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산책] <132>비정성시
[시네마 산책] <132>비정성시
  • 김혜영
  • 승인 2011.01.20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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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개인의 생애 사이사이 숨겨 있는 ‘기억’과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우리는 역사적 사실의 숨은 맥락을 찾기 위해 무수히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영화 <비정성시>는 기록자(기억하는 자)의 위치에 사진사 문청과 관미를 위치시켜 - 그들의 가족사진 두 컷을 전후로 - 해방 이후에서 2 · 28 사건까지의 대만 역사를 기록한다. 보는 자의 입장에 따라서 역사가 가족의 시련을 말하기 위한 배경이 될 수 있고, 가족사가 대만 역사를 말하기 위한 장치가 될 수 있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생활사와 역사를 씨줄 · 날줄로 엮어서 객관적 역사 기록의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아버지는 결백하다.”는 혈서, “태어나면서 조국을 잃고, 죽어서 조국으로 돌아간다.” 는 대사들은 해방이 되었음에도 부유(浮遊)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대만인들의 심정을 잘 그려준다.

산고(産苦) 끝에 어렵게 얻은 장남 문웅의 아들은 단지 가족만의 기쁨이 아니다. 출산 중에 계속되는 라디오 방송은 해방이 결코 쉽게 오지 않았고, 제 때에 온 것도 아니라는 점을 문웅의 혼잣말로 대신하고 있다. 식민지 역사의 암울함을 출산에 비유하여 상징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표현한 것은 감독의 문학가적 자질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문웅은 끝까지 ‘장남’으로 위치한다. 노름에 빠져 한겨울 추위에 자신을 묶어두고 떠나버린 아버지의 부재를 꿈속에서 재현하면서, 아버지조차 아들처럼 품어버리며 자신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치유해 나간다. 중년의 나이에도 그의 내부에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해방둥이 아들을 얻고, 문웅 일가는 온 가족이 모여 성대한 가족사진을 찍는다. 이때 아버지는 넷째 아들, 문청을 찾으며, “문청이 없는데 어떻게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고 하지만, 문청이 없는 가운데 사진은 한 컷의 유적으로 남는다. 사실 형제 중 가장 교육을 많이 받고 음악을 사랑했던 인텔리 의사인 둘째가 행방불명된 상태에서부터 가족은 내내 ‘부재(결핍)’속에 놓여 있다. 감독은 네 형제 중 감수성 예민한 청년인 문청의 시선을 통하여 역사를 보고 있다. 스스로 말을 잃어버린 느낌을 갖게 하고, 사진관이라는 공간과 정지된 사진에 정박당한 문청은 역사에서 비켜 서 있는 외부자이며, 가족 안의 내부자이기도 하다. 말을 잃기 전에는 “배우가 되어도 좋았을 성품”을 가지고 있는 문청이기에 마르크스주의와 개혁주의자들이 함께 할 수 있었다. 2 · 28 사건의 옥살이에서 풀려난 문청은 처형당한 동지들의 죽음을 그들의 가족들에게 전한다. ‘말을 잃은 문청’이 ‘죽은 자’의 말을 전하는 위치에 놓인 것이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조명을 사용하여 정감어린 심성을 표현한 장면이 있다면, 문청과 관미의 필담, 그리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의 장으로 그려지는 스테인드 글래스 옆으로 반쯤 차지하는 식탁 공간이다. 음악과 격자 창문을 통하여 객관적 세계는 의미를 잃는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나머지 한쪽 벽면은 또 다른 여백을 구성한다. 임노인과 매국노로 몰려 실성한 셋째 아들 문량은 보호받아야 할 - 남성성을 상실한 - 대상으로 여자들의 보호 속에 남겨진 가족과 함께한다. 가족의 부재, 국민당의 무차별한 진압 속에서, 두 남자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자기변명과 식욕)으로 억압을 해소한다. 무심한 식사, 그러나 그 속에서 살아남은 가족 구성원은 문청을 닮은 소통 능력을 발휘한다. 대화도 관심도 없는 한 끼 식사지만, 그 속에 소통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온 가족이 모인 가족사진에 부재했던 문청은 다시 새로운 가족사진 한 컷으로 기억의 유적이 된다. 문웅의 아들과 문청의 아들은 아버지의 부재로 시작되는 분절된 가족 역사의 출발점이다. 이는 대만의 독립에서 정통성 · 정당성을 잃어버린 - 아버지와 같은 - 조국을 거세해버리고 새로운 자기 정체성에서 찾고자 하는 허우 샤우시엔 감독의 무의식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관미의 일기와 편지가 나레이션되는 다양한 서술 관점은 부권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인 여성을 정신적 위로와 가정의 주체로 바로 세우려는 감독의 의도로 보여진다.
▲ 김혜영


이 영화는 여백이 많은 영화이다. 카메라 호흡은 참을 수 없이 길고, 인물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어려울 만큼 거리 두기를 하고 있으며, 역사에 대한 객관성의 확보는 관객과 카메라, 배우 사이만큼 떨어진 채로 고정돼 있다. 주로 사용된 롱샷, 롱테이크 기법은 버겁고 힘들다. 고정된 앵글에서 비켜서지 않는 대상들은 풍경화의 한 점처럼 지속적인 거리감을 유지하며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지운다. <비정성시>는 대만 뉴웨이브 운동을 주도한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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