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문명 꽃피운 '신들의 전설' 살아 숨 쉬다
에게 문명 꽃피운 '신들의 전설' 살아 숨 쉬다
  • 김천식
  • 승인 2011.02.1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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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식 테마여행 길찾아 길을 떠나다]그리스 아테네
▲ 이른 아침 필로파포스 야산 정상에서 본 파르테논 신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전의 웅장한 위엄이 느껴진다.

유럽 문명의 중심에는 그리스가 있고,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신화가 이 나라를 에워싸고 있다. 신화를 모르고는 유럽을 이해 할 수 없다고 하듯이 신화는 그들에게 전설이면서 현실이다. 그리스가 신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우선 유럽이라는 명칭도 신화속의 인물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제우스에 의해 납치된 페니키아(오늘날의 레바논) 왕국의 공주 이름이 에우로페인데, 공주의 이름에서 유럽 Europe 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에우로페 공주는 제우스가 변신한 황소 등에 얹혀서 간 곳이 크레테 섬이다. 이곳에서 아들을 낳는데, 그 중 하나가 나중에 크레타의 왕이 된 미노스이다. 크레타의 크노소스 왕궁을 중심으로 왕성했던 미노아 문명 역시 에우로페의 아들 미노스왕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있는 바다가 에게海인데, 이 바다의 이름에도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 세계적인 고고학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아테네국립고고학박물관 전경. 그리스 전역의 유적부터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형제들과 왕위 쟁탈전을 벌일 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미노스가 포세이돈을 속인 일이 발각되어 그 결과로 몸은 사람이고 머리는 황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 미노스왕은 명장(名匠)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미로를 만들게 한 다음 괴물을 가두었다.

그 후에 낳은 아들 안드로게우스는 그리스 본토 아테네에서 열린 경기에 참가하여 우승을 거두었으나 죽임을 당했다. 이에 분노한 미노스 왕은 아테네로 쳐들어가 그곳 왕을 굴복 시키고, 9년마다 소년 7명, 처녀 7명을 공물로 바치게 했다.

세 번째 9년이 되었을 때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아버지에게 자신이 가서 괴물을 처치 할 테니 공물로 바쳐질 소년 7명 속에 포함 시켜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렇게 해서 크레테 섬으로 가게 된 테세우스 왕자는 그곳 공주의 도움으로 괴물을 죽이고 무사히 미로를 빠져나왔다.

한편 그리스 본토의 왕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이제나 저제나 왕자가 돌아오기만을 가다렸다. 드디어 수평선 위로 배 한척이 나타 났는데 돛의 색깔이 검정이다. 이를 본 왕은 실망하여 바다에 몸을 던졌다. 왕자가 크레테로 갈 때, 괴물을 죽이면 흰 돛을 바꿔 달고 오겠다고 약속하였는데, 왕자는 승리의 기쁨에 흰 돛으로 바꾸는 것 잊어버린 것이다. 에게우스 왕의 이름을 따서 에게海가 되었다 .

이렇게 그리스 곳곳에 신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신화인지 구분이 애매모호하다. 사람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그리스인지라 2005년에 이어 2010년에 다시 찾게 되었다.

▲ 파르테논 동쪽 성곽에서 본 제우스 신전과 하드리아누스 성문.
그리스로 가는 방법은 비행기와 배 그리고 드물게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기차로 갈 수도 있다. 항공편은 한국에서 직항은 없고 다른 나라를 거쳐서 들어간다. 필자는 터키 쿠사다시항에서 배를 타고 사모스섬과 미코노스섬을 경유하여 지중해의 풍광을 만끽하며 그리스 피레우스항구로 입항하여 그리스를 여행한 적도 있다.

7개월 전에는 중부 유럽을 돌아본 후 로마에서 항공편을 이용하여 그리스로 갔다. 젊은 학생들이라면 이탈리아 브린디시 항구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파트라 항에 입항하여 아테네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이 코스는 우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야하고 체력과 모험심 그리고 특히 인내심이 요구됨은 물론이다.

첫 번 여행에서는 피레우스 항에서 택시를 타고 아테네 시내로 갔었다. 택시 바가지요금을 조심하라는 여행안내서의 주의 사항을 읽었는지라 차를 타기 전에 기사에게 확실하게 가격을 알아보고 택시를 탔다. 제우스 신전 앞에 있는 호텔까지는 어려움이 없었는데, 예약 일자가 문제였다. 호텔 예약은 터키 이스탄불의 호텔만 하고 그리스까지 가는 7일 동안은 호텔 예약을 하지 않았다. 의기투합한 나승균 사장과 필자가 현지에서 숙소를 직접 구하는 모험을 해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유여행의 장점, 즉 좋으면 더 체류하고 그렇지 않으면 일찍 떠나고 하다 보니 하루 일찍 아테네에 도착되었다. 문제는 예약한 호텔에 도착해서 숙박을 하루 앞 당겨 달라고 했더니, 안된다고 한 것이다. 처음 간 곳에서 잠자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순간 당황하였지만 시내 중심부로 가서 숙소를 찾아보기로 하고 신타그마 광장으로 갔다. 다행히 그곳에서 한국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그리스 한인회 유근길 회장을 만났고 유 회장이 호텔을 소개해 준 덕분에 하룻밤 묵을 수 있었지만, 아테네인은 고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첫 인상을 받은바 있다.

두 번째 여행에서는 첫 번 때와는 많이 달랐다. 이는 예약한 CLASSICAL ACROPOL호텔의 고전적 분위기와 여성 메니저 Popi씨의 친절 때문이었다. Popi 씨는 바쁜 와중에서도 자주 음료수를 제공하고, 구내 여러 장소를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하루는 필자가 전주 삼천동 천변 4계 사진을 보여 주면서 한국의 경치를 소개하였더니, 그녀는 한국의 경치가 이렇게 평화로울 줄 몰랐다며 감동스런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특실이 빈게 하나있는데 괜찮다면 옮겨주겠다고 필자에게 의향을 묻는다. 물론 차액은 받지 않겠다고 한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그리스의 문화였다. 먼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그들에게서 과거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정신세계를 보았다.

필자가 투숙한 클래식컬 아크로폴 호텔은 오모니아 광장(Omonia Sq.) 바로 옆에 있다. 신타그마 광장이 외형적 중심부라면 오모니아 광장은 내면적 중앙부라고 할 수 있다. 주요 볼거리들이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북쪽에 국립고고학박물관이 위치해 있고, 동쪽으로는 국립도서관과 아테네 대학, 남쪽에는 상점들로 북적대는 현대아고라 그리고 그곳을 지나 계속 남쪽으로 가면 볼거리가 많은 아티나스 거리를 지나게 되고 거기서부터는 파르테논신전이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서 세계문화유산 제1호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

▲ 클래시컬 아크로폴(CLASSICAL ACROPOL)호텔의친절한 매니저 포피(Popi·왼쪽)와 남직원.
▲ 국립고고학박물관

그리스가 자랑하고 세계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국립고고학박물관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보물관이다. 오랫동안 단장을 끝내고 새롭게 문을 연 박물관은 외형부터가 고고한 품위를 나타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만나게 되는 아가멤논 황금 마스크, 포세이돈 청동상, 역시 청동상인 ‘말을타는 소년’ 등은 기원전에 제작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인체의 특징을 그렇듯 섬세하고 균형 있게 표현한 것을 보면 이는 분명 신의 솜씨이지 사람의 재능이 아니다. 또한 키클라데스실에 있는 ‘현을 타는 인물상’, ‘피리 부는 인물상’, ‘여성상’을 보면 마치 현대 조각품처럼 느껴진다. 절제되고 단순화 시킨 솜씨는 현대 조각을 능가하고 있다. 꿈에 그리던 유물들 앞에 서니 감동이었다. 몇 해 전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한 소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소녀는 맑은 눈으로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아! 내가 모나리자 그림 앞에 서다니!” 하면서 감동에 겨워한다. 고고학박물관의 보물들 앞에 선 필자도 그런 마음이다.

▲ 파르테논 신전

세계제일의 문화유산인 파르테논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높은 곳에 있다. 이 때문에 시내 웬 만한 곳에서 다 볼 수 있어서 찾아가기가 쉽고 걸어서 갈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447년 페리클레스의 주도로 건설 되었다. 매표소에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니 정문인 프로필라이아의 기둥들이 묵직하게 도열되어 있다. 단순한 느낌을 주는 도리아식 과 우아하고 화려한 느낌을 주는 이오니아식 기둥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을 지나는 순간 시야를 꽉 채우는 건물이 나타나는데, 바로 파르테논 신전이다. 책에서 보며 상상했던 것과 아테네 시내에서 올려다 볼 때와는 매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파르테논은 1687년 9월 26일 터키와 베네치아 전쟁 때 베네치아 군의 포격에 망가졌고, 1800년도 초에 터기 대사로 있던 영국인 엘긴에 의해 신전에 부착되어 있던 조각품들이 약탈당했지만, 육중한 기둥이 받히고 있는 신전의 장엄함은 여전하다. 파란 하늘이 배경이 되니 파르테논의 대리석은 더욱 하얗게 빛을 발한다. 파르테논 동쪽 성곽에서 바라보는 경치 또한 괜찮다. 멀리 리카비토스의 뾰족한 봉우리가 먼저 시야에 들어오고 시내를 좌측에서 우측으로 훑어보면 중심부에 있는 국회의사당이 보이고 더 우측으로 시선을 옮기면 제우스 신전과 하드리아누스 문이 고대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신전 둘레를 한 바퀴 돌면 고대 아고라, 올림픽 경기장, 디오니소스 극장 등 많은 유적을 볼 수 있다.

▲ 소크라테스가 사형이 집행 전까지 갇혀 있던 감옥.
▲ 소크라테스 감옥에서 만난 야생 개들

그리스의 현자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에 “청년들을 부패시키고 국가의 여러 신을 믿지 않은 죄”로 사형에 처해졌는데, 그가 사형이 집행되기 전 갇혀 있던 감옥을 찾아 새벽에 길을 나섰다. 감옥이 있는 필로파포스는 인적이 드물고 정적이 감도는 야산이다. 팻말을 보고 찾아올라 갔다. 중턱쯤에 있는 감옥은 살벌한 느낌이 들었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기다리는 동안 여러 차례 탈옥을 권유 받았지만 이를 끝까지 거절하였고 사약을 마셨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빚진 닭 한 마리를 꼭 갚아 주게”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 당시의 장면을 상상해 보며 소크라테스의 감옥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런 후, 온 김에 필로파포스의 유적이 남아 있는 꼭대기까지 가보기로 하고 몇 발짝 옮겼는데 갑자기 아랫 쪽에서 컹컹 거리며 개 4마리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 진다. 인적이 없는 야산이라 사람의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4마리는 조그만 강아지가 아니라 마르긴 했지만 세퍼트 만한 크기다. 그리스에는 대체적으로 개가 많다. 그 이유는 한 때 쥐가 많아 고양이를 풀어 놓았더니 고양이 세상이 되었고, 고양이 수를 줄이기 위해 개를 키우게 되었는데, 이제는 개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야산에 버린 것이다. 버려진 개들이 지금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절박한 순간이었고 무슨 방법이 없었다. 이판새판이라는 생각을 하고 개들을 향해 돌아서서 “얘들아 좀 천천히”라고 중얼거리면서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런데 앞장서 달려오던 개가 바로 내 앞에 와서 왠일로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닌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 살았다.’고 안도의 숨을 내셨다. 고마운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니 뒤따라 달려온 개들도 온순해 진다. 그렇게 개 4마리에게 둘러싸여 있다가 “얘들아, 잘가거라.”하고 돌려보낸 후 산위로 올라갔다. 마침 파르테논 신전 뒤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사경(?)을 헤맨 뒤라 아침 해가 더욱 찬란해 보인다. (다음 호에 계속)


/글·사진=김천식 객원전문기자(전주대 역사문화컨텐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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