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식 길을 걷다]워즈워드의 길을 걷다(1)
[김천식 길을 걷다]워즈워드의 길을 걷다(1)
  • 새전북신문
  • 승인 2009.03.27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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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들과 산에 둘러 싸여 있는 라이달(Rydal Mount)의 워즈워드 저택.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볼 때 마다
내 가슴은 뛰노누나
나 어릴 때 그러하였고
어른 된 지금에도 그러하거늘
나 늙어서 그러지 못한다면
이제라도 내 목숨 거두어 가소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에의 경건으로 이어지기를

이 글귀는 윌리암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영국의 계관시인, 1770-1850)가 1802년에 쓴 ‘내 가슴은 뛰네’(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라는 제목의 시(詩)이다. 이 시를 통해서 그가 어릴 때 느꼈던 설레 임을 나이가 들어도 간직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언제까지나 동심의 세계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동심의 세계는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시를 접한 후부터 그와 그 시인의 마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가 어떻게 동심의 세계를 간직할 수 있었으며, 그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은 어떠하였기에 그가 자연에의 경건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하였는가. 를 떠올리면서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호기심은 결국 필자로 하여금 배낭을 꾸리게 만들었고, 발걸음을 무작정 영국으로 향하게 하였다.

워즈워드의 고향은 컴브리아 지방이라 불리는 영국 북부 산악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산악지역이지만 숲과 호수가 많아 호수지역(Lake District)로 지칭되고 있다. 이곳으로 가려면 런던에서 기차를 이용하게 되는데, 두 코스가 있다. 하나는 유스턴(Euston)역에서 가는 것며 또 하나는 킹스크로스 역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유스턴 역에서는 타면 버밍엄, 리버풀 등 중부 지역을 거쳐 가고, 킹스크로스에서 동부지역 요크, 뉴캐슬로 가게 된다. 이 동부 코스는 해변을 보고 가는 등 다양한 경치를 즐기면서 가는 반면에 기차를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아무튼 어느 방향으로 가든, 옥슨홀름(Oxenholm)역에서 내린다.
두 번째로 호수지역을 방문 했을 때의 일이다.

▲ 호수지역 관문인 윈더미어역.

4년 만에 가는 것이어서 유스호스텔 전화 등 변화가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걸려고 전화통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옆에 젊은 남녀가 있어서 말을 했더니 아가씨가 응대를 하면서 내 남자 친구가 여행을 떠나는데 배웅한 다음에 도와 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남자 친구가 기차를 타고 떠나자 나더러 따라 오라며 자기 차로 안내한다. 그래서 무심코 오른쪽 차문을 열려고 하니 그 아가씨는 웃으면서 운전하려구요? 한다. 아차! 잠시 영국의 차는 핸들이 오른쪽에 있다는 사실을 깜빡한 것이다. 한국에서 하던 습관대로 조수석에 탄다는 것이었는데, 영국에서는 오른 쪽이 운전석인 것이다.

아가씨는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면서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앰블사이드(Ambleside)에 가서 유스호스텔을 찾아보려고 하는데, 윈더미어 역에서 내려주면 거기서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내가 물었다. 어디 사느냐?고, 그랬더니 자기는 보네스(Boness)에 산다고 한다. 보네스는 내가 가려는 곳과는 반대방향이다. 그래서, 그러면 갈림 길에서 내려달라고 했더니 이곳이 낯설은 것 같며 숙소까지 태워주겠다며 걱정 말라 했다.

▲ B&B라 불리는 숙소로 지붕과 고풍스러운 창가와 집 벽체의 느낌이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초면이지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윈더미어를 지나 앰블사이드 유스호스텔(Ambleside Youth Hostel)에 도착하였다. 차에 내려서 우리 태극선 부채를 감사의 표시로 건네주고 잘 가라는 인사를 하였는데, 그녀는 아니란다.

혹시 여기 방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 같이 가서 알아 본 다음 만약 없으면 다른 곳의 유스호스텔까지 태워다주겠다고 한다. 여기까지도 약 40분가량을 운전하고 왔는데도 마다않고 숙소를 찾을 때 까지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고맙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앰블사이드 유스호스텔은 고풍스런 건물이었고, 내부는 어린이들이 숨박꼭질 하기에 안성맞춤인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응접실에는 각 지역의 관광 정보 유인물로 가득하였다.

이곳에서 젊은 여행객들은 TV를 보거나, 안락한 소파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면서 정보교환을 한다. 유럽의 유스호스텔은 정보교환 뿐 아니라 대화의 장소이며 친구로 맺어지는 Human Relation 장소의 역할을 한다.

물론 젊은이들만 오는 곳이 아니다. 젊잖은 부부들이 호숫가를 거닐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띠는 것으로 보아 중년 또는 노년의 연령층도 유스호스텔을 많이 이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스호스텔을 나와 워즈워드가 마지막 생을 다하기까지 살았다는 라이달 마운트(Rydal Mount)와 역시 워즈워드가 살았던 도브 코티지(Dove Cottage)걸어가 보기로 작정하고 길을 나섰다.

▲ 워즈워드가 누이동생 도로시와 함께 걸었던 길로 자연을 그대로 살려 만들어 오솔길 같은 느낌을 준다.

길은 어디나 2차선인데, 차 2대가 겨우 비켜갈 정도로 폭이 좁다. 그리고 직선으로 뚫리지 않고 고불고불하다. 그것은 자연을 따라 낸 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산을 절개하거나 뚫지 않는다. 편리를 위해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 백 년이 지나도 옛길 그대로다. 변함없는 길, 200여 년 전 워즈워드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다. 좁은 도로를 걸어가다 보면 도보용 오솔길도 나온다. 아마 워즈워드도 이 길을 걸으며 시상(詩想)을 떠올렸을 것이라 생각되어 당시의 상황을 연상하면서 숲으로 난 길을 걸었다. 오솔길과 호숫가의 경치는 지친 나그네의 심신을 풀어 주기에 충분한 아름다움 이었다. 풀밭에 앉아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니, ‘우리도 이곳에 태어났더라면 시인 할아버지도 되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라이달 마운트는 넓은 정원을 가진 워즈워드의 저택이다. 나이가 들고 명성이 높아지자 전에 살던 집이 협소하였기 때문에 이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이곳은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관람료를 내고 입장하는데, 입장료가 구분되어 있다. 저택 내부를 포함해서 정원 등 전체를 볼 때 그리고 정원만 볼 때와 가격이 다르다. 보던 안 보던 싸잡아서 입장료를 징수하는 우리와는 다른 문화를 그들은 가지고 있다.
워즈워드의 저택은 주위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한 폭의 그림이다. 이곳에서 사색하며 윤택한 삶을 누렸을 그가 부럽다. 물론 워즈워드가 온실에서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8세 때 어머니를 그리고 13세 아버지를 여이고 어렵게 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곧게 자랐고 여행을 통해 시심을 싹 티웠고 자신을 키워나갔다. 또한 사회적 편견을 무너뜨리는데 앞장서기도 하였다. 워즈워드는 누이동생 도로시와 함께 켄달에서 그라스미어까지 29km를 그리고 그라스미어에서 케즈윅까지 24km를 걸어간 것이다. 당시 귀족사회에서 걷기가 금기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귀족이 걷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는 과감하게 그러한 사회적 통념 깨뜨린 것이다.

▲ 워즈워드가 살았던 도브 코티지 앞에서 김천식(가운데)씨가 직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라이달 마운트를 돌아보고는 내쳐 그라스미어의 비둘기 집(Dove Cottage)까지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저물기 전에 숙소로 가자면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망설이고 있는데, 한 부부가 자기들도 그라스미어까지 가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들 덕분에 그라스미어까지 단숨에 갔다. 비둘기 집에 도착하니 직원 2명이 입구에 나와 있다.

그래서 전에 이곳에 왔을 때의 여행기를 게재한 신문을 보여 주었더니 여직원은 너무 좋아하며 신문을 들고 안으로 뛰어 들어 갔다. 비둘기 집에 관련된 내용이라 비록 한글로 되어 있지만 그들은 고마웠던 것이다. 그래서 원본까지 가지라 하고 신문을 주었다.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고 마당으로 나오니 주변의 경치가 환호성이 터질 만큼 아름답다.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에 저렴한 숙소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물결이 찰랑거리는 호숫가 바위에 걸터앉아 호수 저편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았다. 초저녁이 조용히 번지고 있다.

저녁노을의 여운이 가시고 나니 하늘은 서서히 푸르스름한 빛을 띠기 시작한다. 와트만지에 푸른색이 번지듯 호수의 트와이라이트 블루(twilight blue)가 내 안으로 스며든다. 그 푸르스름에 동화되는 순간들은 여행에서 얻는 마음의 여유이다.

“영국에서의 자연과의 만남은 경이로움이고 사람과의 만남은 고마움이며 문화와의 만남은 교훈이다.”  
오늘을 생각하며 영국과 호수지역의 자연, 그리고 친절한 영국인이 나에게 준 느낌이 되살아난다.
워즈워드가 그의 아내 허친슨(Mary Hutchinson)에게 바친 詩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눈은 초저녁 별처럼 아름다웠고
검은 머리채 또한 초저녁 같았다.
Her eyes as stars of twilight fair ;
Like *Twilight's, too, her dusky hair ;

위 싯귀에서 초저녁이라 번역 된 내용이 있는데 워즈워드는 이를 트와이라이트(twilight)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트와이라이트란 석양이 끝난 후 그리고 동트기 전의 어스레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호숫가의 저녁과 새벽은 어스레함에 푸름이 섞여 있다. 이는 트와이라이트이다. 푸르스레함은 자연의 신비이다.
워즈워드는 젊은 시절 무도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본 새벽의 장관을 통해 시인의 운명이 결정 되었다고 술회 하였다.

▲ 안개가 드리운 그라스미어는 평소 때 보다 더욱 그림같은 경치를 뽐내고 있다.

그가 본 새벽이 트와이라이트 블루였을 것이라 추측 된다. 이날 초저녁과 다음날 새벽 물안개 자욱한 호수에서 목격한 푸르름의 신비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호수지역 아름다운 자연의 보고(寶庫)다. 영국인들이 인정하는 제일의 휴양지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년 간 1,800만 명에 달할 때도 있다. 아름다운 자연이 이처럼 보존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800년대 중반 철도국에서 이 지역을 관통하는 철도 공사 계획이 발표 되었을 때, 발 벗고 나서서 반대한 사람이 바로 워즈워드이다.

철도 공사로 인해 자연 파괴는 불 보듯 번한 일이고, 또한 교통수단이 발달하면 아무나 와서 자연을 오염시키고 이곳 사람들의 순수한 정신을 망가뜨릴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극구 반대하였고 결국 철도공사 계획이 철회 된 것이다. 워즈워드는 그만큼 자연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다음 호 에는 그가 걸었던 곳 구석구석 찾아가 보기로 한다.

/객원전문기자(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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