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성자들' 그들은 멀리 있지 않다
'이름없는 성자들' 그들은 멀리 있지 않다
  • 고원선
  • 승인 2011.04.21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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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순례길 이야기]<14>나만의 순례길

 

▲ 아름다운 순례길 7코스 김제 원평과수원길

 

우리는 일생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볼 만한 스승이나 가치를 만날 수 있지만 꼭 누구나 다 만난다고 할 수는 없기에 그런 기회를 만난 분들은 참으로 행복한 분들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보다 지혜로운 스승이 함께 생각하며 판단하고 결정해주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만이 최상이요, 누구의 가르침도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삶은 매우 자신있고 당당한 자세이지만 항상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외롭고 각박할 것이며 깊이 고민하고 내린 취사들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누군가와 생각을 교류하며 나의 가치를 공개하고 타인의 가치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성숙한 인격을 지닌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이웃들은 내가 갖지 못한 지혜를 경험적으로 터득하였거나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넘어서서 이웃들에게 매우 개방적이면서 어느 모로든 유익을 주려는 헌신적인 자세로 살아갑니다. 이 분들은 나라고 하는 상(가리움)을 조금만 걷어내고 바라보면 가히 스승의 자격을 가진 ‘이름 없는 성자’라고 불리워도 유감이 없을 것입니다. 이름 없는 성자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 주위에 하나같이 자기 몫을 다하면서 힘겹지만 조금이나마 이웃들의 희망이 되어주는 친구, 형,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바로 이름 없는 성자들입니다.


내가 꿈꾸는 여정!
떠나고 싶은 순례는 인류의 역사로 기록된 성자들의 행적을 찾는 만큼 나와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웃 성자들의 어릴적 추억이 어린 고향을 찾아 걸어보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한 사람 소중하지 않음이 없기에 그 분들이 지내온 어릴적 그 무대 또한 더없이 소중하고 정겨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친구의 벌거벗은 추억에 그대로 녹아들기 위해 동구 밖에서 차를 내려 터벅터벅 걸으면서 맨 처음 맞이하는 돌비석에 얽힌 전설같은 이야기도 듣고, 마을 어귀에 우뚝 선 성황나무에 쌓여진 돌무더기와 몇 겹으로 굵게 엮여 휘돌아 감긴 새끼줄의 사연에도 귀를 기울여봅니다.

마을 앞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모정에는 세월을 비껴선듯한 백발의 어르신들이 목침을 베고 누워 한담을 나누고, 한 켠에서는 깍쟁이 윷을 만들어 던지면서 “으랏차”하고 힘차게 내지르는 함성소리가 귓가에 울림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때 부터 아이들의 놀이터요 어른들의 쉼터가 되어주었던 수령을 알 수 없는 느티나무 아래에 블록과 시멘트로 평상만큼이나 크고 넓게 만들어놓은 단상에 누워 농사일을 하다가 힘들 때도, 마을 나들이를 나서기 전에도, 외지에서 손님이 찾아왔을 때도 엉덩이를 걸쳐 앉아 한담을 나누고, 젊은이들이 사다 나르는 막걸리 한 사발에 인생의 희노애락을 쏟아내었을 꾸밈없는 시골인심에 빠져들고 싶습니다.

논다랑이 건너 시냇가에서 여름날 가릴 것 없이 옷을 벗어놓고 쑥 몇 잎 뜯어 손으로 비벼 양쪽 귀를 막고 한손으로 코를 잡고 뒤로 벌렁 물속으로 넘어지기, 물속에서 늦게 나오기, 밤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은 시냇물에 몸을 담그고 철부지 아이들은 둑으로 기어들어 구경하다 들켜서 도망치던 개구쟁이 성자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반딧불을 소주병이 가득하도록 잡아넣고 형설지공을 흉내내며 장래의 꿈을 키웠지만 뻣뻣한 머리와 부르튼 손, 누런 이와 목에 띠를 두른 듯한 검은 때가 끼어 기대할 것 없어만 보이던 코흘리게 그 친구가 지금 내 곁에 어엿한 성자로 서있는 것을 가슴 뿌듯하게 느껴보는 그런 순례길을 떠나고 싶습니다.

/고원선 한국순례문화연구원 특별위원-원불교 전북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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