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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산책]<105>안토니아스라인, 1996
2010년 05월 20일 (목) 임경미 기자 5whitedesert@sjbnews.com
   
감독: 마를렌 고리스


‘안토니아스 라인’은 1996년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외국어 상을 수상하는 등 이 영화는 1996년 수많은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네덜란드 영화이다. ‘안토니아스 라인’은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네덜란드 영화로, 그 내용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좀 낯설게 보이기도 한다. 오늘은 네덜란드의 자유로운 정취를 드러내며, 여성과 자연, 그리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를렌 고리스 감독의 ‘안토니아스 라인’을 소개한다.

‘안토니아스 라인’은 2차 대전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온 안토니아가 자신의 딸 다니엘과 함께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하는 고향 마을에 정착하는 모습을 차분히 그린 영화이다. 주인공 안토니아를 중심으로 딸, 손녀, 증손녀로 이어지는 4세대에 걸친 모계가족 속 여성들의 삶과 죽음의 여정을 그린다는 설정도 그러하고, 또 안토니아 등이 보여주는 독립적이고 자신에 찬 네덜란드 여성의 모습이 우리에겐 좀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모계 가족을 그린 이 영화는 그래서 자주 페미니즘 영화로 회자된다. 하지만 ‘안토니아스 라인’은 단순히 여성주의 영화라고 치부하기에는 영화가 다루는 주제의 폭이 상당히 넓다. 여성의 삶을 조명하기보다는 인간의 삶을 다루는 영화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다루기에 당연히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 영화를 지배하는 화두이다. 여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후대를 생산해내고, 또 때가 이르면 사람들은 죽어간다. 그러기에 안토니아의 딸 다니엘이 (사회의 규범을 벗어나서)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모습이나 이를 도와주며 알게 된 여인이 안토니아의 집에 들어와 열두 명의 아이들을 낳는 모습은 우연이 아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안타고니스트들만이 아니다. 프로타고니스트의 조력자들도 죽어간다. 즉, 영화는 우리가 많은 영화들에서 알고 있는 그러한 선악을 구분하고 선의 승리를 염원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되돌아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또 우리를 울타리치고 있는 규범들에 대해 되돌아보도록 요구한다. 이를 위해 감독은 우선 사회규범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고와 삶의 자세를 가진 주인공 안토니아와 그 딸 다니엘을 내세운다.

물론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다루는데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 여성(들)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또 당연히 여성 영화이기도 하다. 자신에 찬 풍만한 여인인 안토니아가 여유로이 거닐며 드넓은 대지에 씨를 뿌리는 모습은 바로 ‘안토니아스 라인’이 무엇을 말하는 영화인지 웅변하는 장면이요, 미장센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활기차게 그려낸다. 여성들은 언제나 대지와 함께하고, 자연을 거닐고, 또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러하기에 안토니아가 맞이하는 죽음은 영화가 내내 보여주는 다른 죽음들이 그러하듯이 비극적 죽음이 아니다.

사실 이러한 사실은 영화 초반에 이미 죽음을 예감한 안토니아의 모습과 그녀의 잔잔한 내레이션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라는 영화 구조로 암시된 바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위해 감독은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이끈다. 별 갈등도 없고, 드라마적 긴장이나 갈등이 있을법한 지점에서 감독은 재빨리 내레이터로 관객의 궁금증을 여지없이 뭉개버린다. 사실 주인공의 목소리 보이스 오버는 관객들이 이야기 전개에서 나오는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가질 틈도 주지 않고 사건을 설명한다. 그래서 영화의 이야기는 많은 에피소드가 나열되는 드라마투르기를 띤다. 동네에서 아이들에게 놀림감인 키만 멀죽이 큰 남자와 가족들에게 성폭행당하는 여자의 모습은 그 한 예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수많은 만남과 사랑은 거의 모두가 이러한 내레이터에 의한 설명으로 짧게 처리된다. 또 안토니아와 다니엘이 얼마나 쉽게 고향에 자리를 잡는지, 또 아이를 원하는 다니엘이 남자를 만나는 임신을 위해 하는 섹스 시퀀스나, 그 이후 고향 사람들이 남편 없이 임신한 다니엘 등을 배척하는 모습을 신부의 설교로 상징적으로 처리해 가볍게 넘어가는 드라마투르기는 감독의 관심이 이야기의 극적 전개에 있는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감독은 관객과 함께 자신의 영화 속에서 인생과 죽음, 그리고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감독이 영화를 내레이터의 코멘트로 전개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나, 내레이터로 주인공 안토니아말고도 또 다른 인물을 내세운 것도 그래서 흥미롭다. 영화 말미에 그 정체를 드러내는 증손녀 사라. 그녀의 마지막
   
  ▲ 이주봉  
 
말은 감독 고리스가 영화 내내 던진 화두를 관객에게 내 던진다.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말이다.

감독의 이러한 의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안토니아스 라인’은 담담하지만 따뜻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안토니아스 라인’을 단순히 페미니즘이라는 색깔로 채색해서 이야기 한다면, 고리스의 영화를 제대로 말한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감이 있다. 4대에 걸친 모계사회를 내세워 자연과 인생을 노래하고 있는 고리스의 이 영화는 단순히 가부장적 사회에 저항하며 일궈내는 여성의 승리라기보다는 여성들이 세상을 보듬어 안아내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주봉(군산대 교수, 전북비평포럼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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