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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58>체리향기
2009년 01월 08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체리 향기: The Taste of Cherry (1997)> <체리 향기>는 1997년 깐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서, 존재와 죽음이란 화두로 일상생활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훈훈한' 영화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로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청동표범상을 수상하면서 이란 영화를 세계 영화의 반열에 끌어올린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의 연작을 통해 끊임없이 픽션과 다큐, 나아가 현실과 영화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하고, 서방 세계의 영화적 수사학을 멀리하며 이른 바, ‘마음’을 담아내는 페르시안적 시네마 베리떼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영화 <체리 향기>를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다보면, 우리는 흙먼지로 뿌옇게 물든 도시와 삭막한 벌거숭이 야산을 배경으로 어두운 눈매의 근심스런 한 남자의 얼굴 표정에 갇힌다. 시종 우울한 어둠의 그림자를 떨치지 못하는 표정의 한 남자(호마윤 엘샤드 분), 바디가 자동차를 몰고 황량한 벌판과 산길을 고불고불 달린다. 지나치는 사람들을 눈 여겨 보며 자신의 차에 누군가 동승할 사람을 찾는 형색의 그가 찾고 있는 사람은 수면제를 먹고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될 자신의 신체 위에 흙 이불을 덮어 줄 사람이다. 1삽의 흙 당 1만 토만 씩, 20 삽의 흙을 뿌려주면 20만 토만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며 만나는 사람에게 간절히 부탁하지만 사람들은 끝내 바디의 죽음 방조자가 되기를 거절한다.

첫 번째 만난 쿠르드족 어린 군인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도망치고, 두 번째로 그의 차에 탔던 아프가니스탄 신학생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도 살인이라면서 바디의 제의를 거절하며 오히려 바디를 설득하려 하다가 차에서 내린다. 그 다음으로 차에 탄, 박물관에서 새를 박제하는 터키인 박제사 노인(압둘라만 바그헤리 분)은 바디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더니, 바디의 청을 기꺼이 들어주겠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나지막한 소리로 이야기 한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자살을 하러 간 장소에서 어이없게도 너무나 향기롭고 달콤한 체리의 맛을 본 후 체리를 한바구니 담아 집으로 그냥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과 석양에 붉게 노을 지는 하늘, 보름달이 뜨는 달밤과 솟아오르는 샘물, 계절마다 열리는 형형색색의 과일 등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상기시켜주는 이야기들을 그 노인에게서 듣던 바디는 어떤 심경변화를 겪게 된다.

그날 밤 자신이 파놓은 흙구덩이에 가서 송장처럼 누운 바디의 시점 샷으로 일렁이는 시커먼 구름속의 달이 보인다. 그리고 비와 번개와 벼락 등의 궂은 밤 날씨 사이로 흙구덩이 속에 누워 있는 바디가 푸른 번개 빛에 보이는 가 싶더니 다음 장면은 정전이 된 듯 블랙으로 상당히 오래 암전상태로 지속된다. 이어서 부록처럼 보이는 영상 안에서는 일단 새 아침의 해가 뜨고 수십 명의 군인이 행군 뒤에 꽃을 꺾어 놀며 나무 아래서 쉬고 있다. 그리고 ‘영원한 잠’을 위한 ‘흙 이불’을 찾던 바디는 하룻밤 잠에서 깨어나, 선글라스를 쓰고 태연하게 자신의 고물 차 랜드로버를 타고, 고불고불 삭막한 산길을 올라간다. 감독과 스텝들의 촬영 장면과 바디가 선글라스 쓰고 새 아침을 맞는 이 마지막 장면은 까뮈의 ‘시지프스 신화’ 메시지를, 영화와 현실의 경계 지우기로 은유하는 느낌을 준다.

의사를 찾아가서 '손으로 머리를 만져도 아프고 다리를 만져도 아프고 어디를 만져도 아프다' 고 호소하던 환자가 손가락이 부러졌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노인의 농담처럼 삶이란 생각보다 간단한지도 모른다. 절망의 나락에 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삶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때로는 죽도록 살기 싫어서, 때로는 죽도록 살고 싶어서 우리는 죽음을 생각한다. 삶과 죽음, 그것도 동전의 양면과
   
같다. 지금껏 우리는 ‘내일은 내일의 새로운 태양’을 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고물차에 고작 두 대의 디지털 카메라를 부착하여 차안에서 그것도 한 남자, 바디의 프로필에만 오로지 카메라의 눈을 고정하며, 차창 밖으로 밀려나가는 무미건조한 장면들 이외는 별다른 장면도 제시하지 않아 지루한 느낌마저 주는 영화이지만, 이 느린 듯 소박한 휴머니즘과 미니멀리즘의 영상 멘토링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린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것도 결국 우리의 작은 ‘마음’ 속에 있나니!

/김성희 객원전문기자(백제예술대 방송시나리오극작과 교수,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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