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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82>매치 포인트
2009년 09월 10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팽팽하게 당겨진 라켓을 떠난 공의 운명은 ‘운(lucky)'에 의해 결정된다.

<매치 포인트> (Match point, 2005, 미국, 123분)

감독 : 우디 알렌 배우 :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크리스 윌튼), 스칼렛 요한슨(노라 라이스)



“선함(good) 보다 운(lucky)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다. 두려울 만큼 인생 대부분은 운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 능력 밖의 일에 몰두하면 무서울 지경이다. 시합에서 공이 네트를 건드리는 찰나, 공은 넘어갈 수도 그냥 떨어질 수도 있다. 운만 좋으면 공은 넘어가고 당신은 이긴다. 그렇지 않으면 패배한다.” ‘승패를 가르는 마지막 한 점’, 매치포인트. 마지막 승부를 결정하는 능력 밖의 찰나의 순간, 네트에 걸린 공은 어느 쪽으로 떨어질 것인가? 인생은 그와 같이 간발의 차, 순간의 운이라는 것, 그것도 도덕적인 잣대는커녕 아무 이유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가 <매치포인트>이다.



삶에 대한 비아냥과 냉소적 유머가 담긴 <매치 포인트>는 자신의 삶이 늘 행운으로 가득했다는 크리스(조나단 라이 메이어스)의 고백으로 출발한다. 첫 장면은 영화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공이 어느 코트로 떨어지는지 보여주지 않은 채 삶은 우연의 연속이라는 의미를 던져주며서, 테니스 코트를 오가던 공이 네트에 걸려서 위로 살짝 튕겨 올라가서 멈춰버린다.

크리스는 상류사회에 진입할 만한 충분한 교양과 재능을 갖추고 있으며 똑똑하다. 단지 그러한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가난한 아일랜드 시골 태생인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돈 혹은 운이다. 여기서 돈과 운은 하나의 사물(현상)을 지칭한다. 부잣집 아들 톰의 개인 테니스 강사가 된 크리스는 그의 여동생 클로이를 사로잡고, 곧 운과 돈이라는, 그를 상류사회로 끌어올려 줄 충분조건을 손에 넣는다. 여기까지의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후 크리스는 두 명의 여인을 만나면서 갈등 하게 된다. 한명은 '톰'의 약혼녀 '노라'로, 한눈에 반할 만큼 빼어난 외모와 몸매를 갖고 있는 배우 지망생. 그러나 배우로서 성공치 못한 좌절감을 끊임없이 음주로 달래는 전력을 가진 변덕이 심한 신경증환자로 아무리 봐도 미래가 불투명하다. 그리고 다른 한명의 '톰'의 여동생 '클로에'로 예쁘지는 않지만 똑똑하고 착한 상류층 여인. 가정적이며 이해심 많고, 무엇보다 훌륭한 집안의 딸이다. 권태롭지만 안락한 미래를 보장하는 클로에와 달콤하지만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라와의 사랑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던 크리스는 어느 한가지도 포기하지 못한 채 벼랑에 몰리게 되고 드디어 위험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뉴욕을 벗어난 우디앨런의 첫 번째 영화

<매치포인트>는 뉴욕만을 고집하던 우디앨런이 런던을 배경으로 만든 첫 번째 영화다. 뉴욕을 배경으로 뉴요커들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풍자하던 우디 앨런은 뉴욕을 버리고 런던에서 <메치포인트>를, 바로셀로나로 옮겨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제작했다. 우디앨런은 <매치포인트>를 통해서 “과거의 우디 앨런은 없다. 나를 '할리우드 상업영화 감독'으로 불러라.”라고 말한다. <매치포인트>는 런던의 유명장소를 중심으로 우중충하지만 고풍스런 런던을 표현했다. 세트가 아닌 실제 장소에서 찍는 걸 원한 이들은 로케이션 담당과 함께 마음에 드는 촬영지를 고르는데 몇 주를 투자했다. 그 결과 영화 곳곳에 여유롭게 삶을 즐기는 런던 상류층의 모습과,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런던의 명소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매치포인트>는 배경음악으로 클래식을 택했다. 장면마다 오폐라 아리아가 상황에 맞게 이어지고, 첫 도입부의 앤리코 카루소의 음성은 크리스의 내면을 더욱 부각시킨다. 영화 속에서 오페라의 아리아는 크리스의 삶에 대한 일종의 주석이다. 그것들은 더 이상 그의 삶에는 포함되지 않을 법한 비극을 상기시킨다. 오페라 아리아는 영화의 주된 내러티브와 평행하게 흘러가는 또 하나의 서사다. 음악은 배경이라기보다 하나의 불운한 암시, 혹은 크리스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우연 속에서 끊임없이 행운과 불운을 결정짓는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매치포인트>는 이러한 우연한 선택이 빚어낸 결과와 인간의 선악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우연에 의해 선택 받은 삶에 윤리적 가치관이 설 자리는 없다.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도덕과 윤리가 아니라 찰나의 선택과 그로 인한 우연일 뿐이다. 이 영화는 신분상승에 집착하는 크리스의 도덕적 파멸을 통해 욕망과 윤리의식, 그리고 삶을 지배하는 '운'의 아이러니함을 그린 작품이다. <매치 포인트>에는 우디 앨런 특유의 수다스러움은 덜하지만 곳곳에 그만의 냉소적 유머가 배어 있고, 또 관객의 예상을 깨는 짓궂은 장난과 같은 반전이 들어있다. <메치포인트>가 자신의 불운에 의문을 가진 이들에겐 한줄기 희미한 답을 혹시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관적 낙관주의자’ 우디앨런은 삶은 유한하기에 더욱 더 웃고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이 끔찍한 걸 알기에 우리는 더욱 즐겁게 살아야 한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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