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산책]<111>베를린 천사의 시-시티오브엔젤
[시네마 산책]<111>베를린 천사의 시-시티오브엔젤
  • 김성희
  • 승인 2010.07.1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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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원제가 ‘베를린의 하늘’이었던 ‘베를린 천사의 시’는 ‘길 위의 감독’ 빔 벤더스가 ‘파리, 텍사스’ 이후 3년 만에 작가인 피터 한트케와 공동 시나리오 작업을 한 로드무비의 시네포엠으로, 제40회 칸 영화제 감독상과 제10회 몬트리올 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하고, 미국에서 ‘욕망의 날개’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 불연속적이고 파편적인 내러티브, 시공간적 해체, 이미지의 실험적 탐구 같은 빔 벤더스 영화의 포스트모니티를 엿보게 해주는 이 ‘베를린 천사의 시’가 10여 년 후에 ‘시티오브엔젤’이란 제목으로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할리우드 버전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추락한 천사와 인간의 사랑이 베를린 추억을 잊지 못하고 우리 곁에 조금 더 가깝게 로스앤젤레스로 옮겨왔다. 하지만 “아이가 아이였을 때 팔을 휘저으며 다녔다.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태양 아래 살고 있는 것이 내가 듣는 모든 것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조각은 아닐까? 지금의 나는 어떻게 나일까? 옛날에는 인간이 아름답게 보였지만 지금은 상상만 한다. 허무 따위는 생각 안했지만 지금은 허무에 눌려 있다. 아이는 놀이에 열중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열중하는 것은 일에 쫓길 뿐이다. 산에 오를 땐 더 높은 산을 동경했고 도시에 갈 때는 더 큰 도시를 동경했는데 지금도 역시 그렇다. 항상 첫눈을 기다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라며 줄곧 읊조리듯, 클로즈업된 손 안의 펜에서 피터 한트케의 시 ‘유년기의 노래’가 줄줄 이어지던 ‘베를린 천사의 시’ 오프닝시퀀스의 “알스 다스 킨트 킨트...” 의 거의 독백에 가까운 내레이션이 ‘시티오브엔젤’에는 없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는 우리를 다소 우울한 사유의 세계로 이끌던 낮은 남성 목소리의 다미엘이 서정적이며 회고적이고 철학적인 어투로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사로잡는데 반해 ‘시티오브엔젤’에서는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죽어가는 메기 앞에서 추락한 인간, 세스(니콜라스케이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동료 천사에게 절규하듯 물을 뿐이다. “내가 인간이 되어서 지금 벌 받는 거야?”라고.

‘시티오브엔젤’의 두 천사, 세스와 카시엘 역시 로스앤젤레스의 지상을 떠돌며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안내하는 이른 바 죽음을 관장하는 천사다. 마침 병원에서 방금 전에 죽은 영혼을 데리러 왔던 세스는 그 곳에서 생명을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심장전문 외과의사인 메기(맥라이언)의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서 어떤 사랑의 느낌을 갖는다. 메기 역시 세스를 처음 본 순간부터 따스한 눈빛을 가진 세스에게 호감을 갖고 점차 사랑에 빠지게 된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다미엘처럼 역시 전직 천사였던 메신저의 경험담을 듣고 세스도 스스로 추락한 천사이기로 결심한다.

전쟁 기념 교회 탑 위의 두 천사, 다미엘과 카시엘, 그들이 하늘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빌딩 숲과 거리 풍경, 바쁜 인파 속에서 어린아이들 시선으로 지상에서 올려다 본 구름 낀 하늘이 몽타주 기법으로 교차 편집되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고단한 삶에 지치고 상처받은 사람들 사이로 우연히 다미엘이 가짜 날개를 달고 천사라도 되는 듯 공중그네를 타고 있는 한 여인을 유심히 바라보다 그 여인의 마음을 읽게 됐다.

‘끝났다. 한 계절도 넘기지 못하고. 뭔가 이룰 기회였는데, 언제까지나 꿈일 뿐이야. 생각도 못했어. 서커스와 안녕이라니. 손님도 오지 않는 마지막 공연. 닭처럼 허무하게 날다가 웨이트리스로 돌아가는 거야. 괴로움은 잊을 수 있지만 내가 알았던 모든 사람들을 잊지는 못할 거야. 최후까지 갈 수 없는 꿈. 그러나 진정 아름다웠지. 겨우 거리에 나와서 내가 누군지 알고 싶었는데. 언제나 깨어 있어. 슬픔 따윈 생각하지 말아야지. 누군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이 내 앞에 열리고 기쁨이 내 맘을 채울 텐데. 모든 것이 허무해. 불안밖에 없어. 숲 속에 버려진 조그만 새 같아. 울지 말자. 울고 싶어 하지 말자. 자주 있는 일이잖아. 항상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허무해.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어떻게 살아가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문제일 거야.’라며 우울한 생각에 잠긴 마리온의 마음을.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는 롱테이크로 길게 잡은 전후 베를린 장면들을 무표정으로 바라보며 다미엘과 카시엘이 주고받던 대화가 긴 여운을 남겼었다. “영원함 속에서 정신적 존재로 사는 것은 멋진 일이야. 매일매일 사람들에게 순수 정신적인 것을 증언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때로는 나의 영원한 정신적 존재가 지겨워. 더 이상 영원한 시간 위를 떠도는 게 아니라… 매순간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지금’, ‘지금’, ‘지금’이라고 말하고 싶어.” “바라보고, 모으고, 증언하고, 확인하고, 보존하는 것 이상을 하지마. 정신적 존재로 남아, 거리를 둔 채로 떨어져, 그저 말로 남아 있어.” “시간의 강으로, 죽음의 강으로 뛰어 들겠어.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망루에서 뛰어내려 위에서가 아니라 눈높이에서 볼 거야. 먼저 목욕을 하겠어. 터키인 이발사에게서 면도를 하고, 손가락 끝까지 마사지도 받겠어.”

카시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다미엘은 ‘추락한 천사’가 되어 감각의 세계에 속하고자 했다. 찰나적 감각의 세계에 들어온 천사 다미엘은 이제 “모든 것을 아는 대신”에 기꺼이 시간의 유한성에 묶인 인간의 무지를 얻은 셈이다. 스스로 영생을 버리고 유한한 존재로 내려온 다미엘은 마리온의 사랑을 얻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는 안다. 그 어떤 천사도 알지 못하는 것을.”

다미엘을 잃고 여전히 베를린의 폐허를 순회하면서 베를린의 상처받은 모든 영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카시엘은 도서관의 계단에서 호머의 “나의 청자들은 시간과 더불어 독자가 되어버렸어. 그들은 더 이상 함께 모여 앉지 않고, 각자 따로 앉아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게 되었지.” 마음의 소리와 마주치기도 했다. 그리고 추락한 천사, 다미엘이 외줄을 잡고 땅에 서서 마리온을 황홀경에 젖어 올려다보는 장면은 ‘베를린 천사의 시’의 엔딩 시퀀스였다.

“가서 제일 좋았던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난 당신을 말할래요. 내 삶에 가장 행복했던..”이라고 말하며 숨을 거두는 메기, 죽은 메기의 영혼을 가져가는 동료 천사에게 “평생을 아무 감정
▲ 김성희
없이 사는 것 보다 그녀를 직접 느낀 하루 밤이 더 소중하다”고 말하는 세스, 그리고 천사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어두운 해안가 천사들의 실루엣으로 마감하는 ‘시티오브엔젤’은 감미로운 상처를 남긴다. 반면에 다미엘과 마리온의 사랑의 멜로드라마, 카시엘과 다미엘, 지성과 사랑이라는 다소 몽환적이고 쓸쓸한 톤의 대조적 이미지, 이들이 만나는 당시 베를린 사람들의 내면의 소리들로 기억되는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는 오늘도 전설처럼 희망의 여운을 남긴다, 지금 이곳의 우리들은 어쩌면 전직천사들이고, 지금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천사들이 ‘상처받은 우리의 영혼’을 주시하며 피터 한트케의 시를 읊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김성희(백제예대 방송시나리오극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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