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행교수의 캠팽카로 떠난 유럽]<끝>집으로
이국행교수의 캠팽카로 떠난 유럽]<끝>집으로
  • 새전북신문
  • 승인 2009.01.0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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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국경에 있는 바다같은 보덴세 호수에서 관광객들이 윈드서핑을 하고 있다.

상쾌한 아침인데 요란한 헬기 소리에 모두 나와 하늘을 바라본다. 아마 밤사이 앞마을에 산사태가 난 모양으로 계속 자재를 실어 나르는 모습이 보인다. 비온 뒤 맑은 햇살과 더불어 주변의 경치를 보니 산에 둘러져 있는 그림 같은 마을 전체가 나라라니.... 모두들 출발 준비를 하면서 사진을 서로 서로 나누 찍었다. 그리고 남은 반찬을 깨끗이 싸서 주변을 정리하고 떠나는 젊은 부부에게 전해주고 사진도 찍었다. 입구에서 물을 채우고 폐수를 버리면서 창문을 열기는 열었는데 닫히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아무리 올렸다 다시 내리려 해도 자동 걸림이 내려오지 않아 출발을 못하고 있는 터에, 마침 화물차에서 물건을 내리고 있는 젊은이에게 “pls help us" 바쁜 중에도 10여분 수고 하여 빙고! 이제는 이쪽 창문은 절대로 열지말기!!! 고맙다고 한국엽서를 주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중심가에 주차시설이 없어서 빙글빙글 돌다 외곽 스포츠 센터 주차시설에 주차 하였다. 단지 국가적인 형태라서 기념으로 입국스탬프를 2.5유로씩 주고 여권에 찍었다. 우표가 상품 가치가 있다 하나 흥미는 없고 선물가게에서 스위스 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 하고, 스위스, 독일 및 오스트리아 국경에 있는 바다 같은 보덴세 호수로 출발 했다.

국도의 좁은 길로 가기 때문에 마을 마다 풍경을 보면서 간다. 어느 곳에서나 사람이 적고, 마을 주변은 거의 농축산이 주종을 이루고 있고 도로 옆의 주택은 조그마한 시골 풍경의 연속이다. 도중에 대형 쇼핑몰이 있어 최고의 자랑거리 현지식품을 구입하여 저녁 만찬용으로 하고 사흘 남은 일정에 활용할 몇 가지를 추가 하였다. 국경을 넘어 독일에 들어가 가고자하는 숙소의 길 위치가 이상하여 매우 난감하였다. '달려라 유럽'의 책자의 표기가 이상함을 알았고, 마을 주민에게 물어 다른 곳 숙소<Herzlich Willkommen am Bodensee>로 찾아갔다. 이곳에 도착 하여보니 레이체나우 섬 안에 연결된 유네스코지정 ‘야채섬’으로 주민 대부분이 청청 야채밭을 가꾸고 있다. 갈대숲과 둑길이 이어지는 곳에 각종 첨단시설로 야채를 키우는 중세풍의 마을들이 작은 차량도로로 서로 서로 이어져 있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우산을 펼 수 없을 정도인데도 추위와 바람을 무릅쓰고 윈드써핑하는 현지인들과 관광객이 부러웠다. 2시간동안 마을길을 따라 여유로이 거닐었다. 집단으로 채소를 재배하는 곳으로 비닐하우스가 완벽하게 시설이 되어있고, 부유한 마을로 채소와 과일이 풍성하였으며 오이와 토마토를 주종으로 가꾸는 마을 같았다. 여유 있는 주민들의 표정에다 그 맛있는 버찌가 길거리 가로수에서 길을 더럽히고 있는데 우리는 사서 먹는 터라, 하나 주어 먹어보니 그 달콤함이란.....이곳은 나비가 많아 나비천국으로 어른들은 물론 어린이들로 항상 북적거리며 나비 마니아들의 엘도라도이다. 100종류가 넘는 희귀한 꽃들, 150종류 이상의 향이 있는 식물들의 향기가 기분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나비들이 꽃과 꽃으로 날아가거나 꿀을 빠는 모습, 수많은 종류의 나비들이 각양각색의 신기한 그 아름다음에 예술가인 하느님의 예술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는 곳이다. 그리고 닭들의 우렁찬 울음소리, 음매하고 우는 송아지, 어루만지고 싶은 귀여운 새끼당나귀, 꼬마 말인 포니, 토끼들이 모여 있는 동물농장은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어린이들이 동물들을 쓰다듬고 어루만질 수 있는 농가정원이 있다.



이른 초저녁 밀린 짐을 정리하고 글도 정리하면서 남은 일정에 대하여 상의 하였고, 만찬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리히텐슈타인은 알프스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처럼 생겼다.
<리히텐슈타인>

인구 32,000명의 입헌 군주국으로 길이 25km, 넓이 6km의 나라이다. 알프스 산에 둘러진 이 나라는 독립국이며 주민 2/3가 독일 계통으로 언어는 독일어, 세관 및 화폐 등은 스위스에 위탁되고 세계적으로 우표가 유명하여 전 세계 우표수집가들이 꼭 들리는 우표의 모든 것을 모아놓은 박물관 나라이다. 3만 불을 넘는 부국이지만 왕이 사법과 행정을 마음대로 하는 절대 군주국인데도 국민의 지지와 열정은 대단하며, 면세해택과 다국적기업의 불법자금을 세탁 하여 먹고사는 부자라고 비아냥거림도 받고 있다.



프랑스의 스트라스버그로..

이른 아침 다시 바람과 새소리, 맑은 태양빛과 더불어 마지막 날을 준비하였다. 다시 한 번 긴장을 풀지 말도록 서로 격려 하며 프랑스 스트라스버그에서 전북대학교 배정생 교수를 만나기로 한 국경을 향했다. 이미 45일전 프랑크푸르트에서 내려온 E35길을 올라가기 위해 지방 국도를 이용했다. 남북으로 이어진 Schwarzwal 산맥의 길은 매우 험하고 협소하여 조심조심 하였고 비는 지속적으로 치적 내리고 있다. 3시간을 달렸는데도 쉼터를 찾지 못해 바듯이 고속도 옆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면서 아쉬운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였다. 깊은 계곡 길은 소규모 목재업이 많았고, 2000년 동안의 주민이 살아온 그 풍습과 역사성은 다 묻혀 버리기에는 아쉬운 모습들의 성과 교회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점심은 나머지 라면과 야채를 모두 쏟아 부어 잡탕라면을 만드니 모두들 배가 배불뚝이 모양으로 튀어 나올 정도로 해치웠다. 그래도 점심이라서 부담 없이 먹는 것은 습관이 된 것 같다. 한국에서 가져온 일회용 커피로 즐기면서 독일국경초소를 넘었다. 강과 산맥이 국경인데 여기는 강 하나를 두고 다툰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조금 기다리니 정확한 2시에 배 교수와 큰딸아이 유리가 나타났다. 1년이나 지났지만 배 교수는 건강한 모습이었고 큰아이는 거의 자라 어머니 역할을 하는 깜직한 초등학교 6학년 이라고 한다. 이제 나는 다시 안내원직에서 해방되어 배 교수의 안내만을 졸졸 따르게 되었다. 얼마나 정신적으로 편한지 , 그 위치에 서 있기 까지는 모르는 게 대부분이다.

차량을 도심에 끌고 가 주차하는 어려움은 이사장의 솜씨로 해결하였고 배 교수의 안내로 인근 대학가에 주차하고 노트르담성당이 있는 광장으로 향했다. 완공까지 100년 걸린 142m의 첨탑은 300년이 지나서 완공된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 졌으며, 인근의 산간 지역에서만 나오는 독특한 돌이 도시를 붉게 장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관광객이 우중에도 불구하고 개인 혹은 단체로 줄지어 지나간다. 배 교수의 제안으로 보트를 타고 강을 끼고 돌기로 하였다, 로얄성을 중심으로 코로보 다리를 거처 작은 프랑스를 돌면서 물길을 오르고 내리는 작업으로 배가 충분히 돌 수 있는 갑문을 만들어 홍수와 가뭄 조절 그리고 관광보트를 운행하는 지혜가 그곳에 있었다. 멀리서 시청사를 바라보며 신시가지를 형성하는 팔레 유럽의 의회장, 외교관들의 숙소 등이 이도시를 한결 돋보이게 하였다. 늦은 오후에 배 교수는 시골 마을 자기 집에 잠자리를 권했지만 우리 일정이 이 좋은 기회를 막았다. 매년 6,7월에만 50% 세일 하는 백화점에 들려 개별로 사기로 하고 인근식당에 저녁을 예약했다.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서, 지방 특산물인 베코호프, 슈튜르트와 백포도주로 화려한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프랑스 땅에서 다시 석별을 하고 노을빛 붉게 보이는 석양을 옆으로 두고 독일로 향해 간다. 그러나 우리가족은 15년 전에 다녀온 뤀셈부르그를 일행들은 들리지 못해서 매우 섭섭했지만 시간이 허락지 못했기에 문헌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고속도 휴게소에서 자기로 하고 프랑크푸르트 방향으로 북으로 향했다. 긴장이 풀어진 탓? 길의 방향이 잘못되어 지방 국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바듯이 늦은 저녁에서야 프랑크푸르트 50km 전방 고속도 휴게소에 여장을 풀었다. 오늘밤이 이 차량과 마지막 날이다. 46일간의 만남, 기계 철물 덩어리가 5명과 함께 동거하였고 무사하게 헤어지게 되었으니, 감사 할 수밖에.. 일정이 매우 피곤한 터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보트를 타고 도시를 돌았다.

<스트라스부르그>

독일 국경에 위치한 알자스지방으로, 9세기에는 신성 로마제국에,17세기에는 프랑스에, 19세기에는 독일에,20세기에는 프랑스의 영토가 되었다. 알퐁스 도테의 “마지막 수업”에서 수업 장면은“국가가 교육을 망칠 수는 있지만 교육은 나라를 구 한다”의 표본으로 기억 된다. EU의 의회가 들어서면서 국제정치의 심장부로 중대한 역할을 하며,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수학한 괴테로 인해 도시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강변을 중심으로 이어진 하얀 벽과 갈색의 목조로 구성된 주택은 유네스코 지정으로 된 프랑스에 걸 맞는 아담하고 작은 규모의 도시다.



우리의 정신적 기지였던 프랑크푸르트 만하임에서...

이른 아침 자명종 소리와 더불어 모두 일어났다. 동생 오간호사와 통화하여 주소와 도로를 확인 하고 쉽게 숙소 근처에서 만나 집으로 들어서는 우리는 개선군 자체였다, 해냈다! 무사고로! 큰 사고 없이! 다시 “왔노라! 보았노라! 돌아왔노라!”를 외쳤다. 그 환희로 모든 어려움, 섭섭함, 불편함이 함께 잊히는 순간에 서로서로 껴안고 고마워했다. 반납할 수 있도록 차량 내부를 철저하게 정리하고 세척했다. 왜냐면 잘못하면 100유로의 벌금이 있다고 하니.. 동생에게는 운행 중 차량에서 발견된 불편한곳과 파손된 9가지의 항목을 적어 지적하여 주었다.

출발 시 계기판 6,250km에서 반환할 때 23,239km이니 거의 17,000km을 달렸다. 지구 반절을..

최대의 질과 양으로 점심을 오간호사 집에서 해결하고 프랑크푸르트 시내관광을 나간다. 이제 나는 다시 해방되어 동생의 안내로 졸졸 따라간다. 전철을 타고먼저 중앙 통 뢰머 광장에 도착했다. 기원전1세기 로마군이 주둔 하면서 뢰머 베를그에서 유래되었다는 이름이다. 조그마한 곳인데도 당일 철인경기 결승전 시상식 준비를 위하여 한편에 무대를 설치하였고, 중앙에는 1543년에 새워진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가 오른손에는 검,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었다. 우측 골목을 지나 중국인이 운영하는 상가에는 그 시끄러운 말싸움이 주인과 점원사이에 ... 손님이 있든 말든... 계속 진행 중이었다. 옆길로 들어서면서 95m 높이의 성당은 카롤링거 왕조인 9세기에 새워진 후 지속적인 증축과 개수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괴테생가와 박물관이 같이 자리한 곳인데, 15년 전의 그 무뚝뚝한 할아버지가 영어는 전혀 고개를 살살 흔들던 불쾌감이 지금도 생각나게 한다. 건물은 부분적으로 수선 중이었으며, 각종 음반과 책을 팔고 있었다. 좋아하는 독일가곡CD를 몇 개 샀다. 180년이 지난 오늘에도 보존되는 가옥과 유품이 볼만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쇼핑몰에 들러 독일의 쌍둥이 칼 몇 점을 사고 귀향했다. 석양의 빛과 어울려 진 교회 탑은 마무리를 하기에는 최고의 분위기였다.

내일 가야하는 우리 앞에 최고의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고, 된장과 고추창천국 식탁을 만들어졌다. 오 간호사는 1980, 1992, 2001년산 와인 세병을 창고에서 꺼내어 선물로 내놓고, 우리 또한 취하지 않은 우아한 자세로 여독을 풀며 유럽과 한국을 비교 논쟁하였다. 빗줄기는 계속 지붕을 노크하고 우리는 유럽의 마지막 밤을...



▲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

독일의 관문인 프랑크푸르트암마인(Frankfurt am Main)는 인구 약 100만의 도시로써 독일 헤센 주에서 가장 큰 도시로 전체에서는 5번째로 큰 도시이다. 이곳에는 유럽 중앙은행이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큰 경제 중심지로서 영국의 런던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독일의 맨해튼이라 불리 울 정도로 고층 빌딩이 많지만 단조로운 편이며 근래에는 통일수도 베를린으로 정치, 경제 및 문화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유럽 교통의 중심지로 도시 남서부에 세계 제2위 규모의 국제공항이 전계 주요 도시들과 직접 항공노선들이 연결되어있어 이용에 매우 편리하다. 5번 고속도로와 3번 아우토반이 만나는 도로교통의 요충지로서 자동차 및 화물수송차량들이 많이 움직인다.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보유한 독일프랑크푸르트 대학교의 소재지이자, 독일의 대문호 괴테 출생지로서 문화적으로도 풍부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1968년 사회문화혁명 당시에는 독일 내 진보적 민주개혁세력의 수도로서, 간혹 폭력사태와 시위가 발생하였으나 유럽의 각종 사회적 변화를 주도했다. 우리나라와는 직항 비행기가 오가고 있다.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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