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대인의 부조리한 삶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차용한 상징은 의식적 발기불능과 무의식적 불감증, 도덕불감증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섹스중독이다. 감독은 서로 간의 대화에서 미묘하게 어긋나는 지점에 방점을 찍어줌으로서 관객의 시선을 고정한다. 아이러니한 섹스와 그 과정, 그리고 사람이 아닌 카메라를 통하여 짓눌려 있던 그들의 욕망과 허상을 표출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양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존과 앤은 겉보기에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부부지만, 수개월동안 육체적 접촉을 하지 못하는 섹스리스 부부다. 존은 처제 신시아와 불륜의 관계에 있고, 앤은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고 있다. 사건은 어느 날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던 존의 친구, 그레이엄이 등장하면서 전개된다. 앤은 그레이엄의 방문을 내켜하지 않지만, 존의 강권에 그레이엄이 살 아파트를 함께 구하러 다닌다. 앤은 성행위를 할 수 없다는 그레이엄의 고백에 놀라는 한편 매혹 당한다. 바로 그 시간, 존은 신시아를 집으로 초대해 열정적인 밀애를 즐긴다. 얼마 후 앤은 그레이엄의 집에 방문해서 여자들의 이름이 쓰인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다. 테이프들은 그레이엄이 여자들의 성경험을 인터뷰하여 만든 것이다. 처음엔 분노하며 화를 내던 앤은 자신과 존의 관계를 비디오테이프에 담으면서 서로를 치유해나간다.

Lies
일상을 가득채운 거짓말은 현대인의 처세에서 빠질 수 없는 방식이다. 이때 거짓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거짓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타인 뿐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면서 진실을 무의식으로 밀어 넣는 방식의 거짓말이 존재한다. 억압은 왜곡된 소통을 낳는다. 앤에 대한 존의 태도가 그렇다. 그는 자신의 친구인 그레이엄과, 아내인 앤, 처제이자 내연의 관계에 있는 신시아에게 거짓말을 일삼는다. 존의 거짓된 태도는 무의식적 불감증으로 나타난다.

Sex
신뢰할 수 없는 관계는 성관계 자체를 부인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든다. 거짓말로 일관하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거부, 전 애인의 거짓말에 의한 심리적인 발기불능이 그것이다. 섹스는 대상이 필요하고, 상처와 희열을 준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언어이며, 욕망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섹스와 대화를 연결한다. 존과 신시아는 육체적 교합만 있을 뿐 정신적인 교류가 없으며, 섹스만 있을 뿐 대화는 없다. 반면 앤과 그레이엄은 육체적 교합은 없지만 정신적 교류가 있으며, 섹스는 없지만 대화가 있다.

Videotapes
비디오테이프는 섹스와 거짓말이 빚어내는 아픔과 상처를 담아내는 매개물인 동시에 치유의 수단이다. 네 명의 주인공이 각각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또는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되었을 때, 그 시간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성찰의 시간이다. 카메라는 사람들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무의식을 의식화시키는 일, 진실을 드러나게 하는 소도구로써 카메라는 무의식에 잠재해 있는 욕망을 언어로 의식화 하여 치유를 경험하게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은 앤과 그레이엄이다. 앤은 완벽한 가정주부로서 현실을 수용하는 듯 보이지만, 성 불능으로 어디에도 정박하지 못하는 그레이엄까지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인물이다. 비디오테이프에 대해서 놀랄 만큼 분노하던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억압된 섹스와 성에 대한 욕구를 표현함으로써 그 한계를 극복한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는 미국 사회 이면에 얽힌 성, 가족, 믿음과 실존의 문제를 매우 지적으로 묘파한다. 영화는 섹스에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이야기, 섹스를 주제로 한 인터뷰는 사랑으로 끌어올려진다. 거의 이십년 전의 영화지만, 현재의 시점으로 읽어도 전혀 손색없는 영화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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