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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아린 상처가 부른 금지된 욕망
[시네마 산책]<98>로리타(Lolita, 1997)
2010년 03월 04일 (목) 새전북신문 sjb@sjbnews.com
   
감독: 애드리안 라인

출연: 제레미 아이언스(험버트 험버트 역), 도미니크 스웨인(로리타 돌로레스 헤이즈 역),

멜라니 그리피스(샬롯 헤이즈 역)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원작 소설 ‘로리타’(1955)는 출판 당시 ‘피도필리아’라는 프로이드식 일반화의 주제를 놓고 상호 엇갈린 평가와 비평을 받으며 급기야 ‘로리타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문학사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적 역할을 한 이 소설 ‘로리타’를 스탠리 큐브릭 감독(1962)에 뒤이어 1997년에 애드리안 라인이 감독하고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연한 영화 ‘로리타’는 예술적 에로티시즘과 외설적 포르노그라피라는 해묵은 화두를 끄집어내어, 흔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성적욕망과 광기는 물론 젊음과 아름다움의 덧없음과 삶의 ‘크로노포비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어린 시절 애너벨과의 치명적인 첫사랑의 아픈 상처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던 47세의 문학 교수 험버트(제레미 아이언스 분)가 뜨거운 여름, 강의 차 미국 뉴잉글랜드에 들른다. 샤롯트(멜라니 그리피스 분)라는 미망인의 집에 거처를 마련한 험버트는 그녀의 딸 로리타(도미니크 스웨인 분)를 처음 본 순간, 아찔한 사랑에 빠진다. 애너벨에서 시작하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사랑의 기억과 집착이 로리타에게로 전이된 듯이 험버트는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회고적 상상력으로 은밀한 관음증 환자가 되어버린다.

결국 험버트는 로리타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 샤롯트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고 그녀와 결혼한다. 의붓아버지로서 합법적으로 로리타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첫 눈에 험버트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님펫 로리타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사랑을 기록한 험버트의 일기를 보고 충격을 받은 샤롯트는 결국 교통사고로 죽게 되고 험버트와 로리타는 도착된 욕망으로 미국을 자동차 일주하며 모텔과 호텔을 전전하며 비정상적인 사랑의 행각을 한다.

그러나 험버트가 점차 광적인 집착으로 로리타를 붙잡으려하면 할수록 로리타는 포악해지고 변덕스러우며 성질 사납게 되더니 어느 날, 극작가 퀼티와 험버트 곁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집요하게 로리타를 찾아 나선 험버트는 미혼모가 된 망가진 모습의 로리타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이젠 더 이상 님펫이 아니고, 사라진 유년 시절의 시간에 대한 아련한 기억도 그녀에게서 찾을 수 없게 된다. 퀼티를 죽이고 경찰에 붙잡힌 험버트는 도덕적 파렴치범으로 구속돼 죽음을 맞이한다.

첫 사랑의 아픈 상흔이 가슴에 남아있는 험버트는 신기루 같은 로리타의 허상만 뒤쫓던 욕망의 화신이며 우리 사회의 성적 소수자다. 험버트의 속내는 놀이터 어린이들의 재잘거림에서 가버린 시간을 허망하게 돌이키면서 지난 시절을 반추하다가 가슴 한 쪽에 은밀하게 제켜두는 우리들의 ‘탈고 안 될’ 이야기다. 풀잎 위 아침이슬처럼 빛나는 삶의 한 순간을 보며 ‘미멘토모라이’에 모든 리얼리티를 망각하고 잠시 욕망의 백일몽에 빠지는 험버트가 그토록 탐닉했던 것은 로리타의 어린 육체라기보다 잃어버린 유년 시절에의 돌이킬 수 없는 그리움과 향수다. 그것은 시간성에 대한 저항이며 미적 영원함에 대한 강박증이다. 기억과 상상력으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예술이라는 도피처뿐이다.

나보코프 소설의 시적 에로티시즘은 라인의 인상적인 시각적 디테일로 표현상의 자극과 절제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카메라에 의한 시적 이미지로 재현되는데, 여기엔 특히 제레미 아이언스가 많은 몫을 기여한 것 같다.

제레미 아이언스는 소설 속 험버트가 그대로 눈앞에 살아나온 듯이, 아니 어쩌면 소설에서보다도 더 험버트를, 그 가증스런 비상식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관객으로부터 더욱 동정심을 받도록 그려내고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며 사라져버린 욕망의 허상을 찾아나서는 제레미 아이언스(험버트)의 깊은 눈동자에 그늘진 눈빛과 쓸쓸한 표정 위로 흐르는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은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의 누들스 테마곡과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아센바흐를 연상케 한다.

/김성희 객원전문기자(백제예술대 방송시나리오극작과 교수,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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