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의 길에서 고흐의 고뇌와 마주하다
아를의 길에서 고흐의 고뇌와 마주하다
  • 새전북신문
  • 승인 2010.02.2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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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식 테마여행 '길찾아 길을 떠나다' - 프랑스 아를(1)
▲ 낮 시간에 찾은 고흐 카페에 손님이 가득 차 있다.
2002년 6월 님(Nimes)에서 마르세이유로 가면서 아를르(Arles)를 그냥 지나쳐 버렸다. 오래 전부터 아를르 보다는 아를르를 감싸고 있는 ‘프로방스’라는 지역에 호기심이 있었다. 이곳은 필자가 꿈에 그리던 곳이라 할 수 있는데,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 국어 책에서 읽었던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 감동을 받아 프로방스 지역을 막연하게나마 마음에 그렸다.

또한 그의 단편 중‘나무를 심은 사람’은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노인이 40여 년에 걸쳐 척박한 산악 지역을 푸른 숲으로 바꾼 내용인데 매우 감동적이었다.

이러한 책으로 인해 더욱 프로방스는 마음에 다가왔고, 2002년에 아를르를 그냥 지나쳐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스페인 야고보의 길을 가기 전에 아들에게도 보여주고 싶기도 해서, 프로방스 지역을 다녀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 고흐가 애용한 고흐 카페의 야경. 이 카페는 작품 '밤의 카페테라스'의 모델이기도 하다.
로마에서부터 아를르까지 여정은 험난했다. 아를르 까지의 계획에 차질이 생겨 마르세이유에 내렸다. 역에 내리니 오후 10시가 훨씬 지났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2002년 묵었던 숙소를 믿고 있었는데, 계산 착오였다. 문을 닫은 것이다. 아들에게 자전거하고 짐을 잘 지키라고 하고서는 숙소를 찾아 골목으로 들어갔다. 호텔을 찾기 위해 음산하고 지저분한 골목을 헤매다가 방이 없어서 할 수 없이 경찰서를 찾아 들어 갔다. 경찰이 밖으로 나와서 는 호텔 몇 군데를 알려주다가, 한 골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곳은 살인 사건도 빈번 하고 위험한 지역이니 절대 들어가지 마시요!‘라고 주의를 준다. 그것도 모르고 조금 전 혼자 들어가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 것이다. 등골이 오싹해 졌다.

아무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시내 번화가에 있는 호텔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비싼 요금도 불사하고 호텔로 들어갔는데 여기도 역시 방이 없다. 모든 호텔이 다 만 원이다. 정말 이상한 생각에 물어봤더니, 축제기간이라고 말했다. 호텔에서 잡기란 처음부터 틀린 일이었다. 역 구내 벤치에서 라도 자야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역으로 다시 올라갔다. 그런데 역의 모든 출입구에 셔터가 내려져 있는 것이다. 꼼짝없이 한데서 밤을 새워야 하게 생겼다. 우범지역이라 나 혼자였다면 매우 당황 했겠지만 옆에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밖에서 밤 한번 새어보기로 각오를 하였다. 자전거 두 대를 한데 붙여서 역 건물 벽에 세운 다음 옆의 덤불나무를 바람막이로 하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9월 하순의 밤바람은 제법 싸늘했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일어나서 걸어 다니다가 또 앉았다가 하기를 계속 반복하면서 꼬박 밤을 지새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현실이 아니고 가상의 일처럼 느껴진다.

▲ 시내에 위치한 작은 공원에 고흐의 반각 흉상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동이 트는 시각에 셔터가 열리기가 무섭게 역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아를르 행 첫 기차에 자전거 칸이 있어서 자전거를 싣고, 푹신한 좌석에서 밤새도록 얼었던 몸을 녹였다.

드디어 아를르에 입성하였다. 역 출구를 나와 아직도 뻣뻣한 몸을 자전거 위에서 풀면서 유스호스텔을 찾아 시내로 들어갔다. 시내 남쪽 조용한 곳에 위치한 유스호스텔을 어렵지 않게 찾았고, 체크인 한 다음 바로 고흐의 그림 속 풍경을 찾아보기 위해 나섰다.

시내 곳곳에 고흐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은 잊혀져가는 흔적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고흐가 아를르에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유럽에 있는 대부분의 역사적 흔적은 박재되고 죽은 것이 아닌, 살아 움직이고 있음이 느껴진다. 동상도 살아 숨쉬고 유적 건물들도 당시의 사람들을 출입시키고 있다.

에스파스 반 고흐(Espace Van Gogh) 정원은 고흐가 입원했던 생레미 병원의 정원인데, 당시 경관이 그대로 보존 되고 있다. 병원 건물외벽의 색도 그 때와 같이 칠해져 있다. 정원 앞에 고흐가 이 병원전경을 그린 유화가 복제되어 있는데, 항상 그 그림의 풍경이 유지되고 있다. 나무는 크는 것이고, 10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정원에 있는 나무는 그림의 크기와 같다. 아마도 어느 정도 크면 뽑고 고만한 나무를 다시 심곤하는 모양이다.

▲ 고흐가 입원했던 생레미 병원. 100년 전에 그려진 작품 속 모습 그대로 간직돼 있다.
그 그림의 구도를 살펴보고 그림을 그렸을 위치를 찾아보았다. 대충 가늠하고 2층으로 올라가 보니 바로 그곳이다. 고흐는 병실 문 앞 베란다에서 그림을 그렸음이 틀림없다. 정신 병동에 입원한 환자로서 그러한 그림을 그렸다니 대단한 열정이다.

시내에 있는 작은 공원에는 고흐의 반각 흉상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아마도 고목으로 울창한 공원 사이 길로 고흐는 고갱의과 불화로 상했던 마음을 진정시키기위해 걸었을 것이다.

고흐의 아를르 풍광 그림 중 대표적인 작품이 ‘밤의 카페’이다. 그가 자주 다녔다는 이 카페는 시내 한복판에 있다. 낮에 갔더니 그림에서 보는 느낌과 아주 다르다. 그렇지만 왔으니 와인이라도 한잔하고 싶어서 아들하고 앉아서 주문하였다. 저녁과 비교하기 위하여 사진을 찍고 ‘별이 빛나는 밤’을 찾았다. 대낮이라 별은 빛나지 않고 론(Rhone)강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다. 강둑에 앉아 푸르스름한 밤하늘과 강에 비치는 건너편 가옥의 불빛을 바라고고 밤의 강에 심취 되었을 고흐를 보았다.

시내 북쪽에 있는 라마르틴 광장 코너에 그가 1888년 이곳에 도착하여 살았던 노란 집은 이제 없다. 그 옆에 있던 건물은 남아 있어서 그림에서 본 경치의 여운을 다소나마 느끼게 해 준다.

▲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도개교 형식의 고흐의 다리. 시내 외각에 위치하고 있다.
시내 남쪽에 위치한 고흐의 다리(Pont Van Gogh)는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외진 곳에 있기 때문이다. 고흐의 작품으로 보는 도개교는 젊은 여인네들의 밝은 옷차림과 푸른 강물 그리고 노랑과 주홍색이 어울려 경쾌한 느낌을 주지만 현재의 도개교는 빨래하는 여인들도 없고, 강물도 탁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과거를 보면 된다.

하루 종일 다녔다. 자전거가 없었더라면 시내를 샅샅이 돌아볼 수 없었을 것이고, 택시로 다녔다면 상당한 돈을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이런 때 자전거는 요긴한 교통수단이다. 쉬지 않고 다니다 보니 목도 마르고 시장기가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국물 있는 따끈한 음식을 먹지 못했다. 가지고 간책을 뒤져보니 국물 있는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 고대 경기장 옆 골목에 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어떤 음식이 나올려나 기대가 컸다. 한 참 만에 음식이 나오는데 생선탕이다. 물론 고춧가루 섞인 우리네 매운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레스토랑을 나오니 밖은 이미 어두워 졌다. ‘고흐의 키페’의 야경을 보기 좋은 시간이다.

아까 낮에 왔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림의 풍경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림과의 반가운 만남이었고 고흐와의 해후였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정신적 갈등 속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고흐는 살아생전은 비참하였지만 그의 예술은 사후에 빛을 발했다. 그의 고뇌에 찬 발걸음의 자국이 아를르의 길에 보이지 않는 흔적을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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