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저녁 전북대학교 의대 법의학과로 갑작스럽게 부검을 요청하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시신은 물에 빠져 죽은 채 발견됐고, 이번 사건은 그 사인이 한시라도 빨리 밝혀져야 해 부검팀원들은 재빨리 모여 부검 준비를 마쳤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싸인에 빠져 그 주무대가 되고 있는 부검실을 찾은 날, 예상치 못하게 부검실을 찾은 시신과 마주하게 됐다. 전북대 장례식장 지하, 5평 남짓한 공간으로 싸늘하게 식은 시신이 들어오고, 가운데 놓여진 침대 위에 눕혀지자 사건 담당 경찰관과 검시관이 참관한 가운데 사진담당 1명, 병리 레지던트 2명, 법의학교수 1명이 각자 자리에서 시신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를 한다.

도내 모든 변사 사건 부검을 맡고 있는 법의학자 전북대 이호 교수는 “부검은 정확성도 필요하지만 신속성도 중요하다”며 “24시간 항시 대기하며 신속히 사인을 밝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메스를 들고, 부검이 시작되자 시신 특유의 냄새가 부검실 안을 가득 메운다. 이 시신은 익사했기 때문에 물에 빠지기 전에 사망했는지, 물에 빠져 사망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부검을 중점적으로 살피게 된다. 보통 부검은 시신의 머리, 가슴, 배 3곳을 확인한다. 이에 부검팀은 빠르게 심장, 폐, 간, 위를 적출한 후, 장기마다 상태를 확인하고, 샘플을 채취했다.

이호 교수는 먼저 심장을 꺼낸 후 “이 사람은 원래 동맥경화를 앓고 있어, 추위에 노출될 시 사망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며 장기마다 상태를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적나라하게 이 시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아무렇지 않게 설명은 들었지만 이미 반쯤 정신은 나간 상태였다. 그 때 시신의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고, 코와 뇌 사이에 있는 공간까지 확인을 마친 후 타살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는 부검소견을 내린 후 부검이 완료됐다.

부검은 오전 10시10분께 시작해 40분께 끝이 나 비교적 빠른 시간 내 이뤄졌지만 이 시간 동안 이 교수는 시신의 사인과 인생을 훑어봤다. 이 교수는 3명의 팀원과 한달 평균 150구 정도 시신의 인생과 마주한다.
사연이 없는 시신은 거의 없다. 이중 이 교수의 심장을 울리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시신도 종종 부검실을 찾는다.

이 교수는 “생활고를 겪던 아버지가 아이 둘과 부인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보통 부검실 안에서 시신의 목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지만 현장에 나가 좀 더 사건을 깊숙이 마주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가 죽어 있던 거실에 걸려진 시를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시는 죽은 아이가 쓴 시로 학교에서 상을 받은 것이었다. 시 주제는 가을 단풍으로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형형색색 옷을 갈아입는데 서로 예쁜 색을 내기 위해 몸싸움을 하니까 떨어지게 된다는 내용의 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시는 아름다운 시가 아니라 집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폭발 직전의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아이가 ‘살려달라’고 구조 신호를 보내는 시였다고 한다.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사람, 병 들어 홀로 죽음을 맞이한 불법 체류자 등 법의학자는 사인 뿐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알게 된다. 일반 의사는 병명을 밝혀내고 치료를 해주지만 법의학자는 그 사람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고, 한풀이를 해준다.

따라서 사인을 조작해서도, 할 수도 없다. 이호 교수는 드라마 싸인은 극 중 재미를 위해 법의학자가 사인을 조작하는 요소를 가미했지만 실제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심근경색으로 위급한 환자를 이송하던 119 구급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린 한 승용차와 부딪쳐 전복돼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사실 이 환자는 병원에 도착했어도 사망할 환자였지만 사인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었고, 최종 부검 소견도 사실대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환자의 사망 시간이 문제가 됐던 것으로 구조대원의 해임 여부가 걸렸던 사건이기에 개인적으로 접근하면 교통사고 전 사망했다고 소견을 내릴 수 있었지만 이 교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법의학자는 과학자로 사망 원인에 대해 소견만 제시해 주는 것뿐이지 사건 자체에 개입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아론 기자 aron@sjbnews.com

“Mortui docent vivos (죽은 자는 살아있는 자를 가르친다)”

도내 유일한 법의학자 전북대 이호 교수는 죽은 자로부터 인생으로부터 살아가는데 교훈을 얻고, 배운다. 이 교수는 “법의학자로 살아가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일, 남을 위한 일, 내가 잘하는 일, 좋아서 하는 일이 법의학자로서 길을 걷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 한국의 법의학의 맹점에 대해서 언급하며, 이 말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법의학에는 변사체에 국가가 사인을 밝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부검을 강제 집행을 하는 사법부검과 병의 원인을 알기 위해 부검을 하는 병리부검으로 나뉘는데 문제는 사법부검에 있다”며 “우리는 사법 부검이라고해서 증거만 밝혀내면 끝이지만 미국은 이 죽음이 예방 가능한 죽음이었는지 다각적으로 살펴 보고, 그와 같은 죽음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대책을 마련 하기 위해 부검을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가정 내 있는 수영장에서 한 사람이 빠져 죽었다면, 발생할 수 있는 원인을 찾고, 만약 그 원인이 실수로 인해 미끄러져 발생했다면 수영장 주변에 펜스설치를 의무화 한다던가, 쓰레기 차가 후진하다 어린아이가 치여 사망했다면 원인을 밝혀 후진할 때 차에서 소리가 나게 하는 것을 법제화 하는 식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부분으로까지 이어지게 해야한다는 것. 즉, 이것이 죽음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이다.

이호 교수는 “단편적으로 사인을 밝히는 것으로만 법의학이 끝나서는 안된다”며 “그와 같은 죽음이 두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고, 예방하는 방향으로 법의학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아론 기자 aron@s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