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목 20:03
> 시민기자 > 여가 | 조현태
     
[조현태의 램프와 음악사이]<13> 김옥심 소리
2009년 02월 15일 (일) 조현태 시민기자 greenstone677@hanmail.net

 

  

김옥심        

     정선아리랑 /김옥심          

 

                                                        한오백년 /김옥심

                                            

 

채보와 채록이라는 노트를 들고 들소리를 찾아 나선 적이 있었다 .전라도 붉은 황토땅 훠이훠이 새떼를 쫓는데도 가락이 있고 고단함과 질펀한 해학이 서려 있는 노동요가 밤이면 흐릿한 불빛아래 한과 흥으로 점철된 민중의 민요로 되살아나 모시적삼에 묻어나는 쑥물 같았다 .

 "여기저기 발품 팔아가면서 댕기면 쓰간디 심만들제 장구는 신기냄(신기남)이고 소리는 김옥샘(김옥심)이를 찾아가야 공부가 될 턴디 번지 수가 틀렸어 우리가 아는게 있간디  "  딱 !! 따그르르 북 좀 친다는 노인은 북소리를 넣어가며 소리조로  얘기를 들려주는데 소리하고 싶은 생각이 꿀 같은 모양이다. 이 노인처럼 초야에 묻힌 제도권 밖의 소리꾼을 귀명창이라 불릴 법도 하다 .한다는 명인 명창들을 줄줄이 세워 놓으니 말이다 . 

김옥심 !!   "애절하면 곱지 않고, 고우면 애절하지 못한 법인데 두 영역인 '한'과 '흥'을 오가는 절묘한 목소리의 소유자이다." 추모사업회 김문성 회장의 김옥심 소리를 두고 한 말이다.이처럼 김옥심(1925~1988)을 가까이 지켜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 세기에 나올까말까 한 인물로 평가를 내림에도 그를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

1958년에 전국국악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고 음반취입 ,방송출연 등 승승장구하는 듯 했으나 야외 모임에 다녀오는 길에 낙상 ,고혈압이 제발하여  활동을 중지하고 가택에서 후진양성에 매진한다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단순히 공백 기간이 있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1975년 인간문화재 지정에서조차 탈락하는데 이때부터 비운의 주인공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닌다 . 

해방과 6.25 전후 민요대회에서 상을 놓치지 않았고 유성기 레코드판에는 그의 이름이 빠지면 팔리지 않았다고 하니 경기민요 다시 말해서 서울소리의 스타였던 셈이다.당대 최고의 명창이라 할 수 있는 안비취 ,이은주,묵계월 같은 명인들도 김옥심과 함께 무대를 오르내렸고 이들과 인간문화재 후보로 올랐었다.그들의 음반을 꺼내어 비교 가늠해보면 한오백년 ,정선아리랑만큼은 김옥심 명창이 불러야 갱미가 붙고 그를 능가할만한 소리꾼은 아무래도 현 세기에서는 만나지 못할 것 같다 .

김옥심의 초성이 낭랑하니 흐르면 판소리의 대가 박초월 명인도 북채를 한 손에 거머쥔 채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고 "천상 하늘에서 내린 목소리다 ... 목소리다 " 혼자말로 가슴을 쓰러내리며 탄복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제자들 사이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고 한다 .

특히 정선아리랑을 듣노라면 신기에 가까운 바이브레이션 애드립은 한 맺힌 궂은 심사 먹장구름 불러다가 빗방울로 부려놓은들 되려 토란잎 빗방울처럼 영롱하게 궁그러가는 듯 되살아 난다.이러한 연유로 방울목을 가진 소리꾼이라는 호칭이 따라다녔으며  한 옥타브를 넘나들면서도 음정 ,감정의 흐름이 흐트러지지 않는 기교는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

1996년도 번다한 종로통 네거리를 지나다가 레코드가게에서 들려오는 김옥심 소리에 발 멈추고 한 귀에 이끌이어 그날부로 국악에 눈트이고 귀트여 김옥심 추모사업회 회장을 맡은 이가 있었으니 그의 소리를 좇는 소리꾼들,김옥심제 소리를 사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는 김문성 회장이 고마울 따름이다.사비를 털어 김옥심 추모공연을 갖기도 하고 그를 기리는 추모 음반을 묶어 내놓기도 해서 근현대사 우리의 소리를 찾는 객들에게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

 

김옥심 김암덕(바우덕이) 김용배 신기남의 삶이 그랬듯이 하늘은 천재를 내리고도 어이하여 아름다움은 허락하지 않는지 ...스스로 쫓기어 급한 삶을 살다간 이 땅의 내로라하는 꾼들은 이름 석자만 박제가 되어 있을 뿐 되살려 줄 흔적하나 없는가 .

/작곡가 

 

조현태 시민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새전북신문(http://www.sjb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고충처리인기사제보제휴안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발행소: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 728번지 새전북신문 | 대표전화:063-230-5700 | 구독안내:063-230-5712
제호:SJBnews | 등록번호:전라북도 아00058 | 등록일자:2012년 03월13일 | 발행·편집인:박명규 | 청소년보호책임자:오성태 | 종별:인터넷신문
주식회사 에스제이비미디어는 새전북신문의 자회사입니다.
Copyright 2006 새전북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PSUN@s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