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산책<104> 전쟁의 비극과 아이러니 ‘적과 백’(1967)
시네마 산책<104> 전쟁의 비극과 아이러니 ‘적과 백’(1967)
  • 새전북신문
  • 승인 2010.05.1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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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미클로시 얀초, 헝가리, 92분


1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국내외 시네필을 위해 1960년대 유럽 정치적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적 감독인 헝가리의 거장 미클로슈 얀초(1921∼)의 회고전을 기획하고 -그의 작품 세계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1960년대 대표작 6편을 상영했다. 헝가리필름유니온(Magyar Filmunio)의 후원으로 진행된 얀초 회고전은 모든 작품이 35mm 필름으로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었다. 얀초는 이데올로기를 넘어 서서 특정 역사를 통해 도태된 유토피아, 상실한 자유의 가치를 절제된 프레임을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얀초는 ‘칸타타 Cantata’(1963)로 공산권 영화로는 드물게 지식인의 위기의식을 담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해외에서 주목받았다. 그를 헝가리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1967년작 ‘적과 백’은 전쟁의 아이러니를 참혹하게 다루고 있다. 얀초의 카메라에 담긴 러시아 혁명사는 영화 밖에 놓인 사람들을 자극하고, 전쟁의 역설을 통해 비극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적과 백’은 오페라를 보는 듯 한 시적 이미지로 변환해 전쟁 혹은 권력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고도로 양식화된 스타일과 반복되는 주제로 새로운 헝가리 영화의 서막을 연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10월 혁명 50주년 기념으로 헝가리, 소련이 합작으로 제작한 영화인 ‘적과 백’은 적군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로 인해 소련에서는 개봉이 금지됐다. ‘적과 백’에 담긴 헝가리의 민족주의적 요소는 소련에 대한 항거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소련이 헝가리 혁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7,000명이 넘는 헝가리인의 목숨을 앗아간 지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적과 백’은 러시아 혁명 직후를 배경으로 헝가리인이 적군에 가담해 백군에 대항해 싸웠던 러시아 내전 상황을 다루고 있다. 이 흑백역사물에서 적군은 혁명군을, 백군은 그들을 진압하려는 명령을 받은 정부군을 의미한다. 1919년 헝가리와 러시아 국경 지대에서 1만여 명의 헝가리군이 적군에 가담해서 백군과 싸운다. 백군 장교는 포로들의 옷을 벗긴 뒤 그들에게 15분의 시간을 줄테니 도망가라고 말한다. 얼마 후, 이리저리 도망가고 숨는 포로들을 마구 색출해서 처형하는 ‘인간 사냥’이 벌어진다.

이 같은 백군 측의 잔혹한 행위를 보면서 우리는 전쟁이란 상황이 인간을 저열함의 최저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가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잔인함은 백군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백군의 승리는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적군이 승기를 잡으면 그들 역시 복수의 의식을 거행한다. 근방의 수도원과 야전병원의 간호사들이 패잔병들을 숨겨주고, 백군의 색출이 이어지고, 패주하던 적군이 다시 응집하여 병원을 되찾는다. 이때 한 간호사가 적군을 도와줬음에도 백군의 색출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처단된다. 적군이 전열을 정비해 볼가 지방으로 진격하지만 곧 백군의 대부대를 발견한다. 적군은 국가를 부르며 모두 전사한 뒤에 지원군이 도착한다.



‘혁명과 시학을 완성한 예술가’

‘적과 백’은 섬세하게 연출된 장엄한 풍광을 강렬한 미장센으로 담아낸
▲ 김혜영
다. 얀초의 영화 특징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카메라, 군중의 집단적 움직임은 안무가 잘된 집단 총체극을 보는 것 같다. 그의 영화는 대평원 위에서 펼쳐지는 설화적 줄거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물을 유려하게 포착하는 롱테이크에 의존한 긴 호흡을 담는다. 그는 무엇보다도 억압과 폭력의 역사를 스크린에 담는 영화감독이다. 억압하는 자와 억압당하는 자의 관계를 스크린에 옮기면서 얀초가 하고자 하는 일은 특수한 지역의 역사가 아니라, 보편적인 역사를 담는 것이다. 그는 어느 시대와 공간에서나 볼 수 있는 권력 메커니즘의 작동을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얀초는 정교한 알레고리의 영화작가라고 칭할 수 있다.

/김혜영(객원전문기자,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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