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8 수 20:10
> 주말엔 > 영화VS영화
     
시네마 산책<103>솔라리스(1972)
2010년 05월 06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gmail.com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주연: 나탈리아 본다추크, 도나타스 바니오니스, 니콜라이 그린코


렘(Lem)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솔라리스’는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Herr Jesu Christ' 선율을 배경으로, 인간 정신의 심연을 소리와 영상의 감각적 질료로써 물질화한다. 이 영화는 러시아 영성의 부활을 통해 ‘예술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힘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신념이 잘 나타난 한 편의 영상시다. 처음 도입부에서 버튼이 크리스 켈빈을 만나고 집으로 가는 도중의 도쿄 야경 고가도로 장면은 마치 인간 두뇌의 뇌파와 인체 신경계처럼 복잡하게 상호 연동된 컴퓨터 전산망의 복잡한 회로와도 같은 느낌을 주며 ‘소우주’의 집이 ‘대우주’의 섬으로 합쳐지는 라스트씬은 아주 감각적으로 인상 깊다.

   
  ▲ 김성희  
 
잉마르 베르히만이 ‘위대한 영상시인’이라고 일컬었던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는 물질화한 기억의 오브제에 의한 양심의 고통을 통해 광활한 우주 탐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과학시대의 현대인에게 아직도 소중한 것은 ‘인본주의’와 ‘인간애’라는 깨달음을 거울 같은 수면, 연기, 물안개, 하얀 풍선, 바다, 섬 등의 그림 같은 이미지와 음악으로 재현한다.

흔히 이 걸작은 인간 영혼에 대한 탐구 여정이자, 인간 지성과 과학의 한계에 대한 매우 독창적이며 시적인 보고서라고 말해진다. 여기에는 전형적인 중세의 풍광처럼 보이는 표피적 이미지들의 그림을 통해 신화와 종교적 구원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심오한 천착이 돋보이는데, 각 장면마다 시적 은유가 넘치며, 유년의 회상과, 기억과, 소통의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말, 새, 나무, 토끼, 물, 연못, 꽃 등의 오브제들이 우리에게 새로운 자아의식을 환기시킨다.

‘솔라리스’의 스토리는 천체생물학자인 사르토리우스와 인조두뇌학자인 스나우트, 생리학자인 기바리안의 세 사람만이 주둔하고 있는 ‘솔라리스’ 행성으로의 여행을 과학자이며 심리학자이기도 한 크리스 켈빈이 준비하는 영화 초반과 그 여행을 마치고 귀향하여 마침내 아버지와 화해하는 마지막 장면의 전통극적 구조 속에 진행된다.

솔라리스 탐사여행 출발 전날 밤, 엄격한 과학자적 면모의 크리스 켈빈은 환상을 믿지 않고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하는 과학자답게 솔라리스 탐사 일을 중단시키려는 중대한 임무에 개인적으로 야심찬 의지를 보인다. ‘제 관심사는 진실인데 제게 환상을 설득하는 군요’라든가,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니 중단하자’는 식의 크리스 켈빈의 태도는 ‘지식은 오로지 도덕성 위에서만 유효한 것이야’라는 버튼의 항의와 '‘무정한 자식’이라는 아버지의 비난에 부닥친다.

그런데 과거의 개인사적 기억을 가진 사람이 ‘두뇌의 바다’, 솔라리스 행성에 근접하게 되면 그 사람은 회상의 이미지가 아닌, 인간 두뇌 속의 어떤 기억의 물질화인 오브제와 감각적으로 대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은 행성 ‘솔라리스’와 정신적 상호 작용을 일으켜 자신의 기억 속에 뿌리 깊이 잠겨 있는 과거의 정신적 ‘기억’을 물질화한다. 이로써 우주 스테이션, ‘솔라리스에 주둔하던 과학자들에게 낯선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게 되자, 급기야 솔라리스 우주 스테이션 탐사 임무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중단할 것인지를 조사 결정하기 위해 솔라리스 연구소 위원회는 크리스 켈빈을 솔라리스 행성에 파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크리스 켈빈은 솔라리스 행성에 착륙하여 머무는 동안, 오래 전에 독극물로 자살한 아내, 하리와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물질화된 오브제를 맞이하는 기이한 체험을 하면서, 죽은 아내가 자기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어머니도 자기 때문에 상처를 받고 죽음에 이르렀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솔라리스 행성에서 뜻밖에도 크리스 켈빈은 무의식의 심연에 자리한 자신의 ‘트라우마’와 조우한다. “안색이 안 좋구나! 행복하니?”라며 돌아가신 어머니가 안부를 묻자, “행복이란 개념은 이미 빛바랜지 오래되었어요. 전, 지금 너무나 외로워요”라고 대답하는 크리스 켈빈에게, “왜, 우릴 힘들게 하니? 뭘 더 기다리게 하는 거니? 전화라도 할 수 있었잖니? 생활이 이상해진 거 같구나? 지저분하고 단정치 못해 보이고”라며 어머니는 더러워진 아들의 팔을 씻어준다.

이에 크리스 켈빈은 정화됨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며,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난 존재가 된다. 지구인으로서 아이러닉하게 지구를 벗어난 광활한 우주 공간 속의 ‘두뇌의 바다’ 솔라리스에서 견딜 수 없는 심한 양심의 가책과 수치심을 느낀 크리스 켈빈은 죽은 아내와 어머니와, 그리고 아직 살아계신 아버지와의 소통 부재의 관계를 새롭게 직시하고 조명하게 됨으로써 그들과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양심과 죄의식과 수치심을 되찾는다. 방문 앞에까지 걸어 나와 자기를 맞아 주는 ‘아버지’ 앞에 크리스 켈빈은 성서의 ‘돌아온 탕자’처럼 무릎을 꿇고 화해한다. 시종 롱테이크로 점철되며 트래킹 쇼트로 연결되는 이 영화의 라스트씬은 ‘소우주’의 집과 ‘대우주’ 솔라리스 두뇌 바다에 놓인 작은 섬으로 오버랩 된다.

나무를 보려거든 숲 밖에 나와서 보라고 했던가, 기억이 오브제로 물질화한 '주관의 객관화'가 환기하는 치부를 직시하기가 망설여지는 이 순간, “나는 잘 수 없다. 자는 거 같지만, 그건 잠 속의 잠과 같다. 인간은 잠이라는 선물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에겐 자기 자신을 비춰 볼 거울이 필요하다. 인간에겐 인간이 필요하다”, “우린 우주에 대한 인식을 잃어 버렸다! 사람은 행복할 때는 인생의 의미나 영원에 관해선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인생의 막바지에 가서야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행복이란? 인생의 의미란? 등의 과학자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 질문을 해 보지 않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의 스나우트와, “톨스토이의 고통을 기억하는가? 모든 인간을 다 사랑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그 고통을”, “사랑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우린 자주 다퉜는데 왜 우리는 이런 고통을 받는 거지”의 크리스 켈빈의 대사는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김성희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백제예술대 방송시나리오극작과 교수

새전북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새전북신문(http://www.sjb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고충처리인기사제보제휴안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발행소: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 728번지 새전북신문 | 대표전화:063-230-5700 | 구독안내:063-230-5712
제호:SJBnews | 등록번호:전라북도 아00058 | 등록일자:2012년 03월13일 | 발행·편집인:박명규 | 청소년보호책임자:오성태 | 종별:인터넷신문
주식회사 에스제이비미디어는 새전북신문의 자회사입니다.
Copyright 2006 새전북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PSUN@s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