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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65>디 아워스
2009년 03월 19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 디 아워스 포스터  
 
영화 <디 아워스>는 우울증과 평범하지 않은 삶으로 '세월'을 보낸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미세스 댈러웨이>에 대한 오마주인 마이클 커닝햄의 퓰리처 수상작, <디 아워스, 1998>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미세스 댈러웨이>를 탄생시킨 버지니아 울프(니콜키드만), <미세스 댈러웨이>에 빠져 있는 로라(줄리안 무어), '미세스 댈러웨이'라 불리는 출판 편집자인 클라리사(메릴스트립 )는 모두 소설 <미세스 댈러웨이>를 매개체로 연결되어 있다. 소설 <미세스 댈러웨이>에는 파티를 좋아하는 하원의원 부인인 클라리사 댈러웨이의 하루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표현된다.

<빌리 엘리어트(2000)>의 감독 스티븐 달드리는 이 영화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기법과 미묘한 세 명의 '미세스 댈러웨이'를 세 시간대 별로 교차 편집하다가 마침내 '클라인 병'의 심연에 몰아넣는 미장센으로 보여준다. 1923년 시간대에, 버지니아울프는 소설 <미세스 댈러웨이>를 집필 중이다. 1951년 시간대에, 로라는 소설 <미세스 댈러웨이>를 보며 강한 영향을 받는다. 2001년 시간대에, 클라리사는 소설 <미세스 댈러웨이>의 주인공 인생과도 너무나 흡사한 삶을 사는 여성으로 별명이 '미세스 댈러웨이'이다. '미세스 댈러웨이'인 클라리사의 옛 애인이며 로라의 아들이고 소설가이자 동성애자이며 우울증과 에이즈 환자이기도 한 리처드(에드 해리스)가 쓴 소설 속에 마치 작가 커닝햄의 목소리처럼 모아진다.

1923년 영국 리치몬드 교외에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집, 자신의 집필중인 소설 <미세스 댈러웨이>와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로 머릿속이 복잡한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 레너드의 극진한 보호를 받으며 답답한 생활을 한다. 그날은 언니가 오기로 약속되어 있어서 주방은 파티 준비에 바쁘다. 런던에서 방문하여 잠깐 머물다가 돌아가 버린 언니를 보내고 저녁식사 시간을 앞둔 버지니아는 무작정 집을 뛰쳐나가 런던 행 기차역으로 달려가지만, 자신을 급하게 쫓아온 레너드에게 붙잡힌다. 리치몬드 역 플랫홈에서 버지니아는 답답한 시골 생활을 벗어나, 이제 런던으로 돌아갈 때라고 레너드에게 말하며 "삶의 가치를 위한 투쟁 없이는 평화가 없다"고 소리친다. 결국 레너드는 버지니아의 뜻대로 런던에 가기로 동의한다.

1951년 미국 LA에 있는 로라의 집, 둘째아이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로라는 귀엽고 건강한 첫째 아들과 착한 남편과 함께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 로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미세스 댈러웨이>를 한창 읽고 있는 중이다. 로라의 남편은 자기 생일날 꽃을 사와 직접 파티를 준비하기도 하는 자상한 남편이다. 로라의 친구 키티는 아이가 있는 것을 부러워하며 로라에게 행운아라고 말하지만, 로라는 '존재의 사슬'과도 같은 일상에서 삶의 허무를 느낀다. 결국 아들 리차드와 함께 남편의 생일 케잌을 만들던 로라는 가방에 약병을 가득 넣고 아이는 이웃집에 맡긴 채 호텔에 들어가 자살을 기도한다. 호텔방에 누워 자살을 생각하던 로라는 둘째 아이를 낳은 후에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나겠노라 다짐하면서 남편과 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와 케이크를 만든다.

2001년 미국 뉴욕에 있는 클라리사의 집, '미세스 댈러웨이'라 불리는 클라리사는 옛 애인인 리차드의 문학상 수상 기념파티 때문에 아침부터 분주하다. 클라리사는 오늘 하루의 일정을 일러주기 위해 리차드를 아침 일찍 찾아가지만, 에이즈와 투병하느라 지쳐버린 리차드는 파티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엄마 로라에 대한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살아온 리차드는 지금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꽃도 사고 음식도 준비하고, 파티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친 클라리사는 리차드를 찾아 가지만, 리차드는 클라리사와의 행복했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녀가 보는 앞에서 5층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만다. 격리된 삶의 리차드, 역시 클라리사의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다. 리차드의 죽음은 아이러닉하게도 리차드의 삶의 의미를 찾게 해준다. 아들의 죽음을 알고 아들의 옛 애인인 클라리사의 집에 찾아온 로라,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변명하려하지 않으며 다만, "죽음 같은 현실을 떠나는 것은 숙명적인 결단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1923년 6월의 어느 하루를 배경으로 '존재의 사슬'인 시간의 강물에 몸을 내맡기고, 내면의 소리를 모자이크하며 존재와 의식의 흐름 속을 유영한다. 그러나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적 존재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눈 떠가는 세 여성들의 이 이야기 말미에서 우리는 당혹한다. 마치 마이클
   
커닝햄은 존재의 허무는 어쩌면 여성만이 아닌 여성, 남성,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듯이, 로라의 상처받은 아들, 리차드가 '존재의 사슬'에서 사라짐에 대하여 우리는 숙연한 침묵에 갇힌다. 이어서 "사람들은 서로를 위하여 살아있다. 우리는 혼자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라고 말하던 버지니아 울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마음속에 밀려온다.

/김성희 객원 전문 기자(백제예술대학 방송시나리오극작과 교수, 전북 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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