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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97> 베른의 기적
2010년 02월 25일 (목) 새전북신문 sjb@sjbnews.com
   
감독: 죈케 보르트만(2003년. 독일)

지난 2월13일 개막한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성적을 내며 온 국민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김연아 선수뿐만 아니라 기대치 않았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의 금메달 소식이 온 국민을 텔레비전 앞으로 이끌고 있다. 지난 해 스키 점프 국가대표팀을 소재로 한 영화 ‘국가대표’도 여기에 한 몫 더하고 있다.

특히 비인기 종목이라는 표현도 사치스런 스키점프 국가대표를 소재로 한 ‘국가대표’는 최근 동계올림픽에서 이 종목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끌 정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가 부쩍 늘었다는 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다양한 소재들 중 하나가 스포츠를 배경으로 삼는 경우이다. ‘우생순’, ‘킹콩을 들다’, ‘국가대표’ 등 그동안 별 관심도 없어보이던 스포츠를 소재로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하며, 우리 영화계는 새로운 영역을 열어 나가고 있다.

우리에겐 최근의 일이지만 영화사를 둘러보면 스포츠를 소재삼은 영화들이 꽤 많기도 하다. 뭐 세계를 호령하는 할리우드는 끊임없이 스포츠를 소재로 관객을 유혹하니까. 할리우드의 많은 스타들이 이미 미국인이 좋아하는 농구나 야구, 혹은 미식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선 것은 드문 일이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인기 있는 스포츠인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고, 또 있다 해도 흥행에 성공하여 관객의 호응을 얻은 경우는 더욱 드물다.

오늘은 그런 축구를 소재로 삼아 감동적인 가족 이야기를 펼쳐내는 죈케 보르트만의 영화 ‘베른의 기적’을 소개하고자 한다. 1954년 스위스 베른에서 개최된 축구월드컵에 참여한 독일 축구대표팀을 소재로 한 보르트만의 이 영화는 2003년 독일에서 개봉해 흥행에 성공하며 그 해를 장식한 감동적인 영화이다.

보르트만의 이 영화는 독일에서 이른바 ‘베른의 기적’으로 알려진 1954년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소재로, 2차 대전 이후 서서히 정상을 찾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전쟁이 끝난 지 9년이 지나서 러시아 포로수용소에서 뒤늦게 귀환한 아버지 리하르트와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열 한 살의 아들 마티아스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월드컵 축구대표팀 경기가 주는 감동의 순간을 나란히 병치해 감독은 스포츠 영화 특유의 감동이 관객에게 전이되도록 한다. 특히, 보르트만은 당시 최고의 축구팀인 헝가리 대표팀 -헝가리는 당시 국제대회에서 4년 동안 무패를 자랑하고 있었다- 을 누르고 우승하는 감동의 순간에 마티아스 부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부둥켜안는 감동이 함께 하도록 한다.

베른에서의 월드컵을 배경으로 서민인 마티아스 가족의 감동적 이야기를 담아내지만, 보르트만은 축구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미 54년 베른의 영웅을 연기할 배우를 캐스팅할 때부터 축구는 별로지만 연기를 잘 하는 배우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배우라도 축구 기본기를 갖춘 연기자를 캐스팅한 것도 축구 장면의 재현에 신경을 썼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축구 경기가 지배하는 그런 스포츠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스포츠는 팍팍한 삶을 이끄는 마티아스 부자의 화해에서 오는 감동을 위해 기능하며,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하는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우리 관객에게도 이 영화는 여러 재미를 전해준다. 우선 1954년 월드컵은 우리나라가 함께 참여한 대회이고, 또 독일과 같은 조에서 경기를 치뤘다. 영화에서도 우리 대표팀이 잠깐 언급되기도 한다. 또 영화에는 독일의 전설적인 감독 헤어베르거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영화에서 언급되는 헤어베르거의 몇 대사는 현재에도 여전히 독일인들이 자주 쓰는 명언으로 남아 있다.

“공은 둥글고, 경기는 90분간 계속된다”라든지 “경기 후는 바로 경기 전이다”와 같은 명언을 음미하는 것도 영화를 보는 색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보르트만의 ‘베른의 기적’은 영화사를 장식할 그런 뛰어난 영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담아내며, 관객에게 커다란 감동의 세계를 열어주는 괜찮은 영화이다.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 팀의 모든 구성원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경기장에서 자신들이 흘린 눈물과 땀방울의 결과물을 얻어내는 감동은 스포츠 세계가 주는 독특한 매력일 것이다. 2차 대전 패전 후 암담한 현실을 딛고 일어선 독일 월드컵 대표팀의 성취를 알레고리 삼아 보르트만은 자신의 영화에 당시 팍팍한 일상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화해와 미래를 향한 웃음들을 담아낸다.

‘베른의 기적’이 주는 감동은 우리가 이번 주 내내 맛보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감동을 배가시켜줄지도 모른다.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으로 이어지는 승전보와 이들의 어려웠던 환경은 스포츠의 감동을 배가시키고, 팍팍한 2010년 한국 사회 속 우리에게 훈풍을 안겨주고 있으니까.

/이주봉 객원전문기자(군산대 전임강사,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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