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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54>중경삼림
2008년 12월 04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중경삼림(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1994) /왕자웨이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하는 시간에 대한 두 개의 옴니버스


‘열혈남아’ ‘아비정전’으로 이어지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왕자웨이 감독을 본격적으로 작가의 반열에서 회자될 수 있도록 한 영화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왕가위 열풍’을 일으키며 홍콩영화에 대한 관객의 인식에 새로운 붐을 조성하도록 공헌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동사서독’ ‘타락천사’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은 고독한 현대의 군상, 동성애, 불륜의 외로운 줄타기 등 다양한 소재와 함께 독특한 영상전개 그리고 감각적인 언어로 동시대의 정체성과 문제의식을 찾는 혁신적인 감독이라는 평을 들으며 두터운 매니아를 형성하고 있다.

홍콩반환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현실을 앞에 둔 시기적인 요소가 중요한 영화의 모티브가 되고 있으며, 네 사람의 젊은이를 통해 사랑과 이별 그리고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가지의 감성적인 옴니버스 형식을 갖고 있다. 1990년대 시대적 변화를 겪어내는 젊음의 특권이었던 스피드와 자유를 돌아볼 수 있는 감각적인 영화이며, 빠르고 강렬하며 파격적일만큼 독특한 카메라 워크는 그 감성을 닮은 시원한 삶의 해법을 넘겨다 볼 수 있게 한다.



통조림 그리고 세상 모든 것에 적는 유통기한의 의미

223호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진 사복경찰 아무(금성무)에게는 스타 ‘야마구치 모모에’를 닮은 예쁜 연인이 있었다. 그러나 모모에의 남편인 ‘토모카즈’와 자신이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연을 당한다. 사랑이란 언제나 이별을 예감하는 이치를 잘 알고 있으나, 실연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이별을 통고받은 그는 그녀가 좋아하던 파인애플통조림을 모으기 시작한다. 자신의 생일인 5월1일까지를 유통기한으로 30개의 통조림을 모을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이다. 통조림처럼 세상의 모든 것에 유통기한이 있는 것이라면 사랑의 유통기한을 만년으로 적고 싶은 심정이다. 몸속의 수분이 땀으로 빠져나가 눈물이 나올 수 없도록 조깅을 하며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는 순수청년이다. 또한 낮에도 밤에도 노란색 우비와 선글라스를 쓴 노란 가발머리의 여인(임청하)이 있다. 언제 비가 올지 언제 태양이 빛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이름에 걸려 마약밀매의 브로커가 되었으나,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함정에 빠진다. 그녀에게 주어진 건 5월1일을 유통기한으로 하는 정어리 통조림이다. 통조림에 적힌 유통기한이 서서히 그녀를 조여오고 최후의 선택은 총성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방황하던 거리에서 어깨를 부딪친 지 정확히 57시간 후 그들은 지쳐있는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지친 그녀의 구두를 닦아주고, 삐삐에 생일축하의 메시지를 남기는 배려를 배워가는 그런 사랑이다.



각자의 시간에 갇힌 젊음의 방황 그리고 캘리포니아드림

633호라는 이름의 정복경찰 양조위에게는 아리따운 승무원 연인이 있다. 매일 습관처럼 샐러드를 간식으로 선물해도 불평없던 그녀이다. 샐러드가게 주인의 조언으로 소시지 또는 주스 등으로 간식을 바꿔주던 어느 날 그녀로부터 이별을 통보받는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간식도 고를 것이 그리 많은데 하물며 남자를 고르기는 참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별을 실감하기 싫어서 과거에 자신을 가두었다. 어쩌면 그녀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미래는 인정할 수 있으나, 현재라는 시간은 그에게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담담하게 그녀를 잊은 듯 행동하지만 그의 의식세계에 이미 현재는 없다. 그를 짝사랑하게 된 샐러드가게의 점원인 왕정문은 그의 옛 연인이 남긴 편지 속 열쇠를 갖게 되고, 몰래 그의 집을 드나들며 서서히 자신의 색깔로 물들여간다. 청소정도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물건들을 바꿔나간다. 그러나 정작 집주인은 눈치조차 챌 수 없다. 그는 현재의 모든 것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미래라는 시간에만 온통 집중하며 살아가므로 현실의 삶은 항상 몽환적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캘리포니아드림’처럼 미래의 불확실한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다. 그가 그녀의 존재를 눈치 채고 사랑을 시작하고 싶을 때 그녀는 캘리포니아로 떠나버린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의 재회는 이제야 현실로 돌아와 둘을 응시하게 된다.


홍콩반환의 시점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사랑이야기에 감독이 어떤 연관을 심어두었는지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선으로 찾아볼 일이다.


/김경미 객원전문기자(미르기획 대표,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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