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태의 향기있는 음악]<17>탱고의 전설 카를로스 가르델
[조현태의 향기있는 음악]<17>탱고의 전설 카를로스 가르델
  • 새전북신문
  • 승인 2009.10.0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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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두 나라가 탱고 전쟁을 치른 적이 있다. 전설적인 탱고 뮤지션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을 사이에 두고 양국 간에 상반된 주장을 펴며 지루한 논란을 가중시켰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카를로스 가르델은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이름은 '샤를 가르드'였다”고 주장했다. 아버지는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머니 혼자서 카를로스 가르델을 맡아 기를 수밖에 없었고 보다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생계를 이끌어나가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반면 우르과이 사람들은 “카를로스 가르델이 1887년 우루과이 한 북쪽지방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는 것이 확실한 만큼 당연히 카를로스 가르델은 우르과이 사람”이라며 “우루과이가 탱고의 종주국으로 지정이 돼야 한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양국 간에 펼쳐진 줄다리기의 이면에는 탱고의 유네스코 문화재 등재를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가 깔려있었다. 문화재 등재에 있어 종주국이라는 예술적 발상지가 존중되기 때문에 탱고를 창시한 카를로스 가르델의 위치가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탱고 못지않게 축구를 앞세우는 나라다. 그들의 축구를 가리켜 탱고축구라 한다.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툭툭 치고 들어가는 현란한 드리블은 탱고의 스타카토 주법에 비교된다. 탱고는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절도와 힘이 따르고 순간 멈추는가 하면 어느새 허리와 가슴이 맞닿는 격한 리듬으로 이어져 관능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흐름이 문전을 향해 대쉬하는 축구와 서로 닮았다.

탱고와 축구를 사랑하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수첩이나 차량 백미러 모서리에 세 사람의 사진을 지니고 다니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카를로스 가르델', '디에고 마라도나,' ‘돈 크라이 포 미 아르젠티나’의 주인공 '에바 페론'이 그들이다. 1887년12월에 태어난 가르델은 어머니와 아르헨티나에 정착하면서 어린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심부름꾼, 막노동, 공장보조 등 온갖 허드렛일을 전전하다 흘러든 곳이 공연무대였다. 그가 하는 일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막을 올리고 끝나면 막을 내리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모든 세상이 눈앞에서 열렸고 닫혔다고 회고했다.

탱고를 일궈낸 것은 가르델과 프랑스 이민 1세대들이다. 이국땅에서의 소외감과 상실감에 짓눌려 향수병을 앓던 이민 1세대들은 동질성을 부여해주는 카를로스 가르델을 찾아 위안을 삼곤 했다. 난잡한 반음과 온음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리는 반도네온의 불협화음, 여기에 가르델의 목소리는 이민자들의 삶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거칠게 감겨 풀어졌다. 빠른 템포의 리듬임에도 애조를 띠는 멜로디는 어찌보면 민요 탱고, 민중 탱고라고 해야 옳다.

가르델이 불러 크게 인기를 얻은 곡 ‘뽀르 우나 카베짜 (Por Una Cabeza)’는 영화 '여인의 향기'에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영화 이상으로 관심을 모았다. 카를로스 가르델이 직접 작사 작곡한 이 곡은 초창기에는 가사를 붙여 부른 무곡으로 '탱고 카시온'이라고 했는데 근래에 와서는 가사를 내리고 연주곡과 댄스곡으로 활용하고 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가 앙상블을 이루면서 번지는 화려한 색채는 고전음악 피아노 5중주곡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고전적인 명곡이다 .

카를로스 가르델은 1890년(혹은 1887년) 태어나 1935년 콜롬비아 메델린에서 비운의 비행기사고로 삶을 마감했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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