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산책]<63>베니스에서의 죽음
[시네마산책]<63>베니스에서의 죽음
  • 새전북신문
  • 승인 2009.02.2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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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에서의 죽음(1971, Morte a Venezia)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 더크 보가드 (구스타브 역), 마크 번스 (알프레드 역), 비요른 안데르센(타지오 역) 출연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토마스 만의 동명 원작소설로도 유명하며, <대지는 흔들린다(1948)>, <여름의 폭풍우(1954)>, <백야(1957)>, <살쾡이(1963)> 등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탐미주의적 성향이 엿보이는 시네포엠이다. 원작의 섬세하고도 살아 숨 쉬는 팽팽한 긴장감을 카메라의 눈으로 유장하게 담아낸 한 편의 시인 것이다. 언제나 저 멀리 해변 가 하얀 깃발처럼 나부끼듯 노니는 타지오를 바라보며 빠져드는 아센바흐의 탐미적 상념은 예술과 인생의 지평선을 넘나든다.

노장 작곡가 구스타브 아센바흐는 자신의 건조한 오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물의 도시 베니스를 향해 길 떠난다. 노쇠한 음울의 이 '일상으로부터의 길 떠남'은 <희랍인 조르바>의 도입 장면을 연상시키지만, 아센바흐의 관조적(觀照的)여정은 청년 작가 바실의 동화(同和)의 여정과는 달리 전혀 상반되는 미학으로 여운을 남기며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듯 사라지지 않는다.

아내와 딸의 사진에 입맞춤의 작별 인사를 뒤로 하고 찾아온 휴양지 베니스에서 구스타브 아센바흐는 때마침 가족과 함께 여행 중이던 미소년 타지오를 발견한다.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타지오의 모습에서 예술적 감흥과 노스탤지어를 느낀, 노약한 아센바흐는 친구인 알프레드와 나누었던 예술과 아름다움, 순수함 등에 관한 예술 담론들을 떠올린다. 조각으로 빚은 듯이 아름다운 폴란드 소년의 모습에서 아센바흐는 예술세계에서 오랫동안 갈구했던 형이상학적 아름다움의 결정체를 발견하게 되고 환희와 절망, 황홀과 고뇌가 뒤섞인 감정에 휩싸인다.

베니스 해변의 눈부시게 강렬한 하얀 색, 언제나 저만치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나부끼는 타지오의 모습은 노약한 아센바흐에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눈부시게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다. 저항할 수 없는 매력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아센바흐는 '모래시계가 빠져나가는 구멍이 너무 작아서 처음에는 위쪽에 든 모래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모래가 줄어드는 데 보이는 때는 오직 마지막 뿐. . . 그 때까지는 생각할 가치가 없지.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 .그러나 그 때가 되면 더 이상 시간이 없어.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남아있지 않을 꺼야.'라는 대사와 함께 어두운 마음의 심연으로 잦아든다. 딸아이의 죽음, 아내와의 마지막 행복했던 추억들, 그것은 세월이 남기고 간 상흔과 더불어, 잔인하리만치 찬란한 젊음의 타지오에 대한 아센바흐의 절망으로 가슴 시리게 다가온다. 죽음의 동토를 뚫고 나오는 라일락꽃으로 인하여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도 했던가! '안녕 타지오. 짧은 만남이구나. 신께서 널 축복하시길.' 이라고 혼잣말을 하며 아센바흐는 베니스를 떠나 뮌헨으로 가고자 하지만 끝내 베니스를 떠나지 못하고 '널 사랑한다'는 말만 혼자서 가슴 아프게 뇌이며 페스트가 만연한 어두운 밤거리를 서성인다.

타지오를 보는 아센바흐의 상념과 현실의 경계는 서서히 모호해지면서 꿈꾸듯 죽어가는 최후의 순간 그의 눈에 비친 타지오는 'memento mori'의 미학적 극한점에 수렴하며 절대적인 균형의 피사체로 남는다. 예술을 관통하는 두 가지의 흐름, 불멸의 이성적 예술관과 찰나의 감각적 예술관 사이에서 서성이다가, 끝
내 다가가지 못할 욕망을 갖고 치닫는 신념에 충실한 사람들의 대열에 또 하나의 예술적 영혼이 더해짐에 인간적 숙명을 실감한다. 아센바흐를 비롯한 지상의 모든 이들이 몰입하며 동경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 아름다움의 표상, 냉정한 가면의 형식 속에 감춰진 열정의 테마, 타지오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깃발인가!


/김성희 객원전문기자(백제예술대 방송시나리오극작과 교수,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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