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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56>파니핑크
2008년 12월 18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소통이 부재한 현대인의 고독한 삶’ <파니핑크>(nobody Loves Me, Keiner Liebt Mich, 1994)

독일 /104분 /감독 : 도리스 도리(Doris Dorrie) /출연 : 마리아 슈라더(Maria Schrader)



   
  ▲ 파니핑크  
 
<파니핑크>는 한 노처녀가 운명적인 남자를 찾는 과정에서의 헤프닝을 그리고 있다. 소통 부재의 고통스런 상황을 감독 도리스 도리는 유머를 통해 추상적인 분위기로 승화하여 독일 영화상 은필름상(우수작품상)을, 주연 마리아 슈라더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1994년 독일에서 <Keiner Liebt Mich (Nobody Loves Me)>란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여주인공의 극중 이름대로 <파니 핑크, Fanny Fink>로 개봉하였다. 우리에게는 "여자 나이 서른에 좋은 남자를 만나기란 길을 가다가 원자폭탄을 맞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대사로 친숙한 영화이기도 하다.



파니 핑크(Fanny Fink: 마리아 슈라더 분)는 자의식은 강하지만, 자존감은 낮은 스물아홉 노처녀다. 공항 소지품 검색원으로 일하고, 쾰른의 허름한 고층 아파트에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할 남자가 없다.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마인드 콘트롤을 하고, 죽음을 훈련하는 모임에 참석하여, 자신이 잠들 관을 짜서 방에 둘만큼 그녀의 삶은 공허하다. 어느날, 파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오르페오(피에르 사노우시-블리스 분)를 만난다. 그는 심령술에 정통한 신비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파니에게 운명의 한 남자를 예언하는데, 운명의 남자는 30대 초반의 아르마니 슈트를 입고 탐스런 금발을 한 멋진 남자라고 말한다. 이 남자와 만나는 것은 숫자 23과 연관 있다는 말을 듣지만, 파니는 신통치 않게 생각한다. 그런데 아침 출근길에 2323번을 단 블랙 재규어를 보았을 때, 파니는 운명을 믿게 된다. 수줍음 많은 파니는 2323번차와 충돌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사랑 찬스에 맹목적으로 달려든다.



영화는 파니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작은 프레임 안에 오로지 그녀만을 노출하고, 관객은 뜻하지 않게 그녀의 상담가가 되어 자학적인 노처녀의 한탄을 듣는다. 파니는 캠코더 앞에 앉아서 "못하겠어요, 저 자신을 이렇게 팔 순 없어요. 여자의 행복에 남자가 꼭 필요한 건 아니죠" 라고 말하는데, 이 도입부의 대사는 영화 전체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남자에 대한 뚜렷한 열망도 없이 결혼정보회사 카메라 앞에 앉아 있는 이 여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과연 남자인지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프레임의 공간적 한계는 그녀의 답답한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다. 객관적인 조건이 그렇게 나쁘지 않지만, 파니는 사랑에 집착하고,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며, 사랑으로 ‘자신만의 닫힌 공간’을 탈주하고자 한다. 이때 사랑이란 관계 지향의 소통에 대한 열망이다. 감독은 여성의 정체성의 지독한 혼란과 고독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소통을 이야기한다. 실제 파니는 “레코드 판 돌아가듯” 변화 없는 일상의 ‘터닝 포인트’가 될 어떤 변화를 기대한다. 공동체 안에서 소속감을 갖지 못하는 현대인은 누구나 어떤 계기로든 좌절에 빠진다. 소외가 반복되면 버림받았다는 분노와 함께 주류문화에 편승되지 못한 불안감으로 자기부재를 경험한다.

<파니 핑크>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단연 "오르페오"다. 낮에는 시장 골목에서 행인들의 미래를 예언해주고, 밤에는 게이 바(Bar)에서 립싱크로 노래하며 궁핍하게 살아간다. 흑인, 동성애자, 이성(理性)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미신을 신봉함으로써, 주변인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그러나 오르페오가 위기 상황에서 외우는 주술적인 주문과 그의 죽음 이후의 행태는 합리적 이성을 강조하는 문명과 대척점에 있다. 원시적인 행동으로 폐쇄적인 현대문명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지독하게 서툰 <파니>에게 조언하는 오르페오의 대사는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담아내고, 파니와 오르페오의 기묘한 동거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사랑의 방식, 삶을 긍정하는 니체식 사유를 통해서 삶의 변화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파니핑크>는 여성감독의 작품답게 섬세하고 감성적인 여성 내면심리를 절묘하게 포착하였을 뿐 아니라, 평범하지만 엉뚱한 캐릭터를 통하여 여성의 정체성과 고독, 소외의 문제 그리고 마침내는 세상을 껴안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의미 있는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을 온전히 품을 수 없고, 동등한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사랑과 소통이 없다면 삶은 언제나 레일처럼 홈 패인 공간을 반복해서 돌아갈 뿐 탈주할 수 없을 것이다. <파니핑크>는 관계 맺기와 소통이라는 일상의 화두에 답을 주는 영화가 될 것이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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