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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81>카이로의 붉은 장미
2009년 09월 03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영화 속 영화’라는 극중극 기법으로 우디 앨런의 참신한 영화적 상상력과 스타일이 빛나는 메타드라마이다. 연출력이 돋보이는 이 영화에서 앨런은 배우라는 인물을 내세워 작가와 연출가는 물론 작품 자체와, 배우 자신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객관적으로 조명한다. 앨런은 영화 현장에서의 불평등을 통해 배우가 보여주는 인물과 그 인물들 내면의 꿈과 허무와 현실을 대비하여 설명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영화적 현실을 패러디하고 있다. 전통적 극적 관습인 '제 4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내재극 배우들이 테두리극 관객으로 변형되는 순간, 객석에 앉아 있는 실제 관객과 무대 위에 남아 있는 극중극 배우들인 허구적 관객이라는 두 층위의 관객이 생기게 되어, 이야기의 평면적 공간질서가 파괴되며 영화 공간의 자율성은 장면을 '심연으로 몰아넣기' 한다.

널리 알려진 바처럼, 이 영화에서 세실리아 역을 연기한 미아 패로우는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이던 우디 앨런의 영화 <한나와 그 자매들>, <카이로의 붉은 장미>, <부부일기>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전성기를 누리나, 그녀가 안드레 프레빈과 함께 입양했던 순이와 앨런의 스캔들로 인해 앨런과 결별하고 결국엔 사회사업가로 변신하여 활동하게 된다. 다이앤 키튼에서 미아 패로우를 거쳐, 지금은 한국인 입양아 순이를 삶의 동반자로 하고 있는, 우디 앨런은 미아 패로우를 만나 <한 여름밤의 섹스 코미디>, <젤리그>, <브로드웨이 대니 로즈>, <카이로의 붉은 장미>, <한나와 그 자매들>, <9월>, <라디오 데이즈>, <또 다른 여인>, <뉴욕 스토리>, <앨리스>, <그림자와 안개>, <우디 앨런의 부부일기> 등의 작품을 남긴다.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 경제적 궁핍과 고단한 노동과 술주정뱅이 남편의 폭력으로 항상 시달리는 지겨운 일상으로부터 현실 도피하듯 줄곧 영화관에서 낭만적 꿈을 좇는 영화 매니아인 세실리아의 '호접몽' 같은 이야기이다.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만은 초현실적 낭만과 행복감에 잠기는 세실리아에게, 어느 날 영화 속의 영화인 <카이로의 붉은 장미>라는 영화의 주인공, 톰 벡스터가 내재극 스크린에서 세실리아가 앉아 있는 테두리극 객석으로 뛰쳐나와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이로 인해 무대 위의 등장인물이 없어진 영화 속의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엉망이 되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그 배역을 연기한 실제의 배우가 테두리극의 리얼리티로 나온다. 졸지에 자신의 배역을 실종당한, 영화 속 영화의 배우인 길 셰퍼드가 그 '제4의 벽'을 뚫고 자신의 배역인 톰 벡스터를 찾아서 스크린 밖 테두리극 속으로 나온 것이다. 이에, 세실리아는 스크린상의 주인공과 실제 배우의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빠진다. 세실리아는 영화 속 영화의 스크린에서 걸어 나온 톰 벡스터와 달콤한 시간을 즐긴다. 하지만 세실리아는 톰 벡스터와 길 셰퍼드 사이에서 상처를 입게 되고 결국엔 영화 매니아인, 주정뱅이 아내의 현실로 다시 돌아와 객석에 앉아서 영화적 환상에 잠긴다.

내재극 속의 톰 벡스터가 테두리극의 세실리아에게 "영화 인생은 이제 싫어요."라고 말하듯이, 테두리극 리얼리티의 세실리아나 내재극인 영화 속 영화의 등장인물인 톰 벡스터나 모든 인간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삶에 만족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어리석은 각본의 희생자들이야! 감독, 작가, 배우들. . . 단어들의 의미란 받아들이기 나름이야", "우리가 현실이고 저들이 꿈이야", "수백 명의 탐 벡스터가 돌아다니기 전에 빨리 종영하라!", "탐 벡스터 역이 자기 대사를 잊어 버렸대요", "영화로 돌아가기 싫어요. 자유롭고 싶어요. 길 셰퍼드예요."라는 식으로, 무대와 현실 사이에 낀 존재들인 극중 배우들은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과 연출가와 작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기도 하고 배우라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극적 환상과 현실에 대한 비평적 거리두기를 유도한다.

대자연의 무대인 산과 들로부터 이제는 돌아와 <카이로의 붉은 장미> 무대 앞 객석에 들어앉은 심심한 세실리아들은 담배 연기 꼬리 끝에서 천지간의 경계 허물기 같은 발칙한 역전의 뫼비우스 띠와 한 판 승부할 어떤 빛나는 신예 감독을 상상하는 것 같다.



/김성희 객원전문기자(백제예술대학 방송시나리오극작과 교수, 전북비평포럼)


카이로의 붉은 장미 (The Purple Rose Of Cairo, 1985), 감독/ 우디 앨런, 출연 /미아 패로우 (세실리아 역), 제프 다니엘스 (톰 백스터/ 길 쉐퍼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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