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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95>아이리스 (Iris), 2001
2010년 01월 28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 아이리스  
 
감독: 리차드 아이어

출연: 주디 덴치 (아이리스 머독), 케이트 윈슬렛 (젊은 아이리스 머독), 짐 브로드벤트 (존 베일리), 휴 본빌 (젊은 존 베일리)



우리 삶의 탄생과 죽음은 객관적으로는 가장 극명한 현실이면서도 주관적으로는 가장 추상적인 개념이다. ‘나’의 탄생과 죽음을 ‘나’의 입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저마다 직접 경험하는 ‘나’의 탄생과 죽음은 ‘나’가 전혀 인지하거나 기억할 수 없는 간접 경험으로만 이해된다. 언젠가 ‘나’가 사라지고 없을 ‘지금의 이 자리’에 한 컷의 이야기로만 남게 될 지상의 모든 ‘나’는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노화의 질병을 경험하며 황망해하는 아이리스처럼 아이러니한 경험을 하다가, 황망하게 무대 위에서 잊혀져가는 것이다. 저만치 객석 위 ‘나’가 경험하는 ‘그들’의 탄생과 죽음이 지금 경계 허물며 무대 위 ‘나’의 이야기로 ‘그들’의 시선 안에 있다는 것을 깜빡하는 수많은 ‘나’의 치명적인 건망증은 아이리스에게서처럼 차라리 행복할 지도 모르며, 남아있는 수많은 ‘존 베일리’에겐 하나의 슬픈 이야기로만 남을 뿐이다. 그러나 돌보는 이 없이 남겨진 존 베일리, 역시 황폐하게 버려진 삶으로 지금 이 순간 이 세상 어딘가에 혼자 남겨져 앞서갔던 아이리스의 전철을 밟게 되지만, 국가는 괜찮은 지역사회 서비스도 그다지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에 우리는 ‘술푸다’.

<아이리스>는 문학 비평가인 존 베일리의 실제 부인이었던 아이리스 머독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로 존 베일리가 아내를 그리면서 쓴 책 <A Memoir and Elegy for Iris Murdoch>를 바탕으로 각색한 영화이다. 아카데미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영예를 안았던 <아이리스>는 인지적 정신기능이 점진적으로 퇴화되고 기억과 인지 기증이 상실되어 일상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수행하는 데 장애가 생기는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 증상과 진행과정, 그리고 치매환자를 돌본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경험인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는 아이리스의 알츠하이머병 발병 무렵부터 요양원에서 숨을 거두기까지를 현재 시간으로 설정해 놓고 현재의 사건 사이사이에 아이리스가 존과 결혼하게 되기까지의 사랑과 갈등의 과거를 교차 편집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타이타닉>의 케이트 윈슬렛이 젊은 아이리스 역을, 황혼기의 아이리스 역은 관록파 배우인 주디 덴치가 맡는다. 노년기의 존으로 분장한 짐 브로드벤트는 이 영화로 2002년 골든글로브 및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젊은 날의 존으로 분한 휴 본빌은 2002년 베를린 영화제 신인 남자연기상을 수상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영문학 강사인 존 베일리는 철학을 가르치던 아이리스 머독의 해박함과 시대를 뛰어 넘는 자유정신에 경외심을 품으며 그녀를 흠모하며 그녀의 자유분방한 사생활 때문에 갈등을 겪으면서도, 차츰 학문적 동지로, 연인으로 사랑을 키워 결국 그녀와 결혼하여, 이후 40여 년간 동고동락한다.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언변, 자유로운 사고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당대의 대표적 지성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소설가인 아이리스는 어느 날인가부터 적절한 단어를 생각해 내지 못하고 단어 철자를 잊어버리고 한 말을 되풀이 하는 건망증 증세를 보인다. 의사가 영국 수상 이름을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하고 당황해하고, 방송국 인터뷰 현장에서 할 말을 잃고 곤혹스러워하며, 병원 진료실에서 수저와 테니스라켓과 같은 일상생활용품의 정확한 이름도 대지 못하고, 심지어 개(dog)를 하나님(god)이라고 부르는 그녀는 마침내 친구도 기억하지 못하고 시공간적 개념마저도 잃어버리고 가출과 배회, 그리고 사고 등 여러 위험한 사건들에 휘말리는 상태에 이fms다.

이러한 아이리스는 점차 존 베일리의 일상에 걸림돌이 되기 시작하여, 급기야 제발 강아지처럼 쫓아다니지 말라며 존 베일리는 아이리스에게 소리치기도 한다. 당대의 지성인 부부의 노후 생활은 황폐해질 때로 황폐해져 싱크대 위에는 썩은 토마토와 삶은 콩이 나뒹굴고, 덕지덕지 때가 낀 오븐에는 불이 지펴지지도 않을 것 같으며, 그들의 방은 온통 책, 집기 등으로 난장판이고 청소 안 된 욕실에서는 사회복지 시스템이 잘된다는 영국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금방 악취가 날 것만 같다. 집에 가지 않겠다며 남편의 운전을 방해하고 끝내 차문을 열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리스의 파국적 행동은 더 이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존 베일리 혼자서 아이리스를 돌보게 내버려 둘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본인 스스로도 모든 것의 경계가 흐려지며 서서히 노화의 질병에 갇히는 존 베일리는 아이리스를 요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게 되고, 아이리스는 요양원에서 아무것도 모르며 숨을 거둔다.

자유분방하고 생기발랄하던 사랑하는 아내 아이리스와 함께 어수선하게 아수라장으로 변한 집에서 인생황혼기를 보내던 존 베일리를 보며 노화와 그로인한 강요된 고독이 과연 장차 우리에게는 어떤 현실로 다가올 것인지를 허공에 그려본다.

/김성희 객원전문기자(백제예술대 방송시나리오극작과 교수,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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