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와사람]50여년간 대장간 지킨 김한일씨
[일터와사람]50여년간 대장간 지킨 김한일씨
  • 최성우 기자
  • 승인 2009.09.03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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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일 사장
‘땅 땅, 쿵쾅 쿵쾅’

2일 오후 2시, 둔탁한 망치 소리와 날카로운 쇳소리가 일대를 가득 매웠다. 보는 것만으로 뜨거워지는 불꽃의 화덕 속에는 길다란 쇠막대기가 벌겋게 익어가고 있다. 두 대의 낡은 선풍기는 허공을 향해 분주하게 돌아간다.

시원한 동작으로 망치를 두드리며 구슬땀을 흘리는 이는 전주시 효자동 한일민속대장간의 김한일(68)씨.

20년 이상 경력의 대장장이만이 가질 수 있는 노동부지정 대한민국 전통기능전승자인 김씨가 망치를 잡은 지는 어느덧 50년이 훌쩍 넘었다. 16살에 홀로 시작한 대장장이 일은 이제는 김씨의 아들(32)이 도우면서 이 곳은 2대가 함께 하는 공간이 됐다. 전주 남부시장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던 김씨는 1975년 지금의 자리, 효자동 용머리고개에 터를 잡고 34년째 머무르고 있다.

1970년대 전주 시내에만 60여 개가 넘었던 대장간은 돈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로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잊혀져가는 장소가 됐다. 요새는 주로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물품들을 만들고 가끔씩 칼과 낫 따위를 갈기 위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곤 한다. 문화재, 사찰 등도 김씨의 손길을 거치기도 한다.

김씨는 “과거 호미, 낫 등을 사용해 논밭을 일궜던 농촌 사람들도 이제는 기계를 이용하면서 대장간을 찾지 않게 됐다. 하지만 대장일은 우리의 고유한 전통이다”고 말했다.

김씨가 처음 대장장이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고 어느덧 10년, 20년이 지나면서 김씨는 온전한 대장장이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는 “이 일을 배운지 20년이 됐을 때 비로소 제 자신이 대장장이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일은 한 번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익히게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아들이 대장간을 이어받겠다고 했을 때 김씨는 10번도 넘게 아들을 구슬려보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이라 그 누구보다 어려움을 잘 알고있다. 김씨는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젊은 아들이 이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화도 났다. 대장 일을 시작한지 5~6년 지난 아들은 아직은 서툴지만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고 말했다.

이곳의 대부분 작업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아침시간, 화덕에 불을 지피고 풀무로 불세기를 조절한 후 쇠덩이들을 넣고 연장의 모습을 갖출 때까지 때리고 담금질을 수십차례 반복한다. 쇠에 크게 힘을 가할 경우에만 기계의 힘을 빌린다. 단단하고 고집 세 보이던 쇠막대기가 김씨의 정겨운 망치질에 유연히 구부러지고 이내 다른 모양으로 변한다. 몇 번의 망치질에 쇳가루가 떨어져나가면서 새살이 돋듯 새 모양이 탄생한다.

김씨는 쇠의 강도를 알게 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쇠는 너무 강하면 부러지게 마련이고 반대로 너무 약하면 날이 휘어지기 때문에 열처리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김씨는 “같은 쇠덩어리라도 더 강할 수 있고 더 약할 수 있다. 이를 ‘적당’하게 열처리 하는 것이 작업 중 가장 어려운 일이다”고 말했다.

여름에는 더운 날씨 때문에 일을 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을 돌려보내기 미안해 김씨는 여름 휴가를 떠나본 적도 없다. 김씨는 “더운 날 칼과 낫을 갈기 위해 이 곳까지 왔을 손님들을 헛걸음질 치게 만들고 싶지 않아 항상 이 곳을 열어두고 있다. 무엇을 하든 사람과의 신뢰관계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는 자신이 만든 연장을 잘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그는 “가끔씩 고맙다며 막걸리를 받아다주는 사람들도 있다. 저는 연장을 만드는 일을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정과 따뜻함을 받곤 한다”며 웃었다.

60살이 넘어가면서 김씨는 체력적 한계를 느낀다. 망치질을 하루에도 수천번씩 해야하는 통에 몸이 힘들지 않은 날이 없다. 그는 “모든 작업을 손으로 하기 때문에 나이를 먹고 계속 하기에는 어렵다. 앞으로 2~3년 후에 일을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점점 사라져가는 대장간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 일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나야 한다. 한지, 도자기 체험장 처럼 대장간 체험장을 만들어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관심을 갖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성우 기자 dayroom01@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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