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태의 램프와 음악사이]<22>김정미 '봄'
[조현태의 램프와 음악사이]<22>김정미 '봄'
  • 조현태 시민기자
  • 승인 2010.08.2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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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신중현, 이남이, 김정미가 팀을 이루어 TV 무대에서 보여줬던 몽롱한 유년의 기억을 들춰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들을 무대에서 볼 수 있기를 희망했던 건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베이스기타를 맡던 이남이가 폐암으로 생을 등지면서 그 꿈은 몽상이 돼 버렸다. 
 
인습에 숨이 막히고 유신을 강요받던 70년대 사이키델릭은 정서의 치유약이었다. 독하게 마시고 자유롭게 입고 싶었다. 머리를 길렀고 일부 연예인들은 머리핀을 꽂고 다니며 반기를 들었다. 한여름에도 봄을 얘기했고 노래를 불렀다.
 
‘빨갛게 꽃이 피는 곳 봄바람 불어서 오면 노랑나비 훨훨 날아서 그곳에 나래 접누나 새파란 나무가지가 호수에 비추어 주면 노랑 새도 노래 부르며 물가에 놀고 있구나.’ 신중현이 작사 작곡한 김정미의 노래 ‘봄'이다.

김정미는 허스키한 보이스에 비음을 섞어 중독을 요구하는 음색을 들려주면서도 신중현의 기타와 이남이의 베이스 기타를 앞서 가지 않았다. 과거 김추자가 획이 큰 톤으로 배경음악을 가렸다면 김정미는 하얀 여백에 먹선을 부추기는 형국이었다. 멤버 간에 분배와 균형이 수평을 이루는 조화로 기타, 베이스 기타, 보컬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이 시기는 팝송과 비틀스가 판치던 때다. 그럼에도 LP판매량에서 김정미의 음반이 뒤떨어지지 않았다고 하니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인기가 높으면 손을 타는 법이다. 이들을 눈여겨본 기관원들이 김정미에 편승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벌였다고 한다. 찬가를 만들어 불러 달라는 부탁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기에 신중현은 옥타브를 올린다. “나는 그러한 노래를 만들지도 부르지도 못하는데 왜 하필이면 나에게 맡기려고 하느냐"고. 그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는지 발표한 곡마다 무대에 올리기도 전에 죄다 줄줄이 금지곡이 된다.

멤버들은 꽃잎처럼 흩어지고 김정미의 소문만 안개처럼 피어났다 지곤했다. ‘어느 절집에 있다더라.’ ‘LA행 비행기를 탔다더라.’ 이러한 말들은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인터넷상에서 떠돌고 있다.
 
뿐인가 신중현은 엊그제만 해도 여기저기 줄을 대어 그를 찾았다. 아시아 최초로 펜더사로부터 기타를 헌정 받은 신중현은 헌정 기념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김정미를 떠올린 것으로 생각된다.
 
한 음악 통신원에 따르면 김정미는 LA에서 살고 있으며 “음악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딸을 통해서)전해 왔다고 한다. 
 
/조현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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