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산책]<60>박하사탕
[시네마산책]<60>박하사탕
  • 새전북신문
  • 승인 2009.01.22 14: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소개됐던 <박하사탕>은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물고기>의 뒤를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이후 제작된 <오아시스>, <밀양> 역시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성공했지만, <박하사탕>은 이십 여 년의 한국 근대사에 대한 감독 자신의 통찰을 견고한 플롯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수작이다.

이창동의 카메라는 한결같이 객관적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타자화된 의식세계에 포커스를 맞추고, 체제에 순응해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을 등장시켜 어두운 군사정권 아래 누구도 결백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폭력과 광기의 시대. 개인의 무력감은 가학성의 전염으로 파괴적이 되어간다.

감독의 분신인 영화 속 주인공들은 현실적 논리에 의해 소외되고, 상실한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체제 순응 자체가 삶의 진정성의 상실이기 때문에 그들은 늘 객관적 현실 속에서 타자가 되어 주변인으로 살아간다. 이창동의 영화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일 수밖에 없음을 성찰하도록 추동해 모두가 희생자가 되어버린 '일반화된 역사적 기억'의 책임을 묻는다. 그는 이 '책임'에 대한 질문을 <밀양>(2007)까지 집요하게 이어오고 있다.

<박하사탕>은 모두 7개의 장(chapter)으로 구성되어 있고, '달리는 기차'를 매개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역순행적으로 구성한다. 1999년 봄, '가리봉 봉우회' 야유회 장소에 나타난 주인공 김영호(설경구 분)는 철로 위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며 돌진하는 기차에 몸을 던진다. 기차는 영호를 넘어 서서 역행하는 시간을 매개한다. 일반적인 순행 구조는 등장인물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편안하게 이야기를 수용할 수 있는데 반해서, <박하사탕>은 견고한 플롯 속에 관객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한다. 이처럼 탄탄한 플롯은 작품 속에 감독의 진지한 탐구 의식을 담는 그릇을 만든다.

복잡한 현대사만큼, 영호의 생애 이력도 위악(僞惡)으로 나아간다. 동업자에게 배신당하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십 세의 가장, 아내의 불륜 현장을 잡고 돌아서서 자신이 바람을 피우는 삼십대 중반의 가구점 사장, 고문과 폭력의 광기에 물든 공안 형사, 5· 18 광주에 투입돼 겁먹은 소녀에게 총을 겨누는 진압군, 이름 없는 들꽃을 카메라에 담고 첫사랑과 박하사탕을 나눠 먹는 스물살의 청년 등 부분집합이 형성될 것 같지 않은 모습이 한 사람의 인생에 고스란히 담긴다.

<박하사탕>은 시간과 기억에 관한 영화다. 감독은 상영 시간과 이야기 시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몽타주 기법을 거부한다. 역순행하는 이야기의 분절과 장과 장 사이에 개입하는 암전의 사용은 관객의 집중을 방해한다. 이는 의도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끊어놓고, 이야기에서 시간을 해방시켜 이미지에게 돌려준다. 이러한 기법의 사용은 여러 이미지들이 이야기 시간에 종속되지 않고, 그 자체로 충분한 시간을 보여준다.

또한 영호가 간직했던 박하사탕에 대한 기억과 순임(문소리 분)이 끝까지 지키려했던 카메라는 시간을 응축하고 박제하기 위한 도구다. 카메라는 시간을 가두고, 한 순간을 정지시킨다. 더 이상 담아내고 싶은 순간을 찾지 못했을 때, 영호는 폭력적인 역사에 저항하듯 능동적으로 죽음을 선택한다.

<박하사탕>의 위력은 서사와 형식, 역사와 일상의 통일에 있다. 무고한 소녀를 살해한 진압군이자 고문 형사이면서, 동시에 시대와 사회의 희생물로서 피해자인 한 인간을 드러내 한결같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관객 스스로 자신의 순수했던 시절의 원점으로 돌아가서, 본래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질문하도록 한다. 감독으로서 이창동의 미덕은 어둡고 아픈 과거의 기억을 들춰내서 그 상처의 치유를 위한 방법을 관객이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데 있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교사, 전북비평포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