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산책]<134>윈터스 본
[시네마산책]<134>윈터스 본
  • 김혜영
  • 승인 2011.02.10 16: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차가운 겨울 세상과 맞선 한 소녀가 있다. 미국 미주리주 오자크(Ozark) 산골 마을에 살고 있는 열일곱 살의 소녀 ‘리’는 매 끼니를 걱정하며, 치매에 걸린 엄마와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한다. 리는 마약제조업으로 수감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아빠를 찾아야만 유일한 삶의 터전인 집을 지킬 수 있다. 아빠의 시체라도 찾아야 하는 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고, 친척들마저 그녀를 외면한다. ‘동료 마약 밀매범’이기 때문에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리의 주위에서 위협과 협박을 반복한다.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연출 방식

겨울은 삼남매가 처해 있는 상황의 잔혹함을 물리적으로 더 절박하게 만든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가 아이들이 대처해야 하는 세상이 혹한의 겨울임을 잘 보여준다. 겨울 호수 위에서 벌어지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얼음장처럼 차갑다. 호수 물안개 속에서 아빠를 찾는 장면이 <윈터스 본>을 가장 잘 설명한다. 대부분의 스릴러가 잔혹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스크린 위를 피로 물들이거나 신체를 난도질하는데, 이 작품에서 데브라 그래닉 감독은 절제된 연출 방식으로 정신적 공포를 배가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장르에서 자유롭다. 감독의 연출 방식은 신선함을 넘어 서서 금욕적이고 도덕적이다. 화면은 폭력적이지 않지만, 상황은 한없이 잔인하다. 감독은 ‘누구’에 의해서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졌는지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어떻게’ 이 지뢰밭을 빠져나오느냐에 철저히 포커스를 맞춘다.



잿빛 세상과 맞선 개인의 투쟁

<윈터스 본>은 폐쇄적인 잿빛 세상에서의 개인의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 존 히콜트의 <더 로드>와 맥을 같이한다. 주변의 무심함 속에서 그림자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면에서 <아무도 모른다>와 같은 버려진 느낌을 버릴 수 없다.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식량과 안식처 그 이상이 아니다. 잿더미 같은 회색 빛 세계에서 펼쳐지는 뜨거운 여정이라는 면에서는 <더 로드>가 오버랩 된다. <더 로드>의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삶을 견뎌내는 동기가 부성(父性)이라면, 어린 소녀 리는 두 동생을 위해서 미성년자임에도 여군을 지원하고, 죽음이 도사리는 곳으로 자신을 내던진다. 도와 줄 사람 없는 가장 약한 존재의 생(生)에 대한 열망은 ‘보는 자’를 매 순간 불편하게 만든다.



제니퍼 로렌스의 타고난 감각과 데브라 그래닉의 절제된 연출

영화를 보다보면 책임감 강하고 용감한 리에게 빠져들게 된다. 도끼로 장작을 패고 어린 동생들에게 다람쥐를 사냥해서 껍질 벗기는 법을 가르치는 리는 여림과 강인함의 양면을 보여준다. 독립영화계와 헐리웃이 동시에 주목하고 있는 이 열아홉 살의 배우, 제니퍼 로렌스는 타고난 감각과 연기력을 지녔다. 열아홉의 나이에 무척 자랑스러운 배우로서의 필모그라피를 만든 것만은 확실하다. 여기에 '선댄스의 루키'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데브라 그래닉 감독의 연출력이 더해져서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과묵하고 절제되어 있는 연출 덕분에 종반부에 가면서 감정적 파장과 여운이 커진다. 데브라 그래닉은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한 전형적인 동부 출신이다. 단편 <스네이크 피드>(Snake Feed)로 출발하여 장편 데뷔작 <다운 투 더 본>(Down to the Bone)까지 선댄스의 주목을 받아왔던 그녀는 <윈터스 본>으로 각본상과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윈터스 본>의 원작자 다니엘 우드렐은 오자크 지역을 배경으로 한 '컨트리 느와르'를 전문으로 하는 작가다. 데브라 그래닉 감독은 수년간 소설의 배경이 된 미국 미주리주 인근 산
▲ 김혜영
간지역을 방문하여 자료를 수집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물리적 공간은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적 공간으로서의 리얼리티를 확보하였다.

<원터스 본>의 OST 대부분이 컨츄리 곡이다. 왠지 영화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컨츄리 음악이 이 소녀가 처한 상황이 결코 차갑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주변에 기대지 않고 좌절하지 않으면서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는 삼남매는 누구보다 따뜻한 환경에서 살 자격이 있다. 극단의 상황에서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놀라운 영화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많이 본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